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지시로 심평원, 상근심사위원 중심 협의체 꾸려 심의
의료계 "자료로 소명 한계…의사 믿지 못한다는 처사" 비판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기한을 20일로 제한한 데 이어, 이를 넘어선 환자의 입원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심의를 맡긴 것으로 확인됐다.
임상 현장에서는 코로나 중환자 치료를 도맡고 있는 의료진을 믿지 못하는 처사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상근심사위원으로 구성한 별도의 회의체를 통해 20일이 넘도록 코로나19 치료를 받고 있는 중증환자의 입원 적정성에 대해 심의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에다 중환자 병상 부족 상황을 해소하고자 지난달 16일 '증상 발현 후 20일이 지난 환자'는 퇴실하도록 지침을 개정했다.
추가 격리치료가 필요하면 의료기관이 3일 안에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럼 복지부는 소명자료를 심사해 격리치료가 부적합한 환자에 대해서만 전원 명령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는 의료기관이 제출한 소명자료 심사 업무를 심평원에 넘겼다. 심평원은 지난달 말부터 약 3차례의 회의를 진행해 병원들이 제출한 소명 자료를 바탕으로 코로나 중환자 20일 초과 입원의 적정성에 대해 심의했다.
임상 현장은 자료만으로 입원의 적정성에 대한 판단에 한계가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천 상급종합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료진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행위를 하고 있는데 잘못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글을 써야 한다"라며 "실제 환자를 자료로 대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환자가 격리 중환자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소견서 양식도 복잡해서 작성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행정부담도 상당하다"라며 "중환자 병상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정신없을 때는 작성하는 그 자체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라고 덧붙였다.
의료진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행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교수는 "코로나 환자 치료 과정에서 빠른 전원 및 전실을 하지 못한 사례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며 "소수의 사례를 보고 굳이 다수까지 규제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씁쓸하다. 결국에는 정부가 의사를 못 믿는다는 소리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소명서를 낸다고 해서 20일 초과 입원을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서울 한 상급종합병원 중환자 전담 교수는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가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일반 병실, 중환자실로 옮길 수 없다는 사례만 예외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중환자는 병실을 옮기는 게 제일 치명적인 과정이다. 단순히 자료만 보고는 환자 중증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수치상 코로나19 중환자 병상 가동률이 줄어드는 것은 환자 숫자가 감소한 이유도 있지만 중환자가 일반 병실로 옮겨간 탓도 크다"라며 "결국 코로나 환자 치료에 전용 병상도, 일반 병상도 활용하게 되면서 비코로나 환자가 갈 곳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입원료 적정성 심의를 돌연 심평원이 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전 임원은 "심평원이 작년부터 입원료 심사를 시작했고, 심사평가에 전문적인 기관이라서 심의를 맡긴 것 같은데 사실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 적절성을 따지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환자 치료는 주치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게 중요한데 격리가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의료진을 못 믿고 있는 것"이라며 "보다 전문적이라는 이유로 산하 기관에 업무를 넘기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일침 했다.
심평원 입장에서도 입원 적정성 심사 업무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심평원 관계자는 "기존 업무에 시급성이 강조되는 업무가 하나 더 얹힌 것"이라며 "코로나19로 모든 공공기관이 업무 과부하 상황에 있겠지만 인력이나 행정적 비용이 추가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만 늘고 있어 힘에 부치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