윤석하 학생(순천향의대 본과 3학년)
말과 지식의 무게, 그리고 책임
"교수님께 여쭤보고 다시 알려드릴게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말의 무게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말한다면 밤 하늘의 별을 따준다는 거짓말까지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병원에서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들의 주치의가 하는 말 한 마디에 많은 두려움을 얻기도, 큰 안도감을 얻기도 한다.
의학과 3학년에 접어들며, 모든 의과대학생이 그렇듯 나도 PK 실습을 시작했다. 각 과마다 배우는 내용도, 실습에서 하는 활동도 모두 다르지만 대개 외과 계열과 내과 계열로 나누어 각 계열 내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외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수술방에 들어가 참관하는 것이 대부분을 이루고, 내과 계열의 실습에서는 회진, 케이스 발표, 외래 참관이 주된 일정이다.
이 중 케이스 발표는 보통 각 과의 실습 첫날인 월요일, 교수님께서 배정해 준 환자에 대해 학생인 내가 그 환자의 담당 의사가 되었다는 생각으로 문진 및 신체 진찰을 하고 환자와 질환에 대해 공부하여 발표하는 활동이다. 케이스를 준비하는 동안 환자분께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문진을 하다 보니, (그리고 흰 가운을 입고 있다 보니) 환자분들은 우리의 질문에 많은 대답을 해주시고, 더불어 많은 질문을 하신다. 질환에 관련된 내용이나, 검사 결과와 같은 내용은 내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대답할 수 있지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있다.
"선생님, 저는 언제 퇴원할 수 있나요?" "약 때문에 식욕이 없는 것 같은데 그만 맞으면 안 될까요?"
위와 같은 결정(decision making)이 필요한 질문들이다. 물론 이 질문들은 나의 영역이 아니다. 결정은 주치의인 교수님께서 하실 것이고, 학생인 나의 생각이 실제 진료에 변화를 일으켜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다. 이러한 점도 큰 이유지만, 사실 내가 아는 것을 토대로 어렴풋이 대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 이유는 나의 말 한마디로 인해 환자분이 기대감을 가지거나, 실망감을 갖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 해, 그 말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점이 이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내후년에 의사가 된다면 그 때도 두렵다는 이유로, 책임 회피를 위해 대답을 마냥 피해서만은 안 될 것이다. 나의 말에 자신감을 갖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지식이다. 의사의 무지는 환자에게 큰 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많은 지식과 실력을 가진 의사는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내 말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그보다 강한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지식이라는 근력이 필요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환자에게 하는 의사의 말은 그들의 건강과 감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더 큰 중요성을 가진다. 많은 질문들에 대해 온전히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말을 하는 의사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만날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많은 지식과 책임감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