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술팀 최선 기자
"의사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한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하며 집단 휴진에 나섰습니다. 대형병원이나 응급실 등 필수 의료인력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파업 장기화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2020년 8월
최근 대한의학회 학술대회를 취재하면서 흥미로운 관점을 봤다. 아젠다만 변할뿐 의-정 갈등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아젠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한창 시끄러웠던 2020년 당시에도 현재에 벌어지고 있는 의사총궐기대회, 집단휴진, 파업과 같은 갈등 구조가 반복됐다. 심지어 의대 증원을 둘러싼 마찰이라는 시나리오까지 판박이다.
모두 '국민을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었지만, 시계를 돌려봐도 언제나 시작과 끝이 비슷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둘러싼 의사들의 대규모 파업과 2014년 원격의료·의료민영화에 대한 의료계의 집단 파업뿐이 아니다. 2010년도 쌍벌제 도입에서도 의료계는 파업 카드를 선언하며 배수진을 친 바 있다.
정부가 안을 제시하면 의료계는 의료 질 저하, 환자 피해 우려, 협의 부족을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다. 논의의 주제만 바뀌었을 뿐 '정부의 정책 결정→강행 예고→의사들의 반발→파업'이라는 프로세스는 언제나 견고하게 작동했다.
이와 관련 의학회 학술대회 강연자로 나선 서경화 보건학 박사는 의-정 갈등의 문제를 거버넌스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문제의 핵심은 정책 결정 과정과 적용 방식에 있고, 근거자료에 대한 합의에 있는 만큼 '문제 인식→방법 모색→방법 비교 검토→방법 선택과 실행→사후 평가'로 이뤄지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도구, 즉 거버넌스가 필요하다는 것.
세상이 0과 1의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로 자신만의 근거가 정설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법론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협력과 양보의 미덕을 보이자는 설명이다.
지속 가능한 의료정책은 그 정책의 수행 주체인 의사들의 협력과 공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까닭에 답을 정해놓고 요식행위로 공청회나 협의체를 구성하는 대신 정책 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협의하는 구조 확립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든다.
미래 정책의 필요성과 목적을 명확히 설명하고,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는 공식협의체를 만들거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포럼과 워크숍을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착한 구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구조는 단순한 정책의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협력의 강화로 이어진다.
사회가 고도화될 수록 구성원들간 이해관계는 다원화되고 복잡하게 얽힌다. 갈등의 반복과 재현이라는 고리를 끊기 위해선 "까라면 까"와 같은 상명하복 강요 대신 저마다의 의견을 수렴, 합의해 나가는 상향식 협의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상대방 찍어내리기 = 승리'라는 공식은 낡았다. 상명하복의 전통도 낡긴 마찬가지.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아니 좀 늦었다. 각자 '국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 조바심의 근원을. 그 맹목적인 반대의 목적을. 치적을 위한 졸속 행정이라거나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를. 이제는 바꿀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