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명 의료경제팀 기자
건강보험에서 말하는 '수가'는 환산지수와 상대가치점수의 곱으로 만들어진다.
상대가치점수(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는 진료비용, 의사 업무량, 위험도 등 세 가지 요소로 의료 행위의 가치를 점수로 평가한 것이다. 2006년에 1차, 2017년 7월 2차 상대가치점수 개정이 있었다. 이에 따라 수술, 처치, 기능검사, 검체검사, 영상검사로 나눠 세부 의료행위별 점수를 평가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종별 가산 폐지에 중점을 둔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을 앞두고 있다.
환산지수는 매년 건강보험공단과 공급자 단체가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내년도 동네의원 환산지수 인상률은 1.6%, 병원은 1.9%다. 상대가치점수는 개정이 되지 않는 한 고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수가 인상률은 환산지수 인상률과 운명을 같이 한다.
올해 보건복지부는 이런 환산지수에 차등을 두겠다는 파격 시도를 추진하고 있다. 원가 보상률이 100%를 넘는 검체, 기능, 영상 검사 분야 환산지수는 동결하고 이에 따른 재정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추계까지 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했다. 의료계는 강하게 반대했고, 복지부는 환산지수에 차등을 두겠다는 대전제만 남겨두는 걸로 일단 한발 물러섰다.
원가 보상률이 100%를 넘는 분야의 돈을 '동결'로 두고 이를 통해 아낀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쓰겠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정권 교체 후 정부 기조가 효율화를 넘어 '아낀다'에 초점이 강하게 맞춰져 있는 상황에서 나온 방안이기에 의료계는 어느 때보다 반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복지부는 하반기 예정된 상대가치점수 개정에서도 재정 순증을 예고하기도 했지만 의료계는 그 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믿지 않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끊임없이 과감한 재정 투입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시하며 지속가능성을 앞세우고 있는 재정을 아껴서 필수의료 강화에 쓰겠다며 의료계를 설득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재정 '순증'도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동안의 행보를 봤을 때 과감한 재정 투입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단일 건강보험 체제에서 수가는 정부의 통제가 강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는 '의사'라는 직업을 획득하기까지는 사비를 투입토록 하는, 철저하게 시장 경제에 맡겨져 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정부는 의대 정원을 증원해 필수의료를 해결하겠다고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의사 인력이 실제로 배출되기까지 발생하는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정책도 패키지로 추진하겠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매달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필수의료종합대책, 간호인력지원종합대책 등 각종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존에 추진하고 있던 정책을 보다 확대, 강화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더불어 다수의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디에서도 '과감한' 재정 투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의료계는 정부의 정책 추진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효율화, 지속가능성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형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 '신뢰'를 바탕으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정부는 의료계를 지배하고 있는 불신의 뿌리를 강화할 게 아니라 뽑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