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해진 경영난 희망퇴직 임박…병원들 몸집 줄이기 분주
노·사 임금협상 최대한 연기…대학병원 간납업체 줄도산 코앞
6월을 기점으로 전공의 사직 여파로 수술, 진료를 대폭 줄인 대학병원들이 최악의 경영난을 겪을 전망이다. 지난 5월, 정부의 의대증원 확정으로 올해 전공의들의 미복귀가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일선 대학병원 보직자들은 "이제 의료 질은 사치다. 생존이 걸린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학병원들은 이달부터 본격적인 몸집줄이기에 나설 태세다. 과거 추진했던 증축 공사는 이미 중단했고, 명예퇴직, 임금동결 혹은 삭감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조와의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대학병원 기조실장은 "6월부터 병원 도산을 막기위해 구조조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병원들, 명예퇴직 혹은 임금삭감 기로
대학병원들은 의사 이외 간호사부터 행정직원까지 모든 직역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무급휴직으로 버텨봤지만, 경영난이 지속되면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대형병원도 예외는 없다. 20년 이상 장기근속한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병원들은 누가 첫 테이프를 끊을 지 눈치를 보고 있지만, 누구든 일단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게 일선 병원 경영진들의 전망이다.
특히 6월부터 임금 등 노사협상이 시작되면 장기근속 직원들은 명예퇴직과 임금삭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처할 위기다.
상급종합병원 재무담당자협회 라병학 총무이사는 "병원들은 부도를 막기위해 일단 구조조정을 통한 몸집 줄이기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전공의 사직 이후 일선 병원들의 경영난은 이미 시작된 상황. 서울대,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중앙의료원 등 대형 대학병원도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한 지 오래다.
인제대 상계백병원은 이미 지난 3월, 향후 6개월간 급여의 일부(월 48만원, 116만원)를 반납한다는 내용의 '급여반납동의서'를 보낸 바 있다.
경희의료원 오주형 의료원장은 교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매일 억 단위 적자 발생으로 개원 53년 이래 최악의 경영난으로 의료원 존폐 가능성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처참한 상황"이라고 알렸다.
수년 째 적자 경영을 해온 경희대병원은 금융권 대출 또한 여의치 않아 의대증원 사태로 불러온 최악의 경영난을 버텨낼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국립대병원도 경영난은 마찬가지다. 경북대병원 양동헌 병원장은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필수의료 제공 이외 모든 활동을 줄이고 필수적인 예산집행도 집행시기를 늦췄다.
고대구로병원 신정호 기조실장은 "정부가 직원 급여를 대신 지급하는 것도 아니지 않나. 병원들은 냉정해질 수 밖에 없는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재무담당자협의회 측은 병원 도산 이전에 대학병원 약, 치료재료 등을 납품하는 간납업체들의 줄도산이 먼저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 직원 급여 지급이 벅찬 대학병원들의 최우선 선택은 간납업체 대금결제 연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지난 4월, 의료기기 간납업체들의 대금 결제기한이 연장되면서 줄도산 위기에 처해있다고 호소한 지 2개월이 지나면서 경영난이 극에 달한 상태다.
■대학병원 '생존' 위해 '성장' 스톱…의대교수 이탈 관건
과거 경험해 본 적 없는 최악의 경영난에 매년 투자를 통해 의료질을 꾸준히 끌어올려 온 대학병원들은 성장을 멈췄다. 빅5병원을 비롯해 대부분의 대학병원들은 분원 혹은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었지만 기존에 공사 중인 사업을 제외하고는 일괄 중단된 상태다.
대학병원 경영진들은 "이번 경영난은 향후 10년 이상 병원 경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분간 최신 장비를 도입은 물론 의료질 향상을 위한 투자가 막히면서 과거 '최상의 의료'를 외치던 병원들이 이제 현실 여건에 맞춘 '최선의 진료'에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료 또한 '돈이 되는 환자'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가령 암 환자의 경우 검사, 수술 등은 기본적인 치료를 실시하지만 과거 암 환자의 재활, 정신과 치료 등은 줄일 계획이다. 또 말기암 환자도 과거에는 끝까지 다양한 치료를 시도했지만 앞으로는 호스피스로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일선 병원들은 최근 팰로우 등 전문의 채용도 수익성을 고려한 인력 충원을 검토 중이다.
더 문제는 추가적인 의대교수의 이탈 현상이다. 이미 의대교수들 사이에선 "똑똑한 사람이 먼저 (대학병원을)나간다. 미련한 사람이 가장 늦게 나갈 것"이라는 웃픈 얘기가 돌고 있다.
실제로 췌장암 수술 명의로 성장 중인 충북대병원 최한림 교수가 6월부터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충북대병원 교육수련부장이자 신장투석 분야 주목받던 권순길 교수도 사직 후 개원을 준비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형 대학병원 보직자는 "6월부터 전공의 미복귀가 확정되면서 떠나는 교수가 늘어날 수 있다"면서 "정부는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PA간호사가 대부분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간신히 메꿔가면서 의료 질을 저하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최악의 경영난 상황이지만 (대학병원 붕괴는)이제부터 시작이다"면서 "대출로 버티면서 천천히 말라 죽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보직자는 "사회·경제적 이유가 아닌, 의료정책 이슈로 최악의 경영난이 닥친 현실에 망연자실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