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메디클럽ㅣ한양대 바둑동호회 '기우회'
94년 승패와 무관하게 정말 바둑이 좋아서 모인 10여명이 10년이 지난 현재 29명으로 늘어났다. 2004년 김수영(프로 7단) 대국을 통해 공인 4단을 인정받은 김명호 의료원장(前회장)과 현재 회장인 양병환 정신과 교수 등 '신사 중의 신사'들만 모인 한양대 기우회의 시작과 현주소가 그렇다.바둑과 함께한 10년 "인생을 나눕니다"
이들이 느끼는 바둑은 인생 그 자체다. 인생에 있어 봄과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이 있듯이 바둑에서도 기승전결이 있다.
올라가는 듯 해 보이면 내려가고, 앞서가는 듯 하면 뒤쳐져 있고......
“인생에 있어서 평생 좋을 수 만은 없잖아요. 부자로 태어났다고 부자로 평생 사는 것이 아니고, 좋은 대학에 갔다고 해서 인생이 다 잘 풀리는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바둑이 그렇죠. 이긴 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질 때가 있습니다”
기우회 회장인 양병환 교수의 바둑에 대한 일성이다.
그래서 바둑을 둘 때는 욕심을 버린단다.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지는 것이 바둑이란다. 양 교수의 말을 빌리면 ‘가장 신사적인 게임’ 그 것이 바로 바둑이다.
바둑 한 판이 곧 인생이지만 바둑과 인생이 다른 점은 자명하다. 인생은 바둑 한판을 새로 두 듯, 다시 살 수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바둑을 둔다. 가끔은 후회되는, 다시 돌아가보고 싶은 옛 시간들을 새롭게 설계하고 싶은 그들만의 새 인생에 대한 꿈으로.
10년만의 첫 우승 "승전보 울리다"
이렇게 욕심을 버린 그들이 10년만에 보건의약인 친선바둑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기우회는 이번 대회에서 김명호 의료원장를 비롯한 양병환 교수(정신과), 홍성권(구리 관리과), 김종두(기획과), 김대진(홍보실) 등 최정예의 막강 진용을 구축했다.
그 결과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건강보험공단을 힘겹게 3대2로 이기며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양병환 교수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기원으로부터 공인 5단증을 받을 정도의 우수한 실력을 발휘했다.
이렇게 우승할 수 있었던 공을 기우회는 10년간 쌓여온 기우회원들간의 화합과 결속에 돌린다. 사실 대회 전날에도 이들은 묘적사에서 우승을 약속하는 자리를 가졌다.
병원 기획과 김종두 기우회 총무는 “바둑은 혼자하는 게임도 아니고 상대방의 상태를 무시하고 혼자 독주할 수 있는 게임도 아닙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친목도 돈독해지는 것 같습니다”라고 회원들간의 친분을 자랑한다.
자주 만날 장소도 마땅찮아 이들은 고작 일년에 두 번 정기 모임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또 한 병원에 있다고는 해도 의사로서, 각기 타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으로서 자주 얼굴을 맞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돈독한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바둑의 힘’이었나보다.
“바둑 홀릭(?)에 빠질 여자분들 오세요”
양병환 교수도, 김종두 총무도, 기우회 회원인 김대진 홍보팀장도 참 조용하고 말 수 없어보이는 차분한 인상이다. 그렇지만 바둑 얘기에서는 그렇지않다. 눈을 반짝이고 침이 튄다.
그들은 그만큼 바둑을 사랑한다. 아니 바둑에 중독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도 싶다. 김종두 총무는 삼국지까지 예로 들며 바둑 예찬론을 펼쳤다.
“관우가 방덕과 맞서 싸우다 화살을 맞고, 그 다음 전투에서도 또 같은 곳에 독이 묻은 화살을 맞게 됐다. 그래서 독을 빼내려고 칼로 쑤셨는데 그 고통을 관우는 바둑으로 이겨냈다”
물론 당시 화타가 마취를 했는가 안했는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칼로 쑤시는 고통도 잊을 정도로 푹 빠질 수 있다니 중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바둑의 매력 때문에 양병환 교수도 병원에서는 거의 바둑을 두지 않는다. 바둑 삼매경에 환자 돌보는 본분을 소홀히 하게 될까 걱정하는 양 교수의 환자 사랑, 배려다.
이런 그들이 이젠 여자 기우회원을 모집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둑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여사우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에는 여자 프로도 점점 늘어나고 바둑에 취미를 두는 여성들도 꽤 눈에 띱니다. 여사우들과도 바둑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네요"
이를 위해 양병환 교수가 발벗고 나섰다. 재정이 빈약하지만 기우회는 바둑 사랑에 빠질 여사우들을 위해 나름대로 파격적(?) 지원을 할 생각이다.
바둑에 무지몽매했던 기자도 바둑에 대한 이들의 열정에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긴다. 자리가 나면 꼭 함께 끼워달라고 열심히 부탁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