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_미래의료를 연구하는 의사들]①서울대병원 강형진 교수
복지부 주관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지원사업 성공 사례로 눈길
"식약처 장벽 높아" 연구자 주도 임상, 기업 임상 잣대와 달리해야
5억 원에 달하는 백혈병 약 '킴리아'가 있어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그림의 떡'인 환자들에게 치료 길을 열어준 국내 의료진이 있다. 국내 첫 CAR-T 치료제 생산에 성공한 서울대병원 강형진 교수(소아청소년과)가 그 주인공.
메디칼타임즈는 보건복지부 주관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지원사업'을 통해 난치병 치료의 길을 열고 있는 의사들을 직접 만나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미래 의료의 현주소와 그들의 고충을 들어봤다.
강 교수가 연구하는 CAR-T치료제는 복지부의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 지원사업'에서도 고위험군에 속하는 연구로 쉽지 않은 과제다. 하지만 올해 4월 성과를 낸 데 이어 지난 10월 희소식을 전하면서 치료 혜택을 누리는 대상 환자군을 확대해가고 있다.
■ 국내 CAR-T 치료제 성공 의미는?
강 교수의 CAR-T치료제 대상자는 5억 원에 달하는 킴리아 치료제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정부는 킴리아 치료제를 급여로 인정하면서 환자들의 비용 부담을 덜어줬지만 이는 대상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CAR-T 치료제에 기대를 걸어볼 만한 환자이지만 정부가 정한 조건에 부합하지 못해 발만 동동 굴렀던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마련하면서 실낱 같은 희망을 안겨줬다.
같은 CAR-T인데 강 교수가 개발한 치료제는 무상으로 가능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연구자 주도 임상이기 때문이다.
노비티스 '킴리아'치료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임상시험 등 각종 안전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자료를 요구받는다. 이때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한다.
하지만 연구자 주도 임상 과정에선 얘기가 다르다. 정부 차원에서 임상시험 예산을 일부 지원하고 성공할 경우 기술이전하면 그만이다.
강 교수는 "세포 치료제는 기업이 주도해 개발하기보다는 연구자 주도 임상을 통해 추진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득이다. 연구자는 원천기술을 개발해 기술이전하고 기업은 이를 신속하게 산업화하면 국가 역량도 강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 교수는 누구보다 연구자 주도 임상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기업 주도 임상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용과 시간을 차치하고도 강 교수가 연구자 주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당장 눈앞에 환자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환자가 킴리아 치료제를 기다리면서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면서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의미가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의미는 타 병원에서도 서울대병원이 개발한 CAR-T 치료제 플랫폼을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플랫폼을 구축해놨기 때문에 위암, 간암 등 다양한 분야 환자에게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CAR-T 치료제 생산 성공 풀 스토리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CAR-T 치료제 생산에 성공하기까지는 강 교수의 수십 년간의 노력과 잇따른 우연(?)이 있기에 가능했다.
강 교수는 공중보건의사 시절, 운 좋게 국립보건원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평소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공보의 근무를 하면서도 논문을 제출할 정도로 열성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유전자 치료에 대한 연구가 태동할 무렵으로 강 교수는 바이러스 벡터 연구를 한 것이 현재 연구의 기반이 됐다.
지난 2009년 강 교수는 미국 Baylor College of Medicine가 운영하는 Center for Cell and Gene Therapy에서 각종 면역세포 유전자 치료제 연구에 한창인 모습을 지켜보며 향후 유전자 치료가 미래 의료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면역세포치료, CAR-T 치료제 연구를 시작, 치료제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2015년 당시만 해도 CAR-T 치료제 관련 제안서를 보고 일각에선 'CAR'이라는 단어를 보고 자동차를 연구하는 공과대학에서 연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할 정도로 유전자 치료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이었다.
이후 2017년 노바티스 킴리아가 출시하면서 국내 환자들도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려면 CAR-T 비용 5억원에 치료비 5억원을 포함해 총 10억 원이 필요했다.
2018년, 서울대병원이 연구중심병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 교수의 CAR-T 치료제 연구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 연구비를 수혈한 그는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했다.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했지만 식약처 승인이라는 장벽을 만나면서 동물실험 등 안전성 검증을 거치면서 4년이 지체됐다. 눈앞의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답답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 서울대병원 CAR-T 치료제가 탄생했다.
■ CAR-T 치료제, 가야 할 방향과 과제
강 교수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고 했다.
미국에선 이미 한창 진행한 연구였고, 해당 벡터(Vector)를 국내로 가져와서 CAR-T 생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식약처 승인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강 교수가 학문적, 공익적 목적의 연구자 임상과 제약사 등 기업에서 상업화를 목적으로 진행하는 임상과는 트랙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는 "학문적 목적의 연구는 복지부가 주도하고 식약처는 검토만 하면 된다"면서 "어차피 상업화 단계에서 식약처 승인을 받아 진행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킴리아도 마찬가지다. 상업화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지만 연구자 주도 임상 단계에서 장벽이 낮았기에 지금의 성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항체치료에서 카티, T세포 등 치료의 물결이 바뀌고 있는데 한국은 이 같은 규제로 뒤쳐져 있다"면서 "규제만 해결되면 연구를 하고싶다는 젊은 연구자도 많은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복지부도 이제 심사를 할 역량을 갖췄다고 본다. 적어도 연구자 임상에 한해서는 복지부 승인, 식약처 검토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