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제안으로 국내 첫 '트레이드 오프' 제도 현실화
자누비아 계열 3월 약가 인하…제네릭 경쟁 국내사 한숨
고가 신약의 등재나 급여 확대를 위해 제약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약물의 보험 약가를 인하하는 이른바 '트레이드-오프(Trade-Off)'가 현실화됐다.
첫 대상은 그동안 급여 확대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됐던 한국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3월부터 폐암 1차 치료에서부터 키트루다 급여 대상이 확대되는 대신 MSD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품목들의 약가가 인하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새롭게 제시된 급여적용 모델로 보건복지부가 제약사에 먼저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암질심서부터 제시됐던 '트레이드-오프'
2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키트루다 '트레이드-오프' 방식 급여 확대 논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하로 운영 중인 암질환심의위원회(이하 암질심)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2019 10월 MSD가 심평원에 키트루다 급여 확대를 신청한 이후, 암질심 회의 과정에서 비용효과성 등을 이유로 번번이 논의가 보류되다 보니 보건당국이 제약사에 새롭게 제시한 재정 분담안으로 여겨진다.
키트루다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에까지 급여를 확대하는 대신에 제약사가 보유한 다른 약물의 약가를 인하하는 방식.
다시 말해, 이번 키트루다의 급여 확대 과정에서 복지부는 환자의 활용 폭이 커지는 만큼 기존 약가(283만 3278원/주)보다 25.6% 인하된 210만 7642원(주)으로 조정했지만, 이전 티센트릭 등 다른 항암신약의 급여 확대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면 이보다 더 약가를 인하했어야 한다는 뜻이다.
확인 결과, 복지부는 지난해 7월 암질심 통과 과정에서 이 같은 트레이드-오프 방식으로 키트루다의 급여 확대를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암질심 논의에 참여한 A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암질심 논의 과정에서 복지부를 중심으로 제약사에 제안했던 방식"이었다며 "키트루다의 약가를 추가로 인하하는 대신에 다른 약물의 약가를 인하하는 것인데 대상 약물을 놓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시일이 걸렸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제약사 입장에서 키트루다의 약가를 추가로 더 인하하기 부담스런 측면이 존재한다"며 "해외의 다른 국가들도 국내의 급여적용에 관심이 많은 상황에서 제약사 입장에서도 추가로 약가를 더 인하하긴 힘든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다른 약가를 추가로 인하하는 방식을 통해 보험재정을 관리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키트루다 급여 확대 동시에 자누비아 패밀리 '약가인하'
이에 따라 3월부터 키트루다의 급여가 1차 치료에까지 확대되는 대신에 MSD의 당뇨병 치료제인 '자누비아 패밀리'를 포함한 15개 품목 약가도 동시에 인하된다.
구체적으로 ▲자누비아 품목 3개 ▲자누메트 품목 3개 ▲자누메트엑스알서방정 품목 3개 ▲에멘드캡슐 품목 2개 ▲에멘드IV주150mg ▲테모달 품목 3개등 총 15개 품목의 상한금액을 평균 26% 자진 인하한다.
다만, 인하율은 '자누비아 패밀리' 각 6%, 에멘드 각 35%, 테모달 각 77% 등으로 약가인하율은 천지차이다.
제약업계에서는 키트루다도 일정부분 약가가 인하되지만 여기에 추가로 이들 15개 품목이 트레이드-오프 방식 적용 속 희생양이 됐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해당 품목의 약가인하를 두고서 국내 제약업계는 향후 제네릭 품목에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고 있다.
MSD의 15개 약가인하 품목이 약가가 인하되면서 관련 치료제 시장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일부 품목의 경우 제네릭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인데 이번 약가 인하 조치로 인해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제약사 임원은 "원래대로 한다면 키트루다의 약가를 더 인하하는 것이 맞다. 트레이드-오프 방식으로 다른 약가를 내린 셈"이라며 "형평성 차원에서의 문제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고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키트루다 대신에 약가가 인하된 품목들도 문제다. 자누비아의 경우 제네릭 등재가 1년이 남짐 않았다"며 "이처럼 제네릭 진입 여부 과정에서 오리지널 품목의 약가가 인하되면서 제네릭사는 더 약가를 인하해야 하는 형편이다. 국내사들이 추가로 매출 피해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