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아무나해도 되나?

안용항
발행날짜: 2009-06-22 09:00:10
  • 안용항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

"병·의원 환자권리 고지 의무…위반시 과태료"라는 기막힌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정미경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의료법-응급의료법 개정안이라고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의료인과 의료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환자의 권리'에 대한 내용을 반드시 고지하고 게시하도록 했다고 한다.

고지 및 게시가 의무화되는 항목은 진료 받을 권리,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 사생활보장권, 의료행위동의권, 요양방법 및 건강관리를 지도받을 수 있는 권리, 병원감염의 예방조치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진료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등 7개 항과 기타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정하는 내용 등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고지 및 게시방법은 추후 복지부령으로 정하도록 했으며, 이들 항목에 대한 고지 및 게시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겉으로 보면 정미경의원은 환자를 너무나 사랑하여 환자의 권리를 최대한 찾아주는 아름다운 국회의원으로 보인다. 그래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든 의사’는 악의 화신으로 환자의 권리도 무시하고 연약한 환자를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존재로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악마의 얼굴을 한 의사는 모든 환자 앞에서 환자의 권리를 낭독하고 진료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하지 않을 경우 환자의 질병치료와 관계없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의사는 진료하기 전부터 이미 죄인이며 악마이며, 자신의 죄를 환자 앞에서 고백한 후에 진료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정미경의원이 생각하는 의사는 질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를 올바른 치료로 이끄는 전문가가 아니며, 의사와 환자사이의 관계를 대등한 민주적 관계로 보는 것도 아니며, 의사는 권리가 전혀 없는 존재이며 환자의 권리만 인정해야하는 존재로서, 잠재적 죄인이며 동시에 확실한 노예로 보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는 상호 신뢰관계여야 한다는 것은 의료체계의 가장 중요한 기본중의 기본이다. 의사이든 환자이든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진료를 상호 불신 속에서 진행하게 만든다. 그래서 환자는 의사를 의심하여 의사의 모든 진단과정을 당연히 의심하게 된다. 결국 환자는 또 다른 의사를 찾게 되며 그 새로운 의사마저 의심하게 되어 결국 의료비용의 증가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환자는 소송을 불사할 마음을 결심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사는 의사대로 환자를 의심하여, 자신이 소송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떨며, 만약에 발생할 소송에 이기기 위해 미리 물샐틈없는 검사를 함으로 과잉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의료는 환자와 의사 사이의 엄청난 지식의 차이가 있어서 아무리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서 환자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의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의사의 판단을 믿지 못하여 검사와 치료를 할 때마다 환자의 권리에 대해 일일이 고지하게 법으로 정한다고 해도 여전히 의사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다.

환자의 권리에 대한 부분은 이미 법정에서 충분히 적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진료 시작할 때마다 환자에게 고지하게 만든다면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감을 무너뜨려 상호 의심하는 상황에서 진료를 시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정미경의원이 진정 원하는 것인가?

의사를 전문가로 호칭하는 것은 지식의 독점 때문이다. 10년 이상의 수련 기간을 거쳐서 배우는 특수성 때문에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을 배우고 실천하게 됨으로, 환자에게 이러한 지식을 이무리 설명해도 불과 10여분만의 진료 시간만으로 의학 지식을 정확하게 전달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의학이라는 지식을 실천하는 의사는 온정적 가부장주의의 범주에 들어 갈 수밖에 없으며 설명의 의무를 열심히 실천해도 그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의사가 질병에 대한 설명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필요한 정도로 설명하지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지식이 있기 마련이다.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전부 이해하려면 환자도 의사와 마찬가지로 10년 이상의 의학공부를 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명의 의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며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의사들에게 윤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러한 의사들의 지식 독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의사들 스스로 악덕 의사를 감시하고 고립시키는 자율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자 앞에서 환자의 권리를 고지하는 방법보다는 의료계의 자체 징계권을 주어서 스스로 악덕의사들을 징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전문가의 자율성인데 현 복지부의 정책은 의료계의 자율성은 철저히 차단시키면서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를 만들기에 열중이다. 즉 환자와 의사를 프로크러스테스의 침대에 높여서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키를 자르고 늘이는 정책들 말이다. '일부' 국회의원은 이러한 정책들이 의미하는 바도 이해하지 못하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환자는 천사이며 의사는 악마’라는 이분법으로만 의료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국회의원이라면 법으로 모든 문제를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법으로 다루어야 할 것과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려 노력할 것이다.

권리와 의무는 항상 나란히 간다. 환자의 권리가 있으면 의사의 권리도 발생한다. 환자의 권리가 있으면 그 권리를 충족시킬 의무가 발생하고 누군가가 그 의무를 채워야 한다. 환자의 권리에 대한 의무의 일부분은 의료보험 공단이 질 것이고 또 복지부가 질 것이며 마찬가지로 의사가 질 것이다. 의사에게만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보공단과 복지부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눈감고 의사들에게만 의무를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입법이 아닌 것이다.

환자가 진료를 방해하면 그 환자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 마땅하며, 국회의원이 의원으로서 부당한 행위를 할 경우 의원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의사도 마찬가지로 의사가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못하면 의사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처럼 권리와 의무는 상호 발생하는 것이라서, 환자가 진료 받을 경우에 성실히 답변하고 진료 받을 것을 약속해야 한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환자의 권리를 진료에 앞서 고지하면 환자들도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 의사 앞에서 고지해야 마땅한 것인데 과연 그리해야 하는가?

정미경 의원 법안에 관한 뉴스를 보면 초등학생들의 입법놀이를 보는 듯하다. 의학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와 환자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환자의 권리를 고지하는 것이 마치 환자를 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은 국회의원이 국민에게 얼마나 해 끼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본 칼럼은 메디칼타임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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