렐레팍트 공급중단 장기화 속 허가 초과 신청 병원 급증
진단‧급여기준 괴리 속 성장호르몬 주사제 시장은 팽창
성조숙증 환자가 한 해 13만명에 육박한 가운데 관련 의약품 시장에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환자를 진단하기 위한 '시약'은 부족한 데 반해 치료제로 사용되는 성장호르몬 주사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당국도 이와 관련된 급여기준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8일 의료계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성조숙증 '진단 시약'으로 처방되고 있는 주사제 품목이 지난해 3월부터 공급이 중단된 후 1년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품목은 한독이 국내 공급했던 '렐레팍트 LH-RH(고나도렐린아세트산염)'이다.
원 개발사인 사노피가 이 품목을 지난해 3월 공급 중단 결정을 내리면서 국내에 성조숙증 진단 시약의 씨가 마른 것.
이 때문에 임상현장에서는 한국페링제약 '데카펩틸주' 등에 대해 허가 초과 사용 승인을 신청한 뒤 이를 성조숙증 진단 시약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카펩틸주는 호르몬 의존성 전립선암이나 자궁내막증 및 자궁근종, 9세 이하 여아 및 10세 이하 남아의 중추성 사춘기조발증에 허가된 전문의약품이다. 성조숙증 진단 시약으로 허가받지 않은 약물을 임시방편으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허과 초과 사용 승인 신청을 하면서 임기응변식 처방을 하고 있는 것.
실제로 심평원이 국회에 제출한 '최근 3년 성조숙증 진단시약 허가초과 사용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 31개소에 불과했던 신청 기관수가 2021년 63개소로 2배 이상 급증했다.
렐레팍트 주사제를 구하지 못한 병원들이 데카펩틸 주사제로 대체해 진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소아내분비학회 임원인 A대학병원 교수는 "렉레팍트 주사제가 남은 병원들은 그나마 잔여분을 활용하면서 해당 품목이 재수입될 때 까지 일단 버텨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데카펩틸주를 심평원에 허가 초과로 신청하면서 성조숙증 진단에 활용하는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성장클리닉을 운영 중인 또 다른 대형병원 교수는 "태국 등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논문 등이 제시되면서 국내에 일부 병원들이 이미 심평원에 허가 또는 신고 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 승인을 제출해 건강보험 급여 처리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전국적으로 성조숙증 환자 진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며 "복지부나 식약처, 심평원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약은 없는데…" 성장호르몬 주사제 '승승장구'
성조숙증 진단시약이 '씨가 말랐다면' 치료제로 쓰이는 성장호르몬 주사제 시장은 날이 갈수록 급성장하고 있다.
성조숙증은 사춘기에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해 2차 성징이 지나치게 빨리 나타나는 경우를 의미한다.
성조숙증이 나타나는 아이는 2차 성징이 빨리 나타나면서 성장 속도가 일시적으로 증가하지만, 골단 융합이 조기에 이루어져 성장판이 일찍 닫히고 최종 성인키가 평균 키에 한참 못 미치게 된다. 이러한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성조숙증 환자에 성장호르몬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가운데 진단시약 부족 속에서도 임기응변으로 성조숙증 진단, 환자가 급증하면서 성장호르몬 주사제 시장이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성장호르몬 주사제 시장은 LG화학이 주도했다.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대표 품목인 유트로핀의 경우 2020년 554억원 매출을 거둔데 이어 2021년 711억원이라는 역대급 성적표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도 210억원의 매출을 기록, 전년 같은 기간(155억원) 대비 36%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뒤이어 시장을 형성 중인 ▲동아에스티 '그로트로핀투' ▲머크 '싸이젠'·▲노보노디스크 '노디트로핀' 등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올해 1분기에도 모두 두 자릿수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기존 매출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출산율이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데 반해 성장호르몬 주사제 시장은 계속 커지고 있는 기이한 상황"이라며 "보험 급여 확대의 영향도 있지만 워낙 비급여 시장이 큰 상황이다. 비급여 시장의 성장 속에서 계속 주사제 매출도 늘어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한편, 성조숙증 진단과 치료를 둘러싼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면서 심평원도 관련 사항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급여기준 개선 필요성을 내부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성조숙증은 성호르몬이 여아는 8세 이전, 남아는 9세 이전에 분비돼 사춘기 징후가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반면 현재 성조숙증 치료를 위한 성장호르몬 주사제 활용 시 투여시작은 여아 9세(8세 365일), 남아는 10세(9세 365일)미만이며, 투여종료는 여아 11세(11세 364일), 남아는 12세(12세 364일)까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결국 진단과 급여기준 간의 1년간의 '기간'의 차이가 임상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
심평원 관계자는 "여아를 기준으로 성조숙증 진단기준에는 8세 미만에 증상이 나타나야 하는데 급여기준에는 9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놨다"며 "이는 건강보험 급여로 아이의 성조숙증 확인 과정을 거침에 따른 시간상의 차이를 극복함에 따른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급여기준 상에 성조숙증의 명확한 진단기준이 포함될 필요가 존재한다"며 "진단기준을 명확 시 해 성조숙증 환자의 성장호르몬 주사 투여의 적절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