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적 항생제 20mg 처방을 10mg으로 4년 조제 약사 '무혐의'
"변경조제 실수, 약사 신뢰도와 직결…엄격한 관리 필요"
#. 의사가 처방한 데로 약을 주지 않은 약사가 있다. 약사는 의사가 처방한 용량의 절반만 환자에게 줬다. 환자는 4년 동안 이 약을 복용했다. 다행히 환자의 신변에 해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이 환자는 앞으로 4년 더 같은 약을 복용해야 한다.
약사의 행위는 의사 처방을 이행하지 않은 '변경조제'. 하지만 변경조제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의사도 용량을 낮춰서 주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기에 약사의 행위를 몰랐다. 그럼에도 검찰은 약사의 행위를 단순한 '실수'로 판단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의료계는 물었다. 다행히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약 복용으로 환자에게 암의 재발 같은 불상사가 생겼다면 검찰은 다른 판단을 했을까.
앞서 말한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 C씨의 주치의는 수술 후 예방적 항암제 '놀바덱스(Nolvadex) 20mg'을 처방했다. 주치의는 병원에 놀바덱스 코드가 없어 처방전에 놀바덱스의 복제약인 '타목센 20mg'을 기입하면서 '놀바덱스로 주세요'라는 참조 문구를 넣어 처방전을 발급했다.
문제는 약사가 처방전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 약사는 정확한 처방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C씨에게 놀바덱스 10mg을 조제해 줬다.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의 동의를 얻거나 추가적인 확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
C씨는 2015년 봄부터 약 4년 동안 잘못 조제된 약을 먹었다. 치료용량에 현저히 모자라는 약을 복용하면서 C씨는 암의 재발 확률이 높아지는 위험에 노출됐다. 결국 주치의 권고에 따라 항암제 투약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C씨는 해당 약사가 약사법 제26조 1항 내지 2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다. 의료법 제26조는 약사가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 동의 없이 처방을 변경하거나 수정해서 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해당 사건에 대해 서울시내과의사회는 검찰에 소견서를 제출하며 "같은 용량의 약품 놀바덱스D 20mg으로 조제했다면 대체조제라고 할 수 있지만 놀바덱스 10mg으로 조제하면 변경조제에 해당한다"라며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연락해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담당 의사에게 확인하거나 용량에 맞춘 조제를 하지 않았다면 올바른 조제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2017년에 나온 전주지방법원 판결을 인용해 무혐의라고 판단했다. 4년 동안 이어져온 약사의 행동이 고의가 아니었고, 과실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놀바덱스를 준다고 해서 약국이 이익을 본 게 없다는 이유도 더했다.
보건복지부도 이미 2014년 약사의 변경조제에 대해 단순 실수와 고의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변경조제에 해당하더라도 약사가 환자에게 고의적으로 위해를 가하기 위해 처방전과 다르게 변경조제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적정 용량을 조제하지 못한 과실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약사법 위반으로 물을 수 없다"고 했다.
C씨 변호를 맡은 김용범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수준의 실수라고 본다"라며 "통상 내가 이 행동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과실 또는 고의가 없었다고 한다. 어떤 행위를 한다고 인지하면 그것이 고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암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너무 다행이지만 투약 기간이 결국 연장됐다"라며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약이 갖고 있는 기본적 영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잘못 조제된 약을 복용한 것 자체가 황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C씨는 검찰의 결정에 항고를 했고, 재개 수사 명령까지 나왔지만 또다시 같은 결론이 나오자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해당 처분이 합당한 것인지 법원에서 가려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의료계 "부주의한 변경조제, 실수라도 문제"
의료계의 입장도 단호하다. 실수든 아니든 의사의 요청 없는 변경조제 문제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
한 의사단체 임원은 "의약분업은 의사 처방에 따라 약사가 조제함으로써 의약품의 무분별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도입됐다"라며 "의사가 처방을 내려도 약사가 조제에서 실수를 하면 국민건강 보호 및 증진 목적에도 어긋나고 의약분업 원칙도 훼손하는 것이다. 대체조제 사후통보 법안도 국회에 올라와 있는데 실수라는 이유로 벌어지고 있는 변경조제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관계자도 "약을 치료용량 이하로 사용하면 원하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그 이상으로 사용하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의학적 상식"이라며 "의사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변경조제를 하는 것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매우 문제"라고 말했다.
변경조제 실수는 약사 전체의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의사단체 보험이사는 "약사 개인의 실수라고 하지만 전체 약사들에 대한 신뢰도 문제"라며 "단순 실수로 보고 법적 제제도 없다면 자동화 기기에서 약을 타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검찰의 해석대로 단순 실수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면 보완입법을 통해서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용범 변호사는 "의약분업 대원칙이 지켜지면서 국민 보건에 영향이 없으려면 의사가 처방한 약이 환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돼야 한다"라며 "기초적으로 용량을 정한 것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성분명처방 처럼 약의 효능에 대한 부분을 약사에게 넘기면 조제 서비스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변경조제 실수를 약사법 26조 1항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문구를 분명히 한다거나, 고의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는 쪽으로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사의 행위는 의사 처방을 이행하지 않은 '변경조제'. 하지만 변경조제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의사도 용량을 낮춰서 주라는 요청을 하지 않았기에 약사의 행위를 몰랐다. 그럼에도 검찰은 약사의 행위를 단순한 '실수'로 판단하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의료계는 물었다. 다행히 환자에게 위해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잘못된 약 복용으로 환자에게 암의 재발 같은 불상사가 생겼다면 검찰은 다른 판단을 했을까.
