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라운지]신장학회 SKC 위원회 고장지 위원장(고대구로병원)
"탄소배출량 중 의료계 15% 차지…ESG 개념 도입 보편화될 것"
산업 활동과 도시화 등으로 인한 대기 오염과 온난화에 의료계 학술단체들이 서서히 눈을 뜨고 있다.
미세먼지·오존 등의 오염 물질은 천식과 만성폐쇄성폐질환, 폐렴 위험뿐 아니라 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비료와 살충제와 같은 화학적 오염은 암과 내분비 장애, 생식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질병의 발생과 악화, 치료의 예후에 환경적인 부분이 깊게 관여한다는 연관성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진단과 치료에 학회의 역할을 국한할 이유가 없다는 인식이 생기고 있는 것.
'Green Nephrology'라는 주제로 지난 6월 친환경 학술대회를 개최한 대한신장학회는 이같은 노력의 제도화에 팔을 걷고 나섰다.
신장 치료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이는 자연의 오염을 유발하기 때문에 단순히 친환경 학술대회와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치료 방안을 고민해보겠다는 것.
대한신장학회가 발족한 지속 가능한 신장 관리(Sustainable Kidney Care, SKC) 위원회가 그 역할에 선두에 섰다.
SKC 위원회의 역할과 존재 의의, 위원회 활동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변화 등에 대해 SKC 고강지 위원장(고대구로병원 신장내과)에게 물었다.
■"의료계 탄소 배출량 무시하기 어려워…15% 이상 차지"
대기 오염과 지구 온난화는 서로 얽혀 있으며, 둘 다 주로 인간 활동으로 인해 발생한다.
오염과 자원의 소모를 줄이는 전반적인 노력은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도 기여할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질병의 발생과 치료 과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강지 위원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탄소 발자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이는 학술단체도 예외일 수 없다"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의료 부분은 노동집약형이기 때문에 다양한 치료 행위 과정에서 상당한 탄소를 배출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마다 다르지만 일부는 의료계가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을 전체의 15% 이상으로 본다"며 "문제는 이렇게 배출되는 탄소가 신장질환자의 발생과 예후에 직결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면 온실가스 효과가 증대되는데 이같은 환경 변화와 콩팥 기능의 악화를 연구한 논문은 많이 나와있다"며 "게다가 신장 투석 과정에서 에너지와 자원 소모가 많아 이는 환경 오염을 야기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환경 오염은 신장질환을 악화시키고, 신장질환자의 치료는 환경 오염을 부추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어 치료 과정에 수반되는 자원 소모 등 전반적인 맥락을 같이 살필 때가 됐다는 것.
혈액투석이 필요한 말기신부전 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했고, 2020년 기준 투석 치료 환자는 국내에만 10만명이 넘는다.
유지 혈액투석은 다량의 물을 소비해 500mL/min의 유속으로 주 3회, 4시간 동안 투석을 시행하면 대략 연간 물 소비량은 2만 리터에 달한다. 게다가 혈액투석여과는 일반 혈액투석보다 10~30%의 물을 추가로 소비한다.
이를 감안하면 10만명의 연간 투석에 따르는 비용은 명목상의 진료비 2조원에 외에도 다양한 사회 경제적 부담을 초래한다고 추산할 수 있다.
고 위원장은 "한번 투석 치료를 할 때 최대 19.6kwh를 소모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3번 기준으로 계산하면 한달 전기 소모량은 1인 가구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다"며 "무분별한 자원소모가 다시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이는 환자 예후 악화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를 바로 잡고자 12명으로 구성된 SKC 위원회가 발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신장치료 권고안에서는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지속성 신대체요법 세 항목에 걸쳐 물 절약부터 폐기물 감소, 에너지 절약, 탄소 발자국 감소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권고안 통해 의료진 인식 환기…ESG 개념 보편화될 것"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라는 ESG 개념은 자원 소모가 많은 제조업 중심 기업에서 시작됐지만 최근 경향은 ESG 도입이 학술대회로 확장되고 있다.
학술단체들도 연구 활동, 학술회의, 출판 과정 등에서의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탄소를 배출하는만큼 책임있는 환경 관리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
실제로 대한신장학회의 'Green Nephrology' 학술대회는 종이 인쇄물을 만들지 않고, 재활용 가능한 물품으로 전시물을 제작하고, 플라스틱 컵의 제공 대신 참가자들이 각자 친환경 용품을 지참해 사용토록 했다.
고 위원장은 "사실 많은 의료진들이 치료, 진단 이외의 영역, 즉 환경 문제까지 깊게 고민하지는 않는다"며 "이에 권고안 마련 등 위원회 활동을 통해 환경의 중요성 문제를 인식시키는 작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의료선진국들이 이런 문제에 먼저 뛰어들어 연구했기 때문에 국내에서 나온 권고안의 많은 연구들이 외국 자료에 기반하고 있다"며 "국내 환자를 기반으로 적합한 권고안, 기준을 재창출하려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학회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아 다기관 방식으로 연구를 기획중"이라며 "그간 투석에 필요한 원수를 만드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물을 어떻게 재사용하고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자동차 사용을 원천 막아야 한다는 급진적을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 없듯, SKC 위원회도 자원 이용의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정수시설과 원수 온도 등 다양한 요인이 반류수의 생산량을 결정하게 된다. 저효율 정수시설은 원수의 60~70%까지 폐기하지만, 새로운 고효율 정수시설은 이러한 비율을 2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
고강지 위원장은 "투석액 생산과정에서 반류수를 감소시키고 재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주문하고 투석으로 인해 버려지는 물이 없도록 용액 비배출 정책을 제안했다"며 "투석액 유속 감량을 수자원 절약 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권고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위원회 연구를 통해 이같은 조치가 실제 자원의 소모량 감소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도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프랑스는 투석 물품 제작 회사에 환경 영향 평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하는 등 이미 제도화된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원회 발족을 통해 환경과 의료가 유기적으로 접해있고 상호 밀접한 영향력을 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학술대회의 ESG 도입도 향후 보다 보편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