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
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제네바 선언' 중 일부다.
업(業)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해 종사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사의 업, 이른바 의업(醫業)은 '제네바 선언'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적인 업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안고 있다. 바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부여된 과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진료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쟁터, 재해·재난지역 등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간다. 설령 그곳이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의사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까.
진료, 가운, 기득권, 리베이트, 갑, 권위… 당장 떠오르는 단어들만 정리해도 부정적 의미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들의 행위까지 정말 그럴까.
메르스 확대에 따라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 사람이 줄었다. 병원은 물론 대형마트, 백화점, 놀이동산,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사람이 줄었다. 그나마 다니는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싸매고 다닌다. 왜일까.
무섭기 때문이다. 내 목숨 지켜야 하니까 무서운 것이다. 심지어 아파도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병원에 안 가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겼다. 당장 내 몸 아픈 것보다 죽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메르스 확진자가 있는 병원 근처에만 가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벌벌 떠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근처만 가도 몸이 벌벌 떨리는 '그 병원' 안에는 환자가 있다. 그리고 그 환자의 생명을 위해 제 목숨을 담보해 진료에 임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진료 과정 중 감염돼 병상에 누워있다.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확진자는 그보다 빠른 속로 증가한다. '잠'이란 단어는 이미 사치가 돼 버렸다. 환자를 함께 진료하던 동료는 어느새 쓰러져 있다. 극심한 피로는 둘째치고 자신 역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메르스 최전선에서 그들도 무섭다. 그래도 업(業)을 포기할 수 없다.
바로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고 가슴에 아로새긴 맹세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군대에 있을 당시 동료 병사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전쟁이 나면 과연 몰려오는 적들과 마주 할 수 있을까. 날이 시퍼런 대검으로 적과 백병전을 벌일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기자와 동료 병사들은 다들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언제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공포를 딛고 메르스라는 거대한 적과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의사'다. 공부 잘한 머리로 잘 먹고 살 것 같은, 진료실에서 언제나 권위적이라고 느끼던, 심지어 갑의 대명사처럼 떠올리던 그 '의사'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의사들이 근처도 가기 무서운 그 병원 안에서 이 시간에도 메르스와 얼굴을 맞대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사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동안 한정된, 그것도 부정적인 단어에 의사를 투영해왔던 것은 아닐까. 물론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부 의사들의 적절하지 않은 행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앞으로도 그런 의사들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그러나 불합리한 제도와 그로 인해 교과서적이고 소신있는 환자의 진료를 가로 막는 현실과 싸우는 의사들의 모습이 어쩌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쳤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그들이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대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개인의 잘못은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다. 다만 의사들이 제도와 규제에 맞서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다. 제대로 된 의업(醫業)을 수행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과거 부정적 단어에 의사들을 투영해선 안 된다. 국민의 생명을 위해 사지(死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들의 업(業)에 감사해야 할 때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의 이름 위에 씌워왔던 오해와 오명을 벗기고 의사를 '의사'로 봐야할 것이다.
메르스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의사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다.
17일 보건당국이 발표한 메르스 현황에 따르면 메르스 확정 환자는 전일에 비해 8명이 추가돼 162명이다. 새로 추가된 확진 환자 중에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강동경희대병원 전공의가 포함됐다. 이 의사들은 이제 환자를 위한 메르스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어야 한다.
정확한 감염경로는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해야겠지만 의사들은 슈퍼맨의 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슈퍼맨의 심장을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강인한 심장을 뛰게 하는 힘의 원천은 '제네바 선언'아닌 국민의 기대와 신뢰, 그리고 숭고한 의업(醫業)에 대한 존경과 감사다.
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제네바 선언' 중 일부다.
업(業)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해 종사하는 일을 의미한다.
그런데 의사의 업, 이른바 의업(醫業)은 '제네바 선언'에서 보는 것처럼 일반적인 업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안고 있다. 바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부여된 과업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진료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쟁터, 재해·재난지역 등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간다. 설령 그곳이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곳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의사란 어떤 존재로 비치고 있을까.
