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는 임상시험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중요한 한 축이다. 알다시피 임상시험은 아직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환자에게 미치는 위험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그 큰 축이 식약처와 같은 규제기관과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각 기관의 IRB이다.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각 기관의 IRB가 안전성을 검토함으로써 균형감 있게, 또는 혹 놓치는 부분이 없이 메꿔지는 측면이 있다. 이렇게 임상시험은 식약처와 IRB의 승인을 각각 득해야 시작할 수 있다.
작년 7월 정부는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 등의 신속한 임상시험 심사를 위해 중앙임상시험심사위원회(중앙IRB)를 출범했다.
필자는 이 때 안전성 불감의 우리나라에서 중앙IRB 제도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임상시험 안전성 관리가 더 소홀해질 수 있어서 반대하는 마음이었지만,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해했다. 중앙IRB는 코로나 판데믹과 같은 긴급하고도 위중한 상황에 국한해야 했다.
그런데 식약처는 여기에 슬그머니 항암제를 끼워넣었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임상시험의 약 30% 정도가 항암제 임상시험이다. 항암제 임상시험은 특히 여명이 몇 개월 남지 않은 말기 암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더욱 각별한 안전성 관리가 필요하다.
필자가 타그리소의 임상시험에서 2~3개월마다 시행해야 하는 심장모니터링이 빠져 있음을 알고 이를 추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할 때 식약처는 눈과 귀를 닫았다.
그 때 한 공무원은 필자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어차피 몇 개월이면 죽을텐데' 라고 혼자말을 했다. 필자는 그 때 식약처의 모든 책상을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을 만큼 큰 분노를 느꼈다. 그런 식약처가 중앙IRB에 항암제를 슬그머니 끼워넣은 것이다.
그나마 중앙IRB는 식약처 산하 의약품안전관리원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한, 의약품안전관리원에는 의사가 단 한 명도 없다(의약품안전관리원의 부실한 운영에 대해서는 필자가 기회가 있을 때 칼럼을 통해서 한 번 다루고자 한다).
당연히 중앙IRB 운영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IRB 경험이 있는 의사들을 채용해야 했다. 애당초 의약품안전관리원에 의사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말이 안되니 말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식약처는 중앙IRB를 외주 주겠다고 위탁기관을 모집했다. '안전'을 외주 주겠다니!
한 발 더 나아가 1월19일 식약처는 중앙IRB를 활성화해서 코로나 백신/치료제, 항암제 임상시험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 임상시험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목적은 각 의료기관 IRB에서 각각 심사하지 않고 한꺼번에 통합심사를 받을 수 있어 임상시험 승인에 드는 기간이 단축되기 때문이란다. 식약처가 '신속'에 미쳐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식약처는 2022년부터 임상시험 중 안전성 정보인 DSUR을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이 또한 중앙IRB에 일임하겠단다. 참 대단한 식약처다. '허가, 승인'의 칼자루만 쥐고, '안전관리'의 책임은 모조리 위탁하겠다니!
그런데 이런 위탁에 응하는 의사집단 또한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질병관리청이 백신안전성평가가 문제되자 이 문제를 의학한림원에 위탁해 자신들의 본연의 책임을 면피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제 식약처는 임상시험 안전성을 대한의학회에 위탁해 그 책임을 면피하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의사집단이 피처링 하는 것은 결코 국가의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 자문과 실무를 구분해야 한다.
그럼 중앙IRB의 활성화는 과연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가 원했던 것일까? 지난 13일 2022 바이오헬스산업 육성 신년 간담회에서 제약바이오기업이 어려움을 호소한 것은 오히려 식약처의 늑장 승인이었다. 이는 필자가 식약처에서 일하면서도 느낀 것이다.
식약처의 임상시험 검토기간은 30 working day 지만, 결국 임박시점에 보완 요청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보완 내용이 시험대상자에게 미치는 안전성에 결정적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계획서의 불충분한 내용, 심지어는 심사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에 대한 확인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얼마든지 검토하면서 회사와 소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필자는 임상시험시험계획서를 검토하면서 보완을 낸 적이 거의 없다. 회사와의 필요한 소통은 검토 기간 meticulous 하게 하면 얼마든지 검토 기간 충분한 자료 요청을 하고 내용 확인을 할 수 있었다. 필자는 기업에서 일해 보았기에 기업에게는 시간이 곧 돈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식약처 공무원들은 아주 쉽게 보완을 낸다. 아마 미국 FDA의 임상시험 보완율과 식약처의 보완율을 비교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허가 심사 보완율도 마찬가지이다. 즉, 제약바이오기업이 원하는 것은 식약처의 속도이지, IRB의 속도가 아니다.
식약처가 미쳤다고 표현한 것은 그 조직이 무슨 일을 해야 되는 곳인지를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제약바이오기업들이 답답해하는 '허가, 승인' 부분을 외주 줘라.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식약처의 전문성을 바라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제약바이오기업들의 성장속도가 빨라지면서 식약처의 뒤처짐이 점점 현저해지고 있다.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전문가만이 전문가를 키울 수 있는데, 식약처 내부에 전문가가 희소하기 때문에 전문성의 성장은 요원하다. 그래서 아마도 2032년 바이오헬스산업 육성 신년 간담회도 내용이 똑같을 것이라고 감히 장담한다.
그런데 식약처가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안전성 관리'이다. 어떻게 감히 안전성 관리를 외주를 주는가? 안전성 관리에 대한 책임을 그렇게도 회피하고 싶은가? 이는 규제기관이 제정신이라면 감히 할 수 없는 미친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