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의사, 환자 칼부림 사건의 전말…"의사 악마화 칼부림으로 이어져"
황규석 회장 "올특위 브리핑 4분 전 공문 도착" 집행부 소통 부재 지적
의사가 환자에게 칼부림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의료계에서 그 원인이 길어지는 의과대학 정원 증원 갈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해결해야 할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소통 없는 투쟁 일변도로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일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이날 서초경찰서를 방문해 의사에게 칼부림한 가해자에 대한 엄벌 촉구 진정서를 제출했다. 가해자인 A씨는 지난 19일 오전 11시경, 서울 서초구 한 병원에서 의사 B씨를 흉기로 찔러 경찰에 체포됐다. 약 처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다.
진정서 제출 이후 황 회장은 의료전문지 기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A씨는 명백한 살해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피해 의사를 방문해 자초지종을 들은 결과, A씨는 흉기를 숨기고 병원에 들어와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인 의사를 기습했다는 것.
이렇게 피해 의사는 총 6개의 자상을 입었는데, 목으로 향하는 칼날을 피하려다가 승모근을 깊게 찔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아직도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고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명백한 살해 의도를 가진 범행이라는 것. 범행 이유가 된 처방 역시 통상적인 것이어서 여기 왜 불만을 가진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황 회장은 "이 환자분은 명백한 살해 의도를 가졌다. 흉기를 숨기고 진료 접수도 하지 않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왔다"며 "다른 환자를 진료 중인데 흉기를 꺼내 무차별적으로 찌른 것이다. 그것도 칼이 15도 휠 정도로 강도가 셌는데, 목을 찌르려는 것을 피해 승모근이 찔리고 칼을 막으려다가 오른손 인대가 절단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워낙 상처가 깊고 손상된 혈관이 많아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다. 오른손 같은 경우는 인대가 끊어져서 사용하는 데 많은 장애가 있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굉장히 격양되고 억울해하는 상황인데 자신이 이런 공격을 받는 게 대한민국 사회의 의사 불신 때문이라고 호소하더라"라고 전했다.
황 회장은 이 같은 범죄는 의사 개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전체 의료에 대한 테러라고 비판했다. 또 이렇게까지 의사에 대한 불신이 심해진 원인으로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료계·정부 갈등을 지목했다.
정부가 의사를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의사에 대한 국민 신뢰가 매우 떨어졌다는 우려다. 만약 의사와 환자 간 신뢰 관계가 견고했다면 이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황 회장은 "이번 사건과 의대 증원 사태는 분명히 연관관계가 있다. 명백히 치료 결과가 나쁜 게 아니고 수술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라며 "그랬다고 해도 해선 안 될 범죄다. 단순히 처방 내용에 대한 불만으로 살해 의도를 가진다는 것은, 지금의 의정 갈등 상황과 의사를 불신하는 사회 현상을 저변에 깔지 않곤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 매우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엔, 정부의 책임도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국민 불신이 만든 살인 미수 사건이고 대한민국 의료에 대한 테러다. 이 같은 범죄에 대한 강력 처벌을 전제로 한 입법을 요구해야 하고, 관련 사건을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리는 사례가 꾸준히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절체절명이 상황에서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할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는 일방적인 의사결정으로 내부 비판받는 상황이다. 앞서 의협은 지난 18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오는 27일 무기한 휴진을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와 관련해 아무런 논의가 없었다는 시도의사회 반발이 나오면서 내부 파열음이 커지는 상황이다. 27일이 무기한 휴진 일로 정해진 것과 관련해 의협 집행부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보는 시도의사회장들은 석연치 않은 모습이다.
특히 의협 대의원회 김교웅 의장과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김택우 회장은 오는 21일 의협 임현택 비공식적 면담을 진행하는 등 제동에 나섰다. 여기서 독단적 의사결정을 지양할 것을 요구하고 27일 무기한 휴진을 재검토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한다는 방침이다.
더욱이 이날 구성된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올특위)' 역시 그 구성이 일방적으로 정해진 것이 드러나면서 비판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의협은 전날 올특위 구성을 발표하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에 위원 참여 공문을 보냈다고 밝혔는데, 관련 브리핑이 시작되기 4분 전에야 공문이 도착했다는 것.
이와 함께 의대협은 올특위에 불참하겠다고 밝혔으며,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미 불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시도의사회 위원 구성은 더 문제다. 황 회장은 올특위가 구성되고 본인이 위원을 들어갔다는 것을 브리핑 후 기사를 본 뒤에 알았다고 전했다. 시도의사회와는 올특위 구성이나 향후 방향성 등과 관련해 아무런 사전 논의가 없었던 것.
또 이른 특위는 첫 회의나 그 이전에 논의해 위원장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마저도 일방적으로 정해졌다. 무엇보다 황 회장은 첫 회의 날인 22일 선약이 있고, 이날 회의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 참석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 황 회장은 "의료계 내부서라도 의견 수렴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렇게 집행부에서 결정하고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은 투쟁 동력을 반감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27일 무기한 휴진 역시 이를 소통하는 방식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이런 부분들이 올특위에서 조금이라도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원장은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를 집행부에서 결정해 내려주면 다른 위원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며 "상임이사회서라도 논의했으면 나았을 테지만 올특위 자체나 그 구성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다. 이런 과정 없이 이렇게 결정해버린 것 자체가 근본적인 변화는 없지 않나 우려스러울 따름"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