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의 급여화 그리고 건강한 의료제도(하)

서인석
발행날짜: 2021-08-23 05:45:50
  •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

전세계의 흐름이 BC(before corona), AC(after corona)로 바뀔 정도로 코로나 이후 많은 변화가 올것으로 예측한다. 의료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의 타격이 컸다.

서인석 보험이사.
10여년간 의료계가 반대해왔던 비대면 진료는 이제 자연스러워 졌다. 기존 대한민국 의료현장의 모습을 보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과 AC이후 의료제도에 바라는 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첫째, 의료환경과 진료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OECD 국가 대비 대한민국은 진료량이 2배 이상 높다. 외래진료는 2.4배 많고 병상은 2.6배 많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면 모르겠지만 환자, 의료기관 그리고 정부(보험자)모두 만족하는 것 같지 않다. 많은 진료 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진료비와 부족한 의료인 수는 환자들은 치료는 받지만 의사에게 묻거나 충분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없어 의사-환자 관계는 멀어지고 의료진은 과노동에 지쳐간다.

더욱이 이번 코로나사태처럼 예측하지 못하게 자원소모량이 많아지는 시점에는 전체 의료체계 유지가 힘들어진다. Risk management에 중요한 요소는 buffer management가 중요한데 항상 최대치로 업무를 하다 보면 환자가 갑자기 중증으로 빠졌을 때 인력이나 자원이 투입될 여지가 부족해진다.

이는 환자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나 그간 의료진들이 충분한 휴식 없이 소위 ‘몸으로 때우는 식’이었다. 이런 개인의 헌신과 체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은 한 개인의 에러가 전체 시스템에 치명적인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

그동안 계기가 없었다면 변화가 쉽지 않았겠으나 AC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5대암 5년 생존율 최고인 나라에서 만성질환관리는 잘 안 된다고 하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관련된 의료공급체계와 연계된 전달체계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야 한다. 현재는 의원과 상급의료기관이 만성질환 환자를 경쟁하는 체계이다. 누가 잘못한 게 아니라 장벽 없이 환자를 보다 보니 발생한 결과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종별 공급체계에 맞는 차등화된 상대가치점수 체계가 필요하다.

중소 병의원에게 만성질환관리, 건강검진, 영유아 검진-예방접종에 대한 업무는 상시 업무이며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는 진료과들이다. 이렇게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이 서로 과열경쟁을 하다 보면 높은 부동산-인테리어 비용, 고가 의료장비, 홍보비 등으로 경쟁을 위한 비용이 지출이 되고 진료시간을 늘려 의료진은 과노동을 한다. 그러다 보면 귀한 전문의들이 건강보험 영역에서 탈출하여 비급여(미용성형,도수치료,영양제 등) 영역으로 이동한다.

당연히 의료기관도 선택을 받기 위해 환자의 아픔을 들어주며 최신의학지식 습득을 위한 노력은 당연하나 과도한 경쟁은 불필요한 비용을 조장하고 필수의료의 공급실패를 가져온다. 이런 관점에서 경쟁의 요소를 줄이고 이를 필수진료공급체계에 어떻게 재정을 투입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상급종합병원도 중증질환 진료와 교육수련에 매진해야 할 고급 의료인력이 외래와 수술 등 진료압박이 상당하다. 한번에 모든걸 다 바꿀 수 없겠으나 양질의 교육수련에 대한 명확한 지원, DRG-A에 대한 가산을 위한 상대가치개편은 의료기관 기능재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셋째, 의료기관의 공급체계 뿐 아니라 필수의료인력의 지속적인 공급을 위한 대책도 필요하다.

영유아, 소아 관련 외과, 마취과, 소아심장, 흉부, 정형, 재활 등 기피과들은 분과전문의 지원이 뚝 끊겨간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다발성외상, 절단과 관련된 진료과목도 마찬가지이다. 고도의 수련과 좋은 병원시설이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이런 필수 진료과목은 상급종합병원에서 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얼마 전 수지접합으로 유명한 원장님의 하소연은 수 년 후 대한민국 의료의 아쉬움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심장소아과, 소아흉부외과도 마찬가지 이다 . 흉부외과도 안가는 데 소아 흉부외과는 어떨까? 아래는 의사가 아닌 환자 보호자의 목소리이다.

