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급 의료기기 공급내역보고 1년간 행정처분 유예 결정
일단은 1년 시간 벌어…"1등급 보고와 겹치면 무용지물"
의료기기의 입·출고 현황을 하나씩 입력해야 하는 공급내역 보고 제도가 2등급 의료기기까지 확대되며 부담을 호소하는 기업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가 결국 대책을 꺼내놓았다.
1년간 행정처분을 유예하기로 최종 결정한 것. 이에 대해 의료기기 기업들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는 입장이지만 결론적으로 처분만 1년 미뤄졌을 뿐이라는 점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5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2등급까지 확대 시행된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을 감안해 행정처분을 1년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식약처는 이러한 결정을 의료기기 기업들에게 전달하고 내년 6월 30일까지 이에 대한 보고를 완료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란 의료기기 유통구조 개선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제도로 말 그대로 의료기기가 입·출고된 내역을 식약처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 골자다.
일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으로 수백명에 달하는 C형 간염 환자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의료기기의 이동 경로를 모두 보고하도록 조치한 제도.
불투명한 유통 구조로 인해 위해 의료기기나 중고 의료기기 등에 대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데다 일회용 의료기기의 재사용 등을 막을 방법이 없는 만큼 추적이 가능하도록 이동 경로를 모두 보고하도록 조치한 셈이다.
따라서 식약처는 2020년 가장 위험성이 높은 4등급 의료기기부터 시작해 2021년 3등급, 2022년 2등급, 2023년 1등급 의료기기로 단계적 확대 방안을 추진중에 있다.
하지만 문제는 말 그대로 위해성이 낮은 의료기기 등급으로 내려갈 수록 취급 품목이 너무 많아진다는 점에 있다.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
그나마 4등급, 3등급 의료기기의 경우 품목수와 입·출고 내역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그나마 보고가 가능했지만 2등급, 특히 1등급의 경우 도저히 감당 자체가 안된다는 호소다.
의료기기 유통 기업인 A사 대표는 "제도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1, 2등급 기기들은 사실상 소모품 성격의 제품이 많다"며 "그 많은 제품을 하나씩 다 입력하자면 최소한 전담 인력을 몇 명은 채용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표적인 2등급 의료기기를 보면 체온계와 주사기, 카테터 등이 꼽히며 1등급 의료기기의 경우 콘텍트렌즈와 안경 렌즈, 마스크, 침 등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특히나 1, 2등급 의료기기의 경우 소포장 제품이 많아 하루에도 수십번씩 공급내역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하나도 보태지 않고 정말 하루 종일 앉아서 이 작업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식약처가 급하게 행정처분에 대한 유예 결정을 내린 것도 이러한 기업들의 불만과 호소 때문이다. 단순히 몇 개 기업이 아닌 2등급 의료기기 보고 대상이 되는 기업을 대부분이 같은 호소를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 또한 말 그대로 행정처분만 1년 유예됐을 뿐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의 한숨은 여전한 상황이다. 결국 해야할 일은 그대로 남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
특히 2등급 의료기기에 대한 보고조차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에는 1등급으로 대상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첩첩산중이라는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국내 B기업 임원은 "일단 한시름 놨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 어짜피 맞을 매를 내년에 맞는 것일 뿐"이라며 "특히나 올해부터 1등급 표준코드에 대한 등록이 시작된다는 점에서 어짜피 기업들 입장에서는 첩첩산중인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결국 2등급 의료기기 보고를 진행하면서 1등급 의료기기에 대한 정리를 시작하고 내년 7월부터는 1등급에 대한 보고를 이어가야 한다"며 "정말 기업들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면 1, 2등급 일정을 모두 조정해야지 2등급에 대한 행정처분만 유예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