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대한민국이라는 시스템의 장점이자 단점은, 사회 전분야에 걸친 시스템의 발전이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급격한 해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변증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사회질서의 변화란 부조리로 인한 내부갈등의 결과물이지만,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는 사회구성원간의 다양한 의사소통이 발달하고, 갈등 요인들이 실시간으로 반영됨으로서, 과거와 같은 혁명의 방식은 퇴조하고 예측가능하고 점진적인 변화가 주류가 되고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 정치 시스템의 변화가 민중의 힘에의해 변화한 나라( 유렵의 시민혁명 )에 비해, 외세에 의해 변화한 나라들은(한일합방에 의한 왕정폐지) 정치질서의 발달이 더디고, 정치 사회적 합의절차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면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OECD 국가로서 교역순위 10위권의 글로벌화 된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후진적인 시스템이 국가 운영의 기본틀이 되고 있는것은 상당한 문제가 되고있다.
사회는 세대,지역.직업에따라 갈기갈기 분열되고,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국가의 근간을 뒤집을 수 있는 정책들이 난무한다, 때문에 국가의 정체성은 100년 대계는 커녕 5년 대계도 담보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점은 의료에 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모 국립대학 출신의 한두명의 강단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국립대학에서 보건행정을 가르치던 몇 몇 교수들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의료의 전면에 나서서, 지배 엘리트들에게 공공의료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저 오래된 학문은 강단학문과 강호학문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철학이 그러하고 법학이 그러하고 의학 역시 그러하다, 철학이나 법학에서 강단학자들은 관념론에 빠진 비현실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이나 법학의 기본명제인 "과학 발전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비록 그들의 사유가 비실용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존재자체가 현실세계에 "화두"를 던짐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의료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의료는 강단의료와 달리, 실제 의사들이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공간이 칼날처럼 좁은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자들은, "사익"과 "공익"의 무게를 다는 천칭에서 중심이 조금만 좌측으로 치우면 "사회사업가"가 되고, 중심이 조금만 우측으로 치우치면 "도둑놈"이 된다.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군에게는 천칭의 기울기가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지 않게하는 본능적 중심감각을 가져야할 숙명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의사의 무게중심이 좌측에 서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저울이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 더 이상 저울의 기능을 할 수가 없음에도 그렇게 강요한다, 때문에 사회는 의사들이란 모두 아프리카에서 청진기를 걸고 땀을 흘리며 봉사하거나, 네팔의 히말라야 봉우리에서 평생을 봉사하는 것을 천직으로 삼아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아무도, 도심의 빌딩에서, 깔끔한 인테리어에 깨끗한 와이셔츠를 다려입은 의사의 3000 원짜리 진료를 봉사라고 말하지 많고, 아무도 5시간씩 한자리에 서서 큰 숨한번 제대로 못쉬고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수술을 감행하는 대학병원의 의사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 사회적 측면에서 의료인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나마 사회의 이해부족에서 비롯한 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일부 강단학자들이 내부에서 내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심각하고 우려스럽다, 그들은 현실의료를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며, 아울러 그들은 현실의료에서 의료소비자도 그렇다고 의료제공자도 아닌 사람들이다.
의료의 수준은 곧 그 사회집단의 생명논리이다,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 그 사회의 수명이 떨어지는 것이고, 의료가 조악해지면 가장 타격을 입는것은 바로 약자들이다 . 사회적 강자들은 "가진 돈"으로 외국으로 떠나거나 특구병원에서 초호화 일반진료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약자들은 점점 떨어지는 의료 수준에 직접적이고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제도가 만들어 낸 사회적 약자에대한 최악의 테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강단의학을 전공한 일부 정책 엘리트들은 이것을 오도하고, 기만한다, 그들의 필생의 과업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기득권"의 파괴이며, 의료의 질을 희생하더라도 의료를 "공공의 틀" "통제의 틀"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며, 관료들의 "영역확장"에 대한 불가사리같은 탐욕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의료는 공공이라는 이름의 통제로 들어가느냐, 자본을 앞세운 자본가의 노예로 봉속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립대학 교수신분에 정권의 요직이라는 보호막아래에서 강단의료를 전공한 일부 엘리트들과, 혹은 이미 내부적으로 관료화되고 특정 집단의 이익단체가 되어버린 기존 의사협회의 조직체계에 의해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이 입안되고 야합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의사 사회도 일선 의료를 담당하는 민초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해졌다.
국가의 통제로에서도, 자본의 그림자로부터도 벗어 날 수 있는 일선의료인 중심의 새로운 조직체의 탄생을 기대한다..
