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비용 포기한 의협에 박수친 까닭은

발행날짜: 2016-08-11 05:00:28
경제학에는 매몰비용의 함정(Sunk Cost)이란 용어가 나온다.

그동안 공들인 노력이나 시간, 비용을 아까워한 나머지 미래의 더 큰 손실을 보지 못하고 과거의 양식을 고수하는 행위를 뜻한다.

정책이나 선거공약에서도 우리는 종종 이런 비합리적인 일들을 목격한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기존의 정책을 변경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다가 파국으로 치닫을 때가 많다.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수술(마취)동의서 서식을 개정했다.

수술동의서에 포함된 "의료기관의 사정에 따라 부득이 수술 의사가 변경될 수 있다"는 내용이 오히려 유령의사를 조장한다는 지적 <유령의사 근절하겠다던 의협, 되레 유령의사 조장?>에 따른 후속 조치다.

당시 유령의사 근절에 앞장 섰던 성형외과의사회마저 해당 동의서가 공신력이 없다며 보이콧하겠다는 방침까지 내세웠을 정도.

반면 이번에 의협은 의사 변경시 환자 또는 대리인에게 구체적인 변경사유를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얻도록 했다. 긴급하게 집도의를 변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수술 직후 구체적인 변경 사유와 수술의 시행결과를 환자 또는 대리인에게 설명토록 했다.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솔직히 기사를 작성할 때만 해도 의협이 개정안을 내놓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의협에 문제가 제기됐을 때 기존 입장을 고수하다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행위를 자초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 개월 째 기존 입장 고수로 회원들의 반발을 샀던 의료일원화, 면허개선안 추진, 인사 논란 등이 그런 예.

그간 추무진 집행부의 정책 고수는 어쩌면 "이미 물밑작업을 끝내놨다"는 본전 생각이 빚어낸 촌극일지 모른다.

패배나 실수를 인정하면 그걸로 끝난다는 경험칙이 지배하는 세상에선 나의 잘못을 인정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죽하면 온라인에선 "패배를 인정하겠는가"라는 우스갯 소리가 회자되고 있겠는가.

국민건강이라는 미래 비용을 생각해 수습에 나선 대한의사협회에 오랜만에 박수를 친다. 누구나 실수는 하지만 실수를 인정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실수 인정을 패배로 인식하는 순간 매몰비용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교훈은 한 번 쯤 되새겨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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