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의사의 좌충우돌 생존기…박성우의 '인턴노트'[1]

박성우
발행날짜: 2015-11-06 11:27:07
글을 열며…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첫 의사 생활인 인턴을 마쳤지만 내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매 해마다 새내기 인턴들이 병원이라는 세계에 들어온다. 그들은 하루하루 역동적인 삶의 현장에서 치열함을 배움과 동시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배울 것이다. 나는 이 책에 그 치열한 현장들을 기록했다.

이 책은 인턴 시절 동기들이 하루를 끝내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쉴 때, 혹은 술잔에 녹녹치 않은 쓰디씀을 토해낼 때마다 홀로 방에 들어와 블로그에 썼던 흔적들이다. 동기들이 잠에 취해 침대에 기력을 잃고 쓰러졌을 때, 밤거리를 방황하거나 인터넷에서 무의미한 정보들을 읽고 있을 때 나는 그 시간들을 아껴 기록했다.

누군가 “인턴 때 시간이 많았나 보다”라며 비아냥거릴 때 마음속에서 욱 하고 화가 치밀어 오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병원에서 보냈던 첫해 인턴 근무 성적이 A였으니 태업하면서 얻은 기록들은 아닐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에 ‘짠’ 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무엇 하나 실패를 겪지 않은 것도 없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게 목표를 향했던 적은 재수를 했던 일 년의 시간이다. 첫 수능에서 무참히 밟힌 후 나는 재수를 선택했다. 밟혔던 자존심은 공부를 다시 시작했던 날부터 수능을 보기 전날까지, 3일을 제외하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늦은 밤 들어가는 생활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일 년을 습관처럼 공부하니 미적분도 모르던 문과생이 의대생이 되었다. 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의사가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삶에 있어 자신의 재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머무르지 않을 청춘이기에 때론 과감하게 삶의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십대에는 포기했지만 이십대에는 포기할 수 없던 꿈, 그것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시험을 보던 본과 1학년 시절,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밤 새워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은 의대 공부도 바쁜데 허튼 짓을 한다고 나무랐다.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마주한 청춘의 거울 앞에서 나는 한계를 받아들였다. 내가 가진 재능을 평범하다고 인정하게 된 것이다. 글 쓰는 재능이 없다면 현실에 적응하기로 했다. 나는 글 쓰는 ‘작가’가 아닌 글 쓰는 ‘의사’가 되기로 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고를 40여 곳이 넘는 출판사에 보냈지만 갖가지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책에 대한 열망은 가슴 한켠에 남아있었고 그것은 독립출판이라는 또 다른 꿈을 키워주었다. 그제야 지난 기억들이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지난 글들을 엮으면서 부끄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젊음에 취해 쓴 과장됨은 수정하지 않았다. 멋모르고 쓴 당시의 생생한 기록은 훼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의대생으로 살았고 서툰 눈길과 몸짓으로 병원이란 세계를 겪었던 날 것 그대로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비난과 책망에 대한 두려움은 품고 가기로 했다. 『인턴 노트 』라고 쓰인 기록에 낡음이 혼재해서는 안 될 테니까.

이 책의 바탕이 된, 의대생에서 의사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및 서울 아산병원의 선생님과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인턴으로 종합병원에 근무하면서 많은 감명과 깨달음을 주었던 환자들, 보호자들과의 인연 역시 소중하다. 갈등을 피할 수 없었지만 든든한 아군이었던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들, 응급 구조차 아저씨, 청소아주머니 등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무엇보다 책을 내기까지 블로그에 찾아와 응원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께 감사한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출간할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책의 편집과 구성에 도움을 준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늘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외도만 고집한 아들 때문에 속 썩은 부모님, 먼 타지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동생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성장 앓이’를 거쳐야만 하는 모든 청춘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새내기 의사라 실수도 하겠지만 한결같은 모습으로 한계를 깨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2편에서 계속>


※본문에 나오는 '서젼(surgeon, 외과의)'을 비롯한 기타 의학 용어들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실제 에이티피컬 병원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발음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글은 박성우 의사의 저서 '인턴노트'에서 발췌했으며 해당 도서에서 전문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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