변증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사회질서의 변화란 부조리로 인한 내부갈등의 결과물이지만,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는 사회구성원간의 다양한 의사소통이 발달하고, 갈등 요인들이 실시간으로 반영됨으로서, 과거와 같은 혁명의 방식은 퇴조하고 예측가능하고 점진적인 변화가 주류가 되고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역사적으로 정치 시스템의 변화가 민중의 힘에의해 변화한 나라( 유렵의 시민혁명 )에 비해, 외세에 의해 변화한 나라들은(한일합방에 의한 왕정폐지) 정치질서의 발달이 더디고, 정치 사회적 합의절차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면이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OECD 국가로서 교역순위 10위권의 글로벌화 된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후진적인 시스템이 국가 운영의 기본틀이 되고 있는것은 상당한 문제가 되고있다.
사회는 세대,지역.직업에따라 갈기갈기 분열되고,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국가의 근간을 뒤집을 수 있는 정책들이 난무한다, 때문에 국가의 정체성은 100년 대계는 커녕 5년 대계도 담보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이점은 의료에 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모 국립대학 출신의 한두명의 강단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국립대학에서 보건행정을 가르치던 몇 몇 교수들이 어느날 갑자기 현실의료의 전면에 나서서, 지배 엘리트들에게 공공의료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있다.
대저 오래된 학문은 강단학문과 강호학문으로 나뉘게 마련이다.
철학이 그러하고 법학이 그러하고 의학 역시 그러하다, 철학이나 법학에서 강단학자들은 관념론에 빠진 비현실주의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이나 법학의 기본명제인 "과학 발전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비록 그들의 사유가 비실용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존재자체가 현실세계에 "화두"를 던짐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의료역시 마찬가지다.
현실의료는 강단의료와 달리, 실제 의사들이 발을 디디고 설 수 있는 공간이 칼날처럼 좁은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자들은, "사익"과 "공익"의 무게를 다는 천칭에서 중심이 조금만 좌측으로 치우면 "사회사업가"가 되고, 중심이 조금만 우측으로 치우치면 "도둑놈"이 된다.
때문에 의사라는 직업군에게는 천칭의 기울기가 어느쪽으로도 기울어지지지 않게하는 본능적 중심감각을 가져야할 숙명이 주어져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의사의 무게중심이 좌측에 서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면 저울이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 더 이상 저울의 기능을 할 수가 없음에도 그렇게 강요한다, 때문에 사회는 의사들이란 모두 아프리카에서 청진기를 걸고 땀을 흘리며 봉사하거나, 네팔의 히말라야 봉우리에서 평생을 봉사하는 것을 천직으로 삼아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아무도, 도심의 빌딩에서, 깔끔한 인테리어에 깨끗한 와이셔츠를 다려입은 의사의 3000 원짜리 진료를 봉사라고 말하지 많고, 아무도 5시간씩 한자리에 서서 큰 숨한번 제대로 못쉬고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수술을 감행하는 대학병원의 의사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 사회적 측면에서 의료인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나마 사회의 이해부족에서 비롯한 일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일부 강단학자들이 내부에서 내는 목소리는 그야말로 심각하고 우려스럽다, 그들은 현실의료를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며, 아울러 그들은 현실의료에서 의료소비자도 그렇다고 의료제공자도 아닌 사람들이다.
의료의 수준은 곧 그 사회집단의 생명논리이다,
의료의 질이 떨어지면 그 사회의 수명이 떨어지는 것이고, 의료가 조악해지면 가장 타격을 입는것은 바로 약자들이다 . 사회적 강자들은 "가진 돈"으로 외국으로 떠나거나 특구병원에서 초호화 일반진료를 받으면 그만이지만, 약자들은 점점 떨어지는 의료 수준에 직접적이고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된다.
이것은 그야말로 제도가 만들어 낸 사회적 약자에대한 최악의 테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강단의학을 전공한 일부 정책 엘리트들은 이것을 오도하고, 기만한다, 그들의 필생의 과업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기득권"의 파괴이며, 의료의 질을 희생하더라도 의료를 "공공의 틀" "통제의 틀"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며, 관료들의 "영역확장"에 대한 불가사리같은 탐욕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의료는 공공이라는 이름의 통제로 들어가느냐, 자본을 앞세운 자본가의 노예로 봉속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립대학 교수신분에 정권의 요직이라는 보호막아래에서 강단의료를 전공한 일부 엘리트들과, 혹은 이미 내부적으로 관료화되고 특정 집단의 이익단체가 되어버린 기존 의사협회의 조직체계에 의해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이 입안되고 야합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 의사 사회도 일선 의료를 담당하는 민초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새로운 조직이 필요해졌다.
국가의 통제로에서도, 자본의 그림자로부터도 벗어 날 수 있는 일선의료인 중심의 새로운 조직체의 탄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