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진솔하게 써 내려가는 우리의 목소리

경상의대 2학년 박성연
발행날짜: 2024-06-24 05:00:00
  •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박성연

지난 2월 정부에서 발표한 필수 의료 패키지에 반대하여 우리는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평소에 학교를 다닐 때 주로 아이패드로 공부하곤 하는데, 휴학하고는 패드에 저장된 강의록 모음을 들여다볼 일이 없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우연히 패드를 켜서 작년, 본과 1학년 때 배웠던 강의록 그리고 과제를 훑어볼 기회가 있었다. 학교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실습했던 순간들, 강의를 들으며 감명받기도 하고 훌륭한 의사가 되어 의술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다짐했던 기억들이 방울방울 스쳐 지나갔다.

본과 1학년 해부 실습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본1을 맞이하는 겨울은 유난히 차게 느껴진다. 2월 초에 시작한 개강. 조금 여유로운 예과를 보내고 급격하게 늘어나는 학습량에 적응할 새도 없이 치러지는 골학 땡시, 그리고 시작되는 해부 실습은 우리를 24시간 긴장하게 한다.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검정 양복을 갖춰 입고 잔뜩 긴장된 상태로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해부제를 지내고 무거운 마음으로 카데바를 맞이한다.

'가족분들께서 큰 뜻을 품고 기증해 주신 이 시신을 통해서 정말 열심히 실습하고 공부해서 실력 있는 의료인으로 성장해야지'

이 꿈을 품어보지 않은 의대생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실습이 시작될 때, 그리고 끝날 때 차디찬 스테인리스 실습대 위에 올려진 카데바를 향해 묵념하고 경건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실습에 임한다. 짧은 묵념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제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동기들과 서로 도와가며 실습을 잘해보겠습니다'라는 생각부터 '미래에 서젼이 되어 이 실습으로서 배운 해부학 지식을 잘 활용해 내가 든 메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이라는 생각들까지.

짧게는 오늘 있을 실습 때 나의 마음가짐을 다지고, 길게는 먼 미래 훌륭한 의술을 펼칠 의사로 성장하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며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정신없이 진행되는 몇 시간에 걸친 실습이 끝나면 우리의 몸과 머리카락에는 진한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한다. 샤워를 하고 다시 정독실로 향한다. 오늘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꾸벅꾸벅 졸면서 내일 있을 해부 실습 내용을 예습까지 마쳐야 다시 카데바 앞에 설 수 있다.

이렇게 치열한 일상은 약 4개월 반 동안 이어진다. 6시간 이상을 편하게 깊이 잔 적도 없이 공부에 매진하며 한 학기를 보낸다. 숨차게 달려가고 벅찬 스케줄을 소화하면서도 불평하는 동기는 아무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너무 힘겨운 한 학기였기에 돌아갈 수 없는 학기라고 회상하긴 하지만, 감사했고, 또 배울 수 있음에 정말 보람찬 한 학기를 보냈다.

이렇게나마 교육 현장에서의 우리의 목소리를 적어본다.

여러 뉴스 기사를 접하고 필수 의료 패키지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볼 때면 의사와 의대생 집단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대 증원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국민의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흔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학생들은 늘 불타는 사명감과 꿈을 갖고 의학교육의 현장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당장 2025년부터 급진적으로 추진되는 의대 정원 증원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채 정원을 확대하는 정책은 교육의 질을 크게 저하한다. 당장 본인이 속한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은 작년 의학 교육 복합관을 신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증원 해당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수용할 강의실과 실습실이 마련되어있지 않다.

이와 같은 정책이 계속 추진 될 경우 의학 교육 질의 저하는 불가피하며 이 피해는 학생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나아가 불충분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배출될 경우 이 모든 피해는 10년 후 환자들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될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이 배우고 익혀 대한민국 의료 발전을 위해 힘쓸 준비가 되어있다. 하루빨리 이 혼란이 정리되고 학교로 돌아갈 날들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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