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찾아 떠나는 머나먼 길, 불명열

제주의대 본과 2학년 이승준
발행날짜: 2024-05-20 05:00:00
  • 제주의대 본과 2학년 이승준(의대생신문 교정편집부)

종종 뚜렷한 이유를 모른 채 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감기약을 타고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열은 보통 1-3주간 지속된다. 그리고 열과 함께 여러 신체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그 예시로 두통, 피로, 식욕 부진이 대표적이다.

열은 지속되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환자와 주위 사람들은 몸이 허약해서 일시적으로 열이 났다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열은 몇 달 후 재발하여 환자를 다시 괴롭힌다. 단순 열감기가 아님을 깨닫고 동네 병원에서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지 못하기 일쑤다. 원인 모를 열은 환자와 주위 사람들 모두를 답답하게 만든다.

원인 모를 열의 정의는 무엇일까? 원인 모를 열은 의학용어로 불명열(Fever of unknown origin, FUO)라고 부른다. 불명열이란 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도 그 원인을 못 찾은 경우를 말한다.

불명열의 원인으로는 감염과 종양, 염증성 질환이 흔하다. 이 셋 중에 하나가 원인이니까 금방 원인을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불명열의 원인 질환은 200가지 이상으로 보고되었고 환자가 이중 어떤 원인 질환을 가졌는지 감별하는데 여러 검사와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통계상 불명열 환자의 70% 정도만 그 원인을 밝힐 수 있었다. 따라서 위에 불명열의 정의에서 언급된 ‘적극적인 노력’에는 환자와 보호자의 노력과 끈기가 포함된다.

열이 1~3주 이상 지속되고 동네 병원에서 그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 종합병원의 감염 내과를 찾아야 한다. 감염 내과를 한두 번 외래로 방문해서는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 주기적인 검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집과 가까운 종합병원을 가는 것이 추천된다. 감염 내과 선생님의 판단에 따라서 입원하여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

감염 내과에서는 불명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여러 검사를 진행한다. 기본적으로 혈액검사와 소변검사, 영상검사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환자의 염증수치, 백혈구수치, 류마티스 인자, 장기의 이상 등을 확인하고 감염, 류마티스 질환 여부와 종양의 유무를 판별한다. 환자가 지속적인 두통이 있을 때는 뇌척수액 검사를 진행할 수도 있다.

위 검사에서 비정상적인 낌새가 관찰되면 감염내과에서는 환자가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원인질환의 후보군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그 후보군들이 환자의 원인 질환이 맞는지 하나하나 검증하기 시작한다.

이때 여러 과 의사 선생님들이 동원되어서 검증에 참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류마티스 질환이 의심되면 류마티스 내과 선생님이 오고 종양이 의심되면 혈액종양 내과 선생님이 와서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원인 질환의 후보를 하나씩 지우는 과정에서 진단을 위한 수술이 필요할 수 있다. 불명열의 흔한 원인인 감염, 염증 질환, 종양에서 모두 커진 림프절을 관찰할 수 있는데 그 림프절의 조직 검사가 진단에 큰 기여가 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검사들을 했음에도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유전자 검사를 고려할 수도 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희귀병, 배양하기 힘든 세균과 바이러스를 발견할 수도 있다.

검사 종류의 수만 봐도 열의 원인을 찾기 위해 긴 시간과 비용이 들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검사를 꾸준히 받음에도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에 환자와 보호자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렇다고 원인 찾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마당이다. 시간이 갈수록 원인 질환의 치료는 힘들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쉬지 않고 걸어가는 느낌일 것이다. 그렇지만 위에 제시된 길을 터벅터벅 걷다 보면 끝내 원인을 찾고 분명히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불명열 환자가 원인 질환을 치료하여 다시 활기차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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