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진료 유익성 확인…상업화 및 체계 혼란은 우려"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본 방역정책…"전문직 윤리 훼손"
의료윤리연구회 문지호 회장이 6대에 이어 7대 회장을 연임하게 됐다. 연구회 창립 후 첫 연임 회장이 된 그는 새로운 임기의 주요 연구 주제로 비대면진료를 꼽았다.
지난 16일 의료계 기자단과 진행된 인터뷰에서 의료윤리연구회 문지호 회장은 새 임기를 맞아 비대면진료의 윤리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료의 확장에 대한 국민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사업성에 치중해 의료윤리를 외면하는 사례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계가 나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 회장은 의료윤리적인 관점에서 비대면진료를 봤을 때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점과 관련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제한적인 비대면진료를 하면서 많은 환자와 의사가 그 유익성을 경험했다"며 "펜데믹 상황에서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의 보완책으로서 장점을 발휘했다. 환자에게 더 많은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보완할 수 있었다는 것이 윤리적인 장점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단점에 대해선 "하지만 좋은 점이 있어도 환자를 진찰하고 돌보는 의료의 본질이 흔들린다면 기술적 보완이 될 때까지 비대면 진료는 보류하는 것이 맞다"며 "4차 산업 성장이라는 환상을 좇다가, 의료가 플랫폼 산업에 종속돼 상업화되거나 의료전달체계에 혼란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진료가 활성화된 계기인 코로나19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실제 올해 연구회 월례강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코로나19다. 그는 코로나19 방역정책을 대하는 의료인의 자세에서도 윤리적이었던 부분과 비윤리적인 부분이 나뉜다고 짚었다.
그는 코로나19 초기 대구에 봉쇄된 확진자를 진료하기 위해 많은 의료진이 자원하는 등 감염의 위협을 무릅쓴 것은 전문직 윤리를 실천한 예라고 전했다. 하지만 비과학적이고 일관성이 없는 방역정책을 의료계가 보다 강하게 지적하지 못한 것은 윤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정부의 방역정책 중 성공적인 조치도 있었지만 ▲종교 활동 간 형평성 없는 방역 조치 ▲영업금지 사업장 범위의 비일관성 ▲비과학적인 과잉 격리 ▲낮은 효율의 백신 강요 등으로 정치방역이라는 오명이 더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방역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의료계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대한의사협회가 보다 강하게 전문적인 의견을 개진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문 회장은 "정부가 의사에게 투명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전문직 윤리를 심각하게 손상시킨 일이라고 평가한다"며 "앞으로 정부가 방역대책을 세우는 데 있어 전문가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시키지 못한다면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의 연구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으론 중환자실의 의료윤리 강의를 꼽았다. 현장 의료진을 통해 중환자실 환자와 보호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사는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해야 함을 깨달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겪게 되는 의료윤리 문제는 생명과 죽음이다. 죽음 앞의 환자는 단지 병들어 꺼져가는 존재가 아니라 끝까지 존귀한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시간이었다"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4년이 된 이 시점에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의료인들은 좋은 죽음으로의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문 회장은 의료윤리연구회의 의의로 여러 의료계 현안에 윤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꼽았다. 관련 성과로는 지난 12년 간 의료 사회에서 발생한 문제를 의료윤리적 시각으로 짚은 기록을 남긴 것을 들었다.
그는 "의료계가 불편하게 느끼는 사안들은 대부분 의료윤리에 위배되는 정책이나 제도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며 "연구회는 이런 불편함을 윤리적 잣대로 정리해 설명할 수 있는 의료 단체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참여로 인터넷 상의 레퍼런스도 쌓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회원의 요청이 있었던 의료인문학 강의도 지속할 계획이다. 의사를 바라보는 제 3자의 시각을 이해하는 것은 전문직이 사회에서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고 이를 위해선 의료 인문학이 유효하다는 게 문 회장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 총회 때 진행된 인류학 강의가 회원들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지난 임기 때 주요 연구주제로 의학전문 직업성을 꼽기도 했다. 문 회장은 의사의 전문 직업성이 훼손되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가 없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이유 또한 없어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 직업성을 공고히 할 자율규제와 이를 제도화할 수 있는 의사면허관리 방편을 논의했다는 설명이다. 그 일환으로 전문 직업성을 위협하는 공공의대, 수술실 CCTV 법안, 간호단독법의 문제점 등을 다루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문 회장은 의료계의 윤리적인 결정에 의료윤리연구회가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리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고를 감수해야 하고 손해가 있어 보이는 길을 가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 길을 지켜온 이들이 있었기에 사회가 안전하게 지켜졌고 성숙한 시민 문화가 만들어졌다. 우리 연구회가 그런 길을 묵묵히 걷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