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10년째 미래의 유망주"
근 10년을 되돌아 볼 때 이만큼 대중들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나 싶다. 미래의 유망주라고 매년 똑같은 농담을 되풀이 했지만 그런 시기는 쉽게 오지 않았다. 제약/바이오 광풍이라는 말이 나올 때도 나홀로 소외됐지만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의료기기 이야기다.
의료 산업 분야를 이야기할 때 의료기기는 늘 찬밥 신세였다. 규모나 덩치면에서 봐도 제약이나 바이오에 밀려있었다. 가내수공업식 다품종 조립/생산 공정에 머무르는 의료기기 분야에서 신성장 동력에 비견되는 부가가치 등 잠재력을 본 이들은 많지 않다. 대중의 무관심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변화 단면은 IT, AI 기술의 발달, 웨어러블 기기나 스마트워치의 센싱 기술을 활용한 각종 건강 앱들의 개발, 그리고 그 앱들의 효용성 증명이 선순환처럼 이어지는 것에서 볼 수 있다. 디지털이 붙은 학회들이 창립된 것은 물론 각 학회들이 전자약으로 불리는 디지털 치료기기 활용성 및 임상적 효과를 논의하면서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문제는 규제와 관심이다. 한시적으로나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지만 언제든 활로는 차단될 수 있다. 의료기기에 적용되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 회사들이 건강 관련 앱을 최대한 '다운 그레이드'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지금 업계의 현실이다.
과도한 관심은 때론 독이된다. 기대감 보다 걱정이 앞서는 건 과도한 기대감이 섣부른 실망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광경을 지난 바이오 광풍 때 목격한 바 있다.
해외에선 조 단위의 개발비를 쏟아붙고도 신약 개발에 실패하거나 매몰비용을 줄이기 위해 개발 중단을 선언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그만큼 낮은 확률의 신약 개발 성공은 곧 실패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신약 개발은 요원하고 어렵지만 실패를 경험적 자산으로 보는 대중의 인식이, 그리고 끊임없는 투자가 지금의 미국과 같은 신약 강국을 만들었다.
신약 개발만 선언하면 주가가 날뛰었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의료기기 업체, 스타트업계가 비슷한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드는 것도 과도하진 않다. 벌써 수 곳에 달하는 AI 활용 진단 업체들이 주식 상장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물론, 신약 개발 선언에 버금가는 각종 프로젝트를 언급하며 주가 부양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약 불모지 한국에선 고작 수 백억원, 수 천억원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실패만으로도 과도한 비관론에 업체의 명운이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점에서 전자약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약제의 보조 역할에 머무를 뿐 대체재 개념은 아니다. 엄격한 비용-효과성 평가 대신 장미빛으로만 보는 전자약의 미래나 과도한 낙관론은 오히려 이제 막 서광을 본 의료기기 업체에 독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신약/의료기기 강국의 완성은 업체들만 짊어질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의 수준 역시 묻지마 투자에 나서는 투기꾼이 아닌 투자자로 업그레이드 돼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다. 의료기기 산업은 이제 막 전성기 초입에 들어섰다. 어떻게 싹을 키워 결실을 맺을 지는 공동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