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의료요구, 누가 비용을 부담하나?

허대석 교수
발행날짜: 2012-07-09 06:13:38
  •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

보다 많은 국민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안이 금년 미국 대선에서도 중요한 쟁점으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최근 미국 대법원에서 개혁안의 기본틀은 위헌소지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의료개혁안이 시행되었을 때 부담해야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공화당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한 채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만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의료정책도 정치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는 포괄수가제와 응급의료법 개정안 등 국민복지 향상을 위한 의료정책의 시행을 서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의료서비스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게 될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서비스 확대에 수반되는 비용에 대해서 정책입안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응급실 당직을 전문의가 하게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것이다. 개선방안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각 병원이 전문의를 더 많이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응급진료와 관련된 수가가 대폭 인상되어야 하나, 그런 논의나 대책은 전혀 없고 병원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니 '전화당직'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결정될 전망이다.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상당부분은 저수가 정책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와 관련된 의료서비스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정부도 인정하고 있으면서 강제 적용을 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유일하다.

정책에 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진 정부가 의료기관에게 원가 이하의 수가로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도록 강제하는 건강보험은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로 판단되나, 의료는 치외법권지역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 동안 병원과 의사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진료하거나 비급여진료를 통해 손실을 보전해왔으나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 실례로, 건강보험 수가로는 원가보전이 되지 않아, 병상당 매년 5000만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대부분의 병원이 폐쇄하였다. 또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출산 비용으로 분만실을 유지하다가 한 번의 의료분쟁라도 발생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출산과 관련 없는 부인과 진료만 하고 있다.

그 결과 가까운 지역에 산과가 없는 산모는 출산을 위해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고, 중증도가 높은 신생아가 출생할 위험이 예상되는 지방거주 산모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이 있는 수도권 대형병원까지 와야 한다. 국가의 저출산대책에 역행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환자를 병원이나 의사로부터 시혜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구시대적 관점으로 의료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수가 정책의 주 대상인 필수의료나 중증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분야는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여, 성형수술을 하는 의사는 넘쳐날지 모르나 응급 심장수술을 위해 외국인의사를 수입해야 할 상황이 곧 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내년부터 7개 질환군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된다면 동일 상병이라도 중증환자들을 주로 수용해 왔던 대형병원들이 비슷한 수가로 해당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암과 같은 복잡한 질환까지 확대해 나간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상급병원에 대해 일부의 비용만 추가 지불하겠다는 계획만 있고, 비용문제는 근본적으로는 병원에게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저임금의 수련의와 전공의들이 밤낮과 휴일 없이 일하고, 전문의들은 제한된 시간 안에 가능한 많은 환자를 보게 함으로써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대형병원들도 극한 상황에 도달했다.

각종 의료분쟁과 환자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는 현실을 단순히 의료인들의 윤리문제로 탓한다면 해결책을 찾는 것은 요원하다. 국민들이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를 원한다면 전문의료인 고용을 더 늘려야하고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해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비용을 지불해야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경제법칙이 의료분야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오바마가 부러워한다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한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권리와 의무가 균형을 이루는 공정한 경제논리 적용이 필수적이다.

추가적인 재정수요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복지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그 비용을 의료기관에게 전가해오던 관행을 계속한다면, 결국 무책임한 정책의 부메랑은 국민을 향해 날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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