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진 학생(순천향의대 본과 3학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또 한 주간의 실습을 끝내고 간만의 휴식을 누리던 참에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했다.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동 해밀턴 호텔 일대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무리 사람이 몰렸다 해도 어떻게 사람이 죽을 정도까지 이를 수 있는거지?
후에 여러 속보를 보고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다. 거리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쓰러진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들, 너무나 빽빽하게 겹쳐 서서 오도가도 못하는 사람들… 뉴스를 보는 나까지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번 압사 사고로 인해 1일 기준 156명이 사망하고 187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실 그전에도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압사 사고들이 있었지만 343명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듯 이번 참사는 단순한 사고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큰 비극이다. 더군다나 사망자의 대부분이 나와 같은 20대 청년들이라는 점에서 더 마음이 먹먹했다.
한창 꽃을 피울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시간인 20대. 성인이 되었다는 설렘과 함께 스스로 사회를 헤쳐나가며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불타오르는 마음으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씩 성장해나가는, 그야말로 '청춘'의 시기다. 그런데 그 미래에 하얀 국화꽃 한송이가 놓여지는 것만큼 참담한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면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도 나와 단지 한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은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그들'이라는 생각보다는 '우리'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우리에게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한순간 목숨을 잃는다는 건 참 허무하기도 하고 슬픈 일이다.
사건이 일어난 이후 모든 언론에선 매일마다 이 사건에 대해 취재하고 조사한 장면들이 나온다. 어떤 뉴스에선 너무 자극적인 장면이라며 보도를 다시 철회하기도 하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선 뉴스를 통한 간접적인 시청도 정신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최대한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뉴스를 통해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보고 읽는다. 최근엔 유튜브 등과 같은 멀티미디어에 가짜뉴스가 많이 노출되면서 시선이 분산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여론을 형성하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을 가지는 것은 '언론'이다.
뉴스에 나온 말 한마디로 영웅이 만들어질 수도, 마녀사냥이 시작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더욱 더 공정해야 한다. 추측성 발언이나 편견이 들어가 있는 뉴스가 아닌, 정확하고 실체적인 사실에 기반한 뉴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언론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벌써 2년이나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재작년의 의료계 파업을 잊지 못한다. 공공의대 설립이 초래할 결과, 의대정원 증원이라는 제도에 내포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 언론에 비춰진 우리의 모습은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집단'일 뿐이었다. 언론이 조금만 더 우리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면, 우리의 파업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을까 가끔 생각이 든다.
이태원 사건에 대한 뉴스를 보면 사건의 진실을 토대로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보단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추궁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아내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진상 규명의 목적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사건을 일단락 짓기 위함이 되어서는 안된다.
의대생신문 편집장으로서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신문을 기획하고, 기사를 쓰고, 발행하는 일만은 아니었음을. 의대생을 대표하는 신문으로서 더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언론의 짊어져야 할 무게라는 걸 깨달았다.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언론은 그 때 그 순간의 진실을 포착하여 사람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 누군가에겐 가슴이 찢어질만큼 아픈 뉴스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 아픔을 뉴스에 담아내고 위로의 말을 건네며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것 또한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 또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며 시간이 흐르면 나는 나의 역할을 해내며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