앞서 말한 사건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유방암 수술을 받은 환자 C씨의 주치의는 수술 후 예방적 항암제 '놀바덱스(Nolvadex) 20mg'을 처방했다. 주치의는 병원에 놀바덱스 코드가 없어 처방전에 놀바덱스의 복제약인 '타목센 20mg'을 기입하면서 '놀바덱스로 주세요'라는 참조 문구를 넣어 처방전을 발급했다.
문제는 약사가 처방전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 약사는 정확한 처방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C씨에게 놀바덱스 10mg을 조제해 줬다.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의 동의를 얻거나 추가적인 확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
C씨는 2015년 봄부터 약 4년 동안 잘못 조제된 약을 먹었다. 치료용량에 현저히 모자라는 약을 복용하면서 C씨는 암의 재발 확률이 높아지는 위험에 노출됐다. 결국 주치의 권고에 따라 항암제 투약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C씨는 해당 약사가 약사법 제26조 1항 내지 2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다. 의료법 제26조는 약사가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 동의 없이 처방을 변경하거나 수정해서 조제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해당 사건에 대해 서울시내과의사회는 검찰에 소견서를 제출하며 "같은 용량의 약품 놀바덱스D 20mg으로 조제했다면 대체조제라고 할 수 있지만 놀바덱스 10mg으로 조제하면 변경조제에 해당한다"라며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연락해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담당 의사에게 확인하거나 용량에 맞춘 조제를 하지 않았다면 올바른 조제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검찰은 2017년에 나온 전주지방법원 판결을 인용해 무혐의라고 판단했다. 4년 동안 이어져온 약사의 행동이 고의가 아니었고, 과실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놀바덱스를 준다고 해서 약국이 이익을 본 게 없다는 이유도 더했다.
보건복지부도 이미 2014년 약사의 변경조제에 대해 단순 실수와 고의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은 "변경조제에 해당하더라도 약사가 환자에게 고의적으로 위해를 가하기 위해 처방전과 다르게 변경조제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적정 용량을 조제하지 못한 과실이 있더라도 그 책임을 약사법 위반으로 물을 수 없다"고 했다.
C씨 변호를 맡은 김용범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는 수준의 실수라고 본다"라며 "통상 내가 이 행동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과실 또는 고의가 없었다고 한다. 어떤 행위를 한다고 인지하면 그것이 고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암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너무 다행이지만 투약 기간이 결국 연장됐다"라며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약이 갖고 있는 기본적 영향을 생각하면 충분히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잘못 조제된 약을 복용한 것 자체가 황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C씨는 검찰의 결정에 항고를 했고, 재개 수사 명령까지 나왔지만 또다시 같은 결론이 나오자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 재정신청은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불복해 해당 처분이 합당한 것인지 법원에서 가려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의료계 "부주의한 변경조제, 실수라도 문제"
의료계의 입장도 단호하다. 실수든 아니든 의사의 요청 없는 변경조제 문제는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
한 의사단체 임원은 "의약분업은 의사 처방에 따라 약사가 조제함으로써 의약품의 무분별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도입됐다"라며 "의사가 처방을 내려도 약사가 조제에서 실수를 하면 국민건강 보호 및 증진 목적에도 어긋나고 의약분업 원칙도 훼손하는 것이다. 대체조제 사후통보 법안도 국회에 올라와 있는데 실수라는 이유로 벌어지고 있는 변경조제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대한임상순환기학회 관계자도 "약을 치료용량 이하로 사용하면 원하는 효과를 보기 어렵고, 그 이상으로 사용하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의학적 상식"이라며 "의사에게 확인도 하지 않고 변경조제를 하는 것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매우 문제"라고 말했다.
변경조제 실수는 약사 전체의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의사단체 보험이사는 "약사 개인의 실수라고 하지만 전체 약사들에 대한 신뢰도 문제"라며 "단순 실수로 보고 법적 제제도 없다면 자동화 기기에서 약을 타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검찰의 해석대로 단순 실수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면 보완입법을 통해서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용범 변호사는 "의약분업 대원칙이 지켜지면서 국민 보건에 영향이 없으려면 의사가 처방한 약이 환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돼야 한다"라며 "기초적으로 용량을 정한 것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데 성분명처방 처럼 약의 효능에 대한 부분을 약사에게 넘기면 조제 서비스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변경조제 실수를 약사법 26조 1항에 따라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문구를 분명히 한다거나, 고의와 무관하게 처벌할 수 있는 쪽으로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