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체납자 1800명 막으려 병원에 부담지우나"

박양명
발행날짜: 2014-06-19 06:13:27
  • 부정수급 방지대책 3가지 우려…"고작 한달 시범사업 후 강행"

[초점]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 우려점

"(병의원에서) 걱정하는 만큼의 행정부담은 없을 것이다. 환자 자격확인은 요양기관의 기본 업무다."

"건강보험공단은 의료기관에 일방적으로 행정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슈퍼갑의 횡포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건강보험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놓고 의료계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개원의협의회, 전국의사총연합회 등은 잇따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책을 맹비난 했다.

여기에 대한병원협회도 가세했다.

병협은 아예 제도 자체를 보류하고 근본적 문제해결 방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서를 공단과 복지부에 18일 보냈다.

비판이 커져가자 건보공단은 의료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당부하며 대국민 홍보전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6월 시범사업을 거쳐 7월 제도 본격 시행을 앞두고 허점들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마땅한 대응책도 없어 의료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①"고액 급여체납자 1749명 확인하려고…"

7월부터 무자격자, 급여제한자 중에서도 고액체납자에 대한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

건강보험 무자격자는 지난해 기준 6만명, 고액체납자는 1749명이다. 고액체납자는 소득이 1억원 이상, 재산이 20억원 이상이면서 건보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초·재진 진료 모두 적용되며, 의료기관은 환자가 진료를 접수할 때 반드시 자격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급여제한자 진료비 청구방법 예시
문제는 상급종합병원 같은 대형 병원에서 나온다. 행정적 부담 증가를 비롯해 환자 대기 시간이 오히려 길어질 수 있다는 것.

일례로 대형병원은 환자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체 예산을 투입해 '무인수납기'를 비치하고,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재진환자는 수납 창구를 들르기 보다는 무인수납기를 통해 접수하고, 진료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급여제한자 자격 의무 확인 제도가 시행되면 무인수납기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병협 관계자는 "빅5 같은 대형병원은 하루에 외래환자만 1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정부 안대로라면 환자가 올 때마다 자격조회를 해야 하고, 환자들은 전부 창구로 직행해야 한다. 대기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이어 "부정수급 대상은 전체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전체 인원수에서 몇명 안된다. 소수를 적발하기 위해 다수의 국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정책에 포함되는 급여제한자 대상은 무자격자를 포함했을 때 약 6만1749명이다. 이를 전체 의료기관 수 8만 5000여개로 나눠보면 기관 한 곳당 0.7명으로 한명도 안된다.

정부의도 대로 단계적으로 사업을 확대해 전체 급여체납자 164만명 중 생계형체납자 108만명을 더해서 전체 의료기관 수와 나눠봐도 기관 한 곳당 13.4명에 불과하다.

이같은 문제 지적에 대해 건보공단과 보건복지부도 속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할 뿐이었다.

건보공단 급여관리실 김석원 부장은 "상급종병은 대기시간이 늘어날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며 "본사업 기간에 충분히 반영해서 의료계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급여제한자는 164만명이다. 우선은 고액체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단계별로 확대할 계획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공급자 입장에서도 동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보험정책과 정도희 사무관도 전문기자협의회와 만나 "바뀌는 제도와 무인시스템간의 접목이 어렵다고 한다. 현재로서는 접수창구를 통해서 자격확인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②"병의원-환자 신뢰관계 깨져 치료까지 지장 초래"

부정수급 방지대책이 건보공단이 해야 할 일을 의료계로 전가하고 있다고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결국 환자와 병원의 불신을 초래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말이다.

대한의원협회는 "급여제한자에게 급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와 불가피하게 본인 부담금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를 납득하지 못하는 환자와의 마찰은 불가피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의료기관과 환자 사이의 신뢰관계가 깨져 자칫 환자의 치료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공단이 해결해야 할 민원을 왜 요양기관이 해야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정부는 자격관리는 공단의 몫이지만 자격확인은 요양기관이 당연히 해야 할 부분이라고 협조를 호소하고 있다.

정도희 사무관은 "건보공단에서 유선과 문서를 통해 1749명의 급여제한자에게 직접 안내하고 있다. 대상자들이 보험료 납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진료비를 내지 않거나 민원을 강하게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사후관리하던 것을 급여 지급전에 확인하는 사전관리로 바꾸는 것이다. 급여제한자 진료분에 대해 청구하면 비용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비정상인 것을 정상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의료계 입장 반영안된 일방적 추진"

병협은 건보공단과 복지부에 7월부터 당장 제도를 시행하는 것을 보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한달도 채 안되는 시범사업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 보험자, 의료기관, 가입자가 협의체를 구성해 근본적 문제해결방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병협은 "환자만족 의료서비스를 위한 의료계의 노력과 소비자 중심적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제도"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선정한 체납자는 경제적 어려움이 아닌 악성체납자로 건보공단의 소극적인 고액체납자 관리와 진료비 환수의 미온적 대처가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관련 문제점과 개선의견을 계속 개진했지만 정부와 건보공단은 의료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제도를 일방적으로 강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의원협회 역시 같은 부분을 짚었다.

의원협회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급여제한자가 부당 수급한 진료내역이 2013년말 기준 1조4581억원에 이르고, 그 중 실제 징수한 액수는 2.3%인 340억원에 불과하다.

의원협회는 "급여제한자임에도 부당 수급토록 한 점도 문제지만, 이를 제대로 환수하지 못하는 것 역시 공단의 책임"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요양기관과 환자에 부담을 주는 카드를 꺼내든 것에 선뜻 이해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한 관계자는 "건보공단은 부정수급 문제를 환수조치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기관에 행정적 부담이 따른다는 것을 감수하면서 제도를 시행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와 건보공단은 7월부터 일단 제도를 시행한 후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고쳐나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건보공단 정승열 급여관리실장은 "우선은 의료 현장에서 민원을 최소화하면서 제도가 도입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관련 협회도 방문하고, 각 지사에서 요양기관에 현장 방문해 모니터링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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