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시장 개방보다 빈곤층 건강권 챙겨야

메디게이트뉴스
발행날짜: 2004-04-12 06:13:25
  •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

"보건복지부는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은 뒤로한 채 의료시장 개방에만 몰두하려는가"

지난 7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세계 보건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는 올해 보건의 날을 맞이하여 '도로안전(Road Safety)'의 문제를 정부가 심각한 공중보건의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즉 '도로안전'의 문제는 예측 가능하며, 예방이 가능한 것이므로 정부가 관심을 갖고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주창하였다.

세계보건기구의 이러한 강조는 교통사고가 주요 사망원인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다시 한번 정부와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의미를 갖는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안전'이라고 하면 '응급의료'나 '재난재해' 등을 떠올릴 뿐, 모든 생활의 공간에서 '안전'을 증진하기 위한 사회정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회전문 사고가 잇따랐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정부의 어떠한 부처에서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떤 부처의 책임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이러한 문제를 '심각한 공중보건의 문제'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고 보건학적 방법론을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보건복지부가 '나몰라라' 할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보건복지부는 지금이라도 '응급의료'나 '소방'의 차원을 넘어 생활의 모든 현장에서 '건강'과 함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 보건의 날을 맞이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안전' 문제를 잠시 접어두고서라도 최근에 있었던 몇가지 소식들을 접한다면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2일 뇌종양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동생을 보살피며 사실상 한 가정의 생활을 책임지고 꾸려가던 한 여중생이 생활고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한 최근 한 연구소의 조사 결과에서는 저소득층의 암 발생률이 고소득층에 비해 높으며 뿐만 아니라 관절염, 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에서도 저소득층의 발생률이 높아 빈부간의 건강상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보고하였다(3월 31일자 연합뉴스 '소득수준 따라 건강도 차이나').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건강의 빈부격차가 여전할 뿐만 아니라 점점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심지어 건강상 빈부격차마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문제를 목도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 정책은 아주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아무리 가난하여 '의료급여' 수급자가 되어도 의료이용을 할 때 비급여서비스 때문에 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수급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건강보험료를 연체하여 건강보험 급여도 받지 못하는 사실상 사각지대에 놓여진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이 사회에 함께 살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보건복지부는 오히려 '보건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의료시장 개방'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 29일 복지부 장관이 한 라디오와 인터뷰를 한 내용에서 '우리나라 의료수준은 세계적'이라면서 '의료개방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하고 '우리나라 의료진이 다른 나라에 가서 진료'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제특구에 외국자본과 우리자본이 합동으로 세계최고의 병원을 만들어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것까지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료가 세계시장으로 나가고 세계에 의료를 개방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개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보건복지부는 경제부처의 '동북아 중심'이라는 구상에 덩달아 국내의 현실에는 눈을 돌린채 '의료시장 개방'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보건복지부의 태도는 건강의 날을 맞이한 복지부 장관의 기념사에서도 잘 드러나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우선 이번 '건강의 날'이 '도로 안전'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언급은 단 한마디도 없다. 최소한 '도로안전'의 문제에 대하여 보건복지부가 검토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겠다는 의지표명조차 없었다.

그런데 장관의 기념사에서는 의료급여 수급자의 확대, 의료급여 수급자의 의료비 부담 경감, 의료급여 1,2종 구분 폐지, 부분급여 도입, 건강보험료 체납자 보험료 탕감 등 저소득층의 건강권을 위한 실질적인 혜택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장관의 기념사에서 '취약계층도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하고 지역간 의료인력의 불균형을 완화하겠다'는 선언적인 말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보건복지부가 지금 가난한 이들이 생활고로 자살을 하고 건강상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고 본다. 복지부는 지금 '의료시장 개방'이 최대의 관심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소득층 건강권 보장'과 '의료시장 개방'은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복지부는 한쪽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보건의 날'에 지켜본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보건의 날,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자기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칼럼은 본 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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