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른자 땅 주인은 선배들…젊은 의사들은 기회 박탈감"
소집 해제 후 이달부터 임상 강사 생활을 시작한 안과 전문의 노 모씨는 "다시 전공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냥 바쁘게 지내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인터뷰 일정이 잡힌 날도 새벽 4시에 들어가 잠깐 눈만 붙였다가 7시에 다시 나왔다는 그는 공보의 시절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진 임상 강사 생활에 대해 별다른 불만은 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개원 대신 임상 강사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그는 "개원은 포기한지 오래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돈 있는 집안이 아니면 개원은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의사를 상인으로 만드는 의료 환경 질렸다"
"개원 생각은 접은지 오래입니다. 소집해제 된 공보의들 대부분이 그래요."
그도 의대 재학 시절엔 개원의 꿈을 키우기도 했었다. 내과 혹은 심장내과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인턴 때 임상을 돌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문득 병원이 돈 버는 방법을 전수하는 곳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주위에서 전해 들은 개원가의 현실도 비슷했습니다. 개원가에서 '의술'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랄까요. 의사란 의술을 이용한 마케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수가나 비급여 할인 경쟁의 국내 의료 환경에서 100%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의사 생활을 한다는 것은 소위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10년간 윤리의식을 버리고 일단 내가 살고 보자고 하는 게 바로 개원이다"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기도 했다.
7080 공보의 세대를 파고든 '세대론'
개원을 하지 않는 데는 다른 요소도 있었다. 사실상 의사 사회에는 신-구 세대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
"전 젊은 의사들이 개원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보의를 포함해 젊은 의사들이 개원을 '못'하는 것은 세대론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소위 '구세대'가 개원가를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 젊은 의사들이 개원을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른자 땅에는 의원들로 포화상태인 데다가, 과거 돈을 번 의사들은 상가 구입 등으로 임대 수익을 올리면서도 의원 자리를 후배 세대에게는 넘겨주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의사는 느는데다 젊은 의사들은 개원 자금 마련에도 버거워하지만 선배 의사들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좋은 입지와 최신 의료기기, 광고로 무장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봉직의를 선택한 사람 중에 개원을 꿈꾸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만 자금 등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일단 꿈을 유보한 상태로 봉직의를 선택한 것이죠. 임상 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상 강사 선택, 최선이라기 보단 차선
그가 받는 월급은 봉직의에 비해 30% 수준에 불과하다. 30대 중반의 나이, 결혼까지 한 그에게는 월급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3년 안에 임용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병원을 떠나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상당하다.
"개원을 안한다고 봉직의나 임상강사가 훌륭한 대안이 되는 것도 아니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네요."
적은 교원 자리 때문에 지방의 교수 자리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좀 먹고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임상 강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돈 버는 방법도 좋지만 정말 기초부터 의술을 탄탄히 배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참 의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습니다."
그는 "봉직의나 임상 강사 중에도 개원의 꿈을 가진 사람이 꽤 있지만 언제쯤 이들에게 희망이 올지 암담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