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으로 보는 메르스 사태 현실에선 안 먹히는 정부 메뉴얼
방역당국은 알고 있었다. 메르스라는 신종감염병의 존재에 대해. 대책도 세웠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서류상에서 완벽해 보였던 정부의 감염관리대책은 메르스라는 실제상황에서 맥을 못추고 무너졌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이미 중동호흡기증후근(MERS)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 양병국 본부장은 지난 2014년 1월 발간한 질병관리백서에서 "중동호흡기증후근(MERS) 등 신종감염병의 국외유입 감염병의 증가추세로 전세계적으로 감염병 관리 및 감시를 통한 대비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방역당국 또한 메르스 감염확산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실제상황에선 격리대상을 축소, 미온적으로 대응해 화를 키웠다.
또 지난해 질병관리백서에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신고 절차부터 환자 및 접촉자 관리방안이 제시됐다.
사스(SARS) 및 조류인플루엔자 인체감염 논란 이후 지난 2005년 신종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메뉴얼과 함께 인체감염 예방 메뉴얼을 마련했다.
특히 지난 2013년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기본 계획(2013~2017)'을 살펴보면 메르스 사태가 여기까지 확산된 것이 이해가 안될 정도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신종감염병을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했다.
이미 중앙감염병 대응 상황실 운영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시도감염병관리본부 구축 및 운영 계획도 세웠다.
또 신종감염병에 대비하고자 '신종감염병 대유행 대비 및 대응계획'도 마련하고 지자체 및 검역소 등 유관기관을 주축으로 신종감염병 대응역량 강화 훈련도 추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서류상에만 존재했던 모의 훈련은 현실에서 먹혀들리가 없었다.
해외발생 감염병 정보제공률 또한 서류상에선 100%에 가까웠지만 현실에선 정부는 사전에 메르스의 전파력을 국민들에게 고지하지 않아 불안감을 키웠다.
이와 함께 2013년까지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 16개, 병원 519병상(음압 99곳, 일반 420곳)을 구축하고 지역별 거점병원 격리외래실 74개소, 격리중환자실 32개소 설치를 추진했지만 이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권준욱 기획총괄반장은 현재 전국에 격리병상이 105곳 있으며 실제 가동 가능한 음압병상은 47곳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마저도 음압병상에 이미 결핵 등 환자가 입원해 있거나 음압시설이 미약해 메르스 확진환자를 수용하기 힘들어 발을 굴러야했다.
또한 앞서 위기시에만 대응하는 리스크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아닌 평상시 리스크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확보해 초등대응 능력을 제고하고자 했지만 이 역시 현실에선 불가능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확진환자가 국내 발생해 확진자가 늘어갈 때에도 병원명을 감추는데 급급해 평상시는 물론이고 위기상황에서 조차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선 의료기관에서 거듭 제기하는 "메르스에 대응할 구체적인 메뉴얼이 없었다"는 지적과는 달리 신종감염병 발생시 대응 메뉴얼도 있었다.
심지어 지난 2012년 감염병 표본감시안내 지침에서 선별검사 및 격리 시스템을 구축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서류상에서만 존재했던 메뉴얼은 현실에 녹아들지 않았고, 일선 의료기관들은 수시로 회의를 반복하며 자체적인 메뉴얼을 만들어야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거듭 제기되는 감염병 관리 인프라 부재에 대해서도 방역당국은 장기적인 그림을 갖고 있었지만 이 또한 계획에 불과했다.
정부는 미래 감염병 대비체계 구축을 위해 역학조사 5개년 전략을 3단계로 나누고 국내 풍토병 및 신종 감염병에 대한 중장기 역학조사 계획을 수립했다.
이어 역학조사관 인력수급을 안정화 및 역량 강화를 위해 국제기구 및 해외 파견을 확대하고 공중보건의사 중심의 역학조사관 인력 정규직화를 추진키로 했다.
이와 함께 시·도 보건환경연구원 및 역학조사관 협업 체계를 구축, 지자체 감염병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구축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불거지자 역학조사관이 35명에 불과해 공중보건의사는 물론 심평원 및 건보공단 직원까지 역학조사에 긴급 투입됐다.
서류상에서만 존재하는 신종감염병 관리대책은 메르스 사태를 키웠다. 현장과 소통하지 않은 채 책상머리에서 나온 메뉴얼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의료현장에 녹아들 수 있는 정책 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