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에 사회적 합의가 무슨 소용인가?

안용항
발행날짜: 2008-12-01 06:43:55
  • 안용항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

존엄사 인정 판결문제로 온통 언론이 사설과 보도로 뒤덮혔다. 그 내용들은 판결 사실을 전달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전하기도 하고 사설을 통하여 나름대로 판단을 하기도 했다. 전체적 흐름은 찬성하는 쪽과 찬성하지 않는 쪽도 있었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찬성과 반대를 표명하는 대신에 자신의 견해를 사회 뒤로 숨겨버렸다.

존엄사 문제는 개인 생명의 단절이며 개인과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경우 개인의 죽음으로 인해서 사회가 요동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커다란 권력을 소유한 사람의 죽음은 권력의 크기만큼 사회를 흔들게 되겠지만 큰 권력은 항상 소수만 가지게 됨으로 대부분 사람들의 죽음은 가족사에 영향을 줄 뿐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개인의 죽음을 사회가 슬퍼해주지도 않고 슬퍼해줄 이유도 없어 보인다. 전체 사회에서의 개인의 죽음은 너무나 흔한 일들이며, 항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는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전체 사회와의 단절이며 역사와의 단절이며 생명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죽음이 중요한 사건으로 바라보는 것은 전체사회가 아니라 죽는 당사자와 가족, 친구들일 것이다. ‘생명은 천하를 주어도 바꿀 수 없다’라는 말은 개인의 입장에서 그를 뿐 전체사회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생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생명의 중요성은 전체사회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임박한 당사자의 입장이 중요하게 반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에 따라 존엄사를 지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 '수지부모'를 외치는 사람들은 죽음의 결정을 '부모'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고 할 것이고 생명의 출발을 신에게 두는 사람들은 '신의 명령'에 따라 결정하고자 할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은 '자연스런 죽음'을 주장 할 것이며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정당성 결정'은 다양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결정된다. 종교의 자유를 말할 때 개인의 신념을 강조하듯 생명 문제의 결정도 개인의 신념문제이다.

이번 판결을 한 판사의 결정을 판결의 권한을 준 사회의 결정이라고 명분을 세울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판사 개인의 판단인 것이다. 이번 판결을 한 판사는 외롭고 힘든 결정을 했을 것이다. 판결을 한 권한은 사회로부터 부여받았지만 실질적 결정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판사의 의식이 '수지부모', '신’' '자연', '과학' 중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판단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회적 합의' 뒤로 숨기나 할 수 있지만 판사는 어떤 쪽 입장이라도 지지 선언을 해야 할 입장이므로 혼자 괴롭고 외로 왔을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으로 살펴보아도 생명은 사회적 합의로 결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자신의 것이며 자신의 신념으로 결정될 문제인 것이다. 개인의 죽음과 관계없이 움직이는 사회에 개인의 죽음을 결정하게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죽음을 가장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손에 죽음 문제를 맡겨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일 것이며 좀 멀게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가족들 일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개인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한다. 사회는 커다란 사회적 현상만을 볼 뿐 개인의 죽음문제는, 살인만 아니라면, 가족들처럼 죽음에 반응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생명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분야에서 개인의 권리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것을 사회에 맡기고 숨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존엄성과 개인의 책임을 강조 할 줄 아는 사회로 가야한다. 모든 것을 사회에 맡기게 되면 마녀사냥이 발생하기 쉬운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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