넷째, 중증환자를 위한 치료재료 공급 보완정책이 필요하다.

지난 6월 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정책토론회에서 심혈관 치료재료 공급 문제점이 지적되어 관련내용을 알아보았다. 심혈관질환 치료재료를 공급하는 A사의 경우 새로운 재질의 조직판막은 2016년 유럽 CE Mark 승인, 201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이후 일본, 중국, 인도 등 아시아 국가 포함 전 세계적으로 이미 60여 개국 이상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2021년 상반기 조직판막 중 70% 이상을 최신 제품이 차지할 만큼 전환율이 빠르다고 하며 최신 조직판막 뿐 아니라 판막성형술 링 등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제품이 일본 해당 사업부서 판매의 45%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제품 판매 구성비가 한 자리 수에 불과하여 신제품 도입이 지연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현행 치료재료 등재과정의 문제에 있다. 물론 행위료 이외 별도 산정되는 치료재료의 등재와 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다. 그러나 엄격한 재정관리 때문에 꼭 들어와야 하는 치료재료가 못 들어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외국에 비해 시장이 작은 우리나라에서 소수 환자에게 사용되는 치료재료는 일반적인 가격결정과정으로는 공급이 쉽지 않다. 물론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등에 관한 규정’ 을 개정하였으나 아직 임상현장에는 체감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의료기술이 선진화된 만큼 꼭 필요한 치료재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보장성 강화 정책 이후 대안적 정책이 필요하다.

초음파, MRI및 관련 치료재료가 급여화 되면서 유관 의료행위 보상에 재정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의료기관 종별로, 규모별로 그 보상 규모는 다를 수 있으며, 또 비급여 보다는 급여 행위들은 심사대상이므로 적용대상이 줄어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반기 급여화 논의중인 척추MRI는 아무래도 그 횟수가 급여화 이후 현재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비급여가 줄어들면 주 진료도 변화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진료과는 수련과정때 배운 걸 개원해서 많이 활용하는 과가 좋다고 했다. 신경외과 정형외과 선생님들의 디양한 의료행위에 적정한 대우를 하면 서로 상생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여섯째, 간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호관리 차등제 및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중기적으로 통합 운영해야 한다. 현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수년째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반병동의 간호등급 차등제와 이원화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원래 3대 비급여 때 제기된 간병비 급여화에는 부족하다.

현재 간호관리 차등제는 간호인력만 등급에 반영하며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는 고용하더라도 수가를 받을 수 있는 기전이 없다. 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간병인 비용이 9만원 전후이다. 본인부담 상한제에도 소득공제도 받을수 없는 지출이다. 간병보험을 들지 않은 간병인으로 인한 사고는 보상받기도 쉽지 않다.

환자의 중증도와 ADLs 필요도에 따라 국가자격을 가진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를 투입하고 이에 대한 적정한 수가 보상을 해주면 국민들의 간병비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역주민의 고용 창출에도 도움을 주어 병원-지역사회 공동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으로 지난 보장성 강화 정책을 돌아보고 향후 필요한 정책들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보건의료정책은 서로 얽혀 있어 하나만 수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폭넓게 의료현장을 살피면서 소수의 중증 환자들도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정책과 건강보험제도가 필요하다.

이제 곧 대선정국이며 보건의료정책에도 새로운 대안이 제시될 것이다. 전통적으로 보건의료정책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포스트코로나 시대에는 좀 다를지 모른다. 기존에 변화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생각보다 쉽게 갈수도 있고 기존의 공급자들도 (살기 위해서라도)변화해야 할지 모른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인구문제이며 초고령 사회에 관한 문제는 의료를 넘어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산 넘어 산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산 정상에 도달할 것이라 생각하며, 긴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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