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억원 환수 위기 의료법인 이사장, 징역형 모면하나
"외형적 형태만 갖추고 탈법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점 인정돼야"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을 만들어 병원을 운영하는 형태를 '사무장병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하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의료법인을 외형상 형태만 갖추고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까지 제시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7일 의료법인을 설립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는 혐의의 P씨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P씨는 비의료인 신분으로 지인과 1억5000만원씩 총 3억원을 기부한 것처럼 가장해 의료법인을 설립, 경상북도에서 K요양병원을 운영했다. 의료법인의 이사와 감사는 P씨의 가족이나 지인으로 구성했고 이사회 의사록은 안건 내용과 출석 이사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됐다는 내용만 기재돼 있었다.
이사장 신분인 P씨는 2014년 기준 월 1300만원씩의 월급을 받았고, 그의 아내도 이사로 선임해 월 700만~800만원의 월급을 지급했다. P씨는 방사선사로 오랫동안 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고 병원 사무장으로 일하며 의사에게 의원을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한 경험도 있다. 그는 의료법인을 설립해 이사장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봉이 3000만원 정도였다.
P씨가 설립한 K요양병원은 2009년 4월 29일부터 2015년 3월 24일까지 270회에 걸쳐 137억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를 타갔다. 검찰은 의료법인 이사장인 P씨에 대해 사기죄,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P씨는 의료법인을 운영하면서 각종 지역 모임, 협회, 학교, 국제친선교류회에 기부하는 등 지역사회에 일정한 공헌을 하기도 했다. 이같은 점을 반영해 하급심 법원은 P씨가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설립한 후 영리를 목적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했다고 보고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P씨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의료법인 개설했고 의료법인 운영 관련 주요사항은 이사회에서 결정했다"라며 "법인 운영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고 개인적 재산으로 채무변제 등 의료법인을 사유화하지 않았다"라고 항변했다.
또 "개인적 영리 추구를 위해 형식적으로 의료법인을 개설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의료법인을 개설해 운영했다"라며 "의료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요양급여비도 편취하지 않음. 형식적으로 가장해 의료법인을 개설했다고 하더라도 의료법 위반의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의료법인을 운영하면서 급여 청구해서 받았다. 의료법인으로써 실질을 갖추고 있고 의료법 등 관련 법령을 준수해 운영했다"라고 호소했다.
가족이나 지인을 이사로 선임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료법인의 원활한 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이사들에게 과다한 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단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론은 원심과 달랐다. 14명의 대법관 중 8명이 파기환송에 동의했다.
대법원은 그동안 사무장병원에 대해 '비의료인이 그 의료기관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 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 왔다.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에 자금을 출연하거나 의료법인 이사 등 임원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관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 기존 '주도성 법리'를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이 실질적으로 비의료인에 의해 개설 운영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그대로 적용하면 우려점이 있다고 봤다. 비의료인에게 허용된 행위와 허용되지 않은 행위의 경계가 불분명해 죄형법정주의 원칙, 특히 명확성의 원칙을 해칠 수 있다고 본 것.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했다는 점을 기본으로 비의료인이 외형상 형태만을 갖추고 있는 의료법인을 탈법적 수단으로 악용해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 운영으로 가정했다는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비의료인이 설립한 의료법인 이름으로 병원을 개설했을 떄 사무장병원인지 확인을 위해서는 2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제시했다.
우선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재산출연이 이뤄지지 않아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 운영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사정이 있어야 한다. 또 비의료인이 의료법인의 재산을 부당하게 유출해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했다는 사정이 있어야만 한다.
대법원은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개설자격 위반 판단에 기존 주도성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려면 비의료인에게 허용되는 행위와 허용되지 않는 행위의 구별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라며 "의료법은 의료법인에 대해 재산을 출연할 수 있는 사람을 의료인으로 한정하거나 비의료인이 출연할 수 있는 재산 규모나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임원의 지위에서 의료기관 개설 운영에 주도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의료법인의 본질적 특성에 기초한 것"이라며 "의료법에 근거해 비의료인에게 허용된 행위다. 비의료인의 주도적 재산출연이나 주도적 관여 사정만을 근거로 비의료인이 실질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했다고 판단하려면 허용되는 행위와 그렇지 않은 행위 구별이 불명확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반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비의료인이 의료법인 명의 의료기관의 운영 수익을 부당하게 유출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재산이 출연되지 않아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할 수 없는 의료법인을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악용하거나 의료법인의 공공성, 비영리성을 일탈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외고 처벌대상이 된다"라고 했다.
P 이사장 변호를 맡은 김주성 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법인은 있는데 기본 재산이 아예 없어 실체가 없다면 개인 사무장병원이겠지만 이번 사건처럼 비의료인이 개인 재산을 출연해 의료법인을 설립하고 그 명의로 의료기관을 운영한다면 사무장병원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