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시상자 따귀' 소동으로 전세계가 시끄러웠다. 흥미로운 대목은 사건을 바라보는 서구인(미국인)과 동양인(한국인)의 시선이 한 지점에서 분명한 온도차를 보였다는 점이다.
관계와 위계를 중요 시 하는 한국인들은 주로 윌 스미스의 아내를 농담의 소재로 삼은 크리스 록이 "맞을 짓을 했다"는 반응인 반면 미국인들은 폭행 장면까지 농담꺼리로 만든 크리스 록을 프로답다고 추켜세웠다. 그들이 윌 스미스에 보인 냉담한 반응은 말할 나위가 없다.
차이는 의식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은 표면적으로는 민주공화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역사는 고작 70여년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봉사할 최적 체제에 대한 이념적 고민 끝에 선택한 결과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 보단 조선왕조 500년이 넘는 동안 각인된 뿌리깊은 관계와 위계에 의한 질서에 운 좋게 획득한 민주적 시스템이 덧대있다는 표현이 더 설득력이 있다.
존대와 하대, 선배와 후배, 높은 분과 아랫 사람으로 해석되는 조직 구조 역시 우리에게 선탑재된 그 뿌리깊은 '낡음'을 짐작케하는 단서들이다. 여전히 타인을 구속하는 "좀 맞아야 한다"는 언급이 농담처럼 나오고 "감히 장관의 명을 거역했다"는 낯뜨거운 하명이 미디어를 장식하는 건 주권이 국민에게 나오고, 정치인은 그 권력을 일부 이양받아 사용한다는 인식 체계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다.
서두를 길게 뽑은 건 규제기관의 '일방적인 칼춤'에서 위계에 의한, 높으신 사람들의 권력지향적 속성들이 지속되고 있음을 봤기 때문이다.
최근 휴젤의 보툴리눔 톡신제제 보툴렉스의 품목허가 취소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대법원이 휴젤 측의 손을 들어줬다. 식약처는 지난해 12월 2일 국내에 설립된 무역회사를 통해 수출(간접 수출)한 제품을 국내 판매로 간주해, 휴젤 보툴렉스 4종 제품에 대한 품목 허가 취소 및 회수·폐기 명령을 내렸다.
수출의 경우 국가출하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법리적 해석 차이가 있는 부분을 식약처는 독단적으로 국내 판매로 해석, 국가출하승인 없는 제품 판매 명목으로 허가 취소 결정을 내렸다. 모든 법이 상황을 규정하진 못한다. 유권해석이 필요한 이유도 법이 규정하지 못한 빈틈을 메우기 위한 조치다. 이견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약처가 허가 취소 카드를 꺼내든 건 규제기관이 업체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손쉬운 결정'이다.
150개 의료기기 기업들이 참여한 최근 설문에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만 다른 기류가 나타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시장 진입과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해외 기업들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정부와 규제기관을 사업 진행의 제1의 난관으로 꼽았다. 사실상 정부가 산업의 발목을 잡는 주범이라는 뜻이다.
식약처 심사위원을 역임했던 강윤희 전 위원은 "식약처의 망나니 칼춤에 보툴리눔 사업 다 죽는다"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안전성 이슈에만 제한적으로 허가 취소 카드를 꺼내드는 해외 규제기관과 달리 국내 식약처는 툭하면 허가 취소를 남발, 작년에만 10여개 품목이 말소되는 '취소 풍년'을 겪었기 때문이다.
서구인의 사상적 원류는 자유와 이성, 합리성에 기반한다. 그들은 자유를 죽음을 불사하더라도 지켜야 할, 대체 불가능의 가치로 여긴다. 해외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리는 품목들이 한국에서만 유독 전문약으로 팔리는 건 개인에 대한 자유와 책임 부여 대신 국가, 정부, 규제기관이 어리숙한 백성을 계도하겠다는 선민의식과 맞닿아 있다. 전단지 배포까지 불법으로 규정하는 과도한 행정 우선주의 나라에서 연예인의 자살 대책으로 나온 댓글란 폐쇄, 개봉전 영화 댓글 차단 및 리뷰 검열과 삭제 등과 같은 조치는 어쩌면 당연한 해법인지도 모른다.
대상을 신격화하고 성역시 하는 '자발적 백성'들이 있는 한, 그리고 백성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교조적인 양반'이 있는 한 이런 갈라파고스식 해법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언제쯤 규제기관은 업체를 대등한 동반자로 여기게 될까. 차이는 의식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