진료, 가운, 기득권, 리베이트, 갑, 권위… 당장 떠오르는 단어들만 정리해도 부정적 의미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그들의 행위까지 정말 그럴까.
메르스 확대에 따라 기이한 현상이 생겼다. 사람이 줄었다. 병원은 물론 대형마트, 백화점, 놀이동산, 출퇴근 지하철에서도 사람이 줄었다. 그나마 다니는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싸매고 다닌다. 왜일까.
무섭기 때문이다. 내 목숨 지켜야 하니까 무서운 것이다. 심지어 아파도 메르스에 감염될까봐 병원에 안 가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겼다. 당장 내 몸 아픈 것보다 죽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메르스 확진자가 있는 병원 근처에만 가도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벌벌 떠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근처만 가도 몸이 벌벌 떨리는 '그 병원' 안에는 환자가 있다. 그리고 그 환자의 생명을 위해 제 목숨을 담보해 진료에 임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진료 과정 중 감염돼 병상에 누워있다.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확진자는 그보다 빠른 속로 증가한다. '잠'이란 단어는 이미 사치가 돼 버렸다. 환자를 함께 진료하던 동료는 어느새 쓰러져 있다. 극심한 피로는 둘째치고 자신 역시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메르스 최전선에서 그들도 무섭다. 그래도 업(業)을 포기할 수 없다.
바로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 어떤 위협이 닥칠지라도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륜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다"고 가슴에 아로새긴 맹세가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군대에 있을 당시 동료 병사들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전쟁이 나면 과연 몰려오는 적들과 마주 할 수 있을까. 날이 시퍼런 대검으로 적과 백병전을 벌일 수 있을까. 부끄럽지만 기자와 동료 병사들은 다들 자신이 없다고 고백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은 언제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공포를 딛고 메르스라는 거대한 적과 백병전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의사'다. 공부 잘한 머리로 잘 먹고 살 것 같은, 진료실에서 언제나 권위적이라고 느끼던, 심지어 갑의 대명사처럼 떠올리던 그 '의사'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의사들이 근처도 가기 무서운 그 병원 안에서 이 시간에도 메르스와 얼굴을 맞대고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의사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동안 한정된, 그것도 부정적인 단어에 의사를 투영해왔던 것은 아닐까. 물론 과거부터 지금까지 일부 의사들의 적절하지 않은 행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앞으로도 그런 의사들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그러나 불합리한 제도와 그로 인해 교과서적이고 소신있는 환자의 진료를 가로 막는 현실과 싸우는 의사들의 모습이 어쩌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쳤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 그들이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아등바등대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개인의 잘못은 법에 따라 처벌하면 그만이다. 다만 의사들이 제도와 규제에 맞서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다. 제대로 된 의업(醫業)을 수행하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오늘부터 우리는 과거 부정적 단어에 의사들을 투영해선 안 된다. 국민의 생명을 위해 사지(死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그들의 업(業)에 감사해야 할 때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의 이름 위에 씌워왔던 오해와 오명을 벗기고 의사를 '의사'로 봐야할 것이다.
메르스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의사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다.
17일 보건당국이 발표한 메르스 현황에 따르면 메르스 확정 환자는 전일에 비해 8명이 추가돼 162명이다. 새로 추가된 확진 환자 중에는 삼성서울병원 의료진과 강동경희대병원 전공의가 포함됐다. 이 의사들은 이제 환자를 위한 메르스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어야 한다.
정확한 감염경로는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해야겠지만 의사들은 슈퍼맨의 몸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슈퍼맨의 심장을 가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강인한 심장을 뛰게 하는 힘의 원천은 '제네바 선언'아닌 국민의 기대와 신뢰, 그리고 숭고한 의업(醫業)에 대한 존경과 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