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부자와 빈자" 사실 자신이 부자건 아니건, 혹은 빈자건 아니건 이렇게 극단적으로 두 부류로 나눠버리면, 어지간해서는 자신이 이 두 부류에 분류됨을 태연하게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두부토막을 썬것 같은 부적당한 용어보다는 일단 부자와 부자가 되려는자로 구분해 놓고 이야기를 진행 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와 제 3세계를 사로잡았던 종속이론의 대표적인 이론가 로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러분은 땅바닥을 기고 있지만, 이왕 기는 거 열심히 기라. 기는 데 익숙해지면 점차 속도가 붙을 거고, 속도가 빨라지면, 저기 비행기 보이지?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여러분도 땅바닥에서 둥실 떠올라 이륙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우리 선진국의 대열에 함께 서서, 그동안 참고 참으며 부풀린 빵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로스토의 ‘이륙이론’이라고 부른다.
물론 여기서 몇몇 솔직한 단어들을 경제학 용어들로 바꾸면, 생각처럼 자존심 상하는 얘기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발전된(developed) 나라와 발전중인(developing) 나라, 그리고 혹시 있다면 아직 발전하지 않은 나라만이 있을 뿐이다.
또다른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 앙드레 군더 프랑크는 세상에는 발전된/발전될 나라만이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면서, 제3세계에 대한 선진국, 아니 제국주의 나라들의 투자는 발전을 가져온 게 아니라 반대로 ‘저발전의 발전’만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발전(underdevelopment)이란 아직 발전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발전할 어떤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고, 발전과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저발전의 발전이란 발전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 땅바닥을 아무리 빨리 긴들, 혹은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빨리 달린들 그게 비행기처럼 ‘뜰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초부터 난데없이 한물간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이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이렇다.
사실 남미 경제학자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국가간의 교역이나, 무역, 혹은 자본의 이동에서만 Core / Periphery (중심부/주변부) 의 착취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한 국가내에서도 developed / developing (발전된 / 발전 될, 혹은 발전 중인) 의 두개의 계층이 존재한다.
이것은 부자와 빈자라는 대립적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富) 혹은 자본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부(富)란 자기발전적이고, 자기팽창적이며, 자기 방어적이며, 또한 부는 구심력을 발휘해서 주변의 재화를 빨아들이고, 불가사리처럼 팽창한다.
이것은 부자의 투자습관이나, 부자만의 특별한 투자논리가 존재함 때문이 아니라, 부라는 것의 자기방어적이면서 자기발전적인 속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말해 부자는 ( 여기서 절대적 기준은 묻지말자 ) 부자만의 투자논리나 기발한 투자 기법, 혹은 부자만이 보는 특별한 세상의 프리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富) 자체가 자신의 상대적 부의 가치가 커지면 커지도록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 발전적인 방향으로 주인(부자)을 이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부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이미 구축된 부 (developed)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자가 가장 민감한 것은 정부의 정책, 금리다.
즉 자신의 자산이 정부의 정첵으로 훼손되거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금리의 변동으로 인해 자산가치가 훼손되거나 혹은 증가 될 가능성을 먼저 가늠한다.
문제를 지극히 단순화해서 사례를 들면, 부자는 정부의 정책이 실물자산에 대한 규제로 나아가면 자산을 채권시장으로 이동하고, 금리인하의 정점국면에서 채권수익률이 더이상의 이익을 담보 할 수 없으면 다시 주식시장으로, 그리고 주식시장이 일정부분 호황을 보이는 국면에서는 (금리 인상국면), 다시 금리시장 으로 이동한다.
때문에 주식시장에 이 원칙을 적용한다면, 금리 인하의 막바지 국면에서는 (주가의 바닥국면) 뭉치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주식시장이 활황기에 접어들면(금리가 감내할 만한 수준으로 다시 상승하면) 오히려 뭉치돈이 빠져나간다.
다시 말하면 부자란 최고의 수익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항상 자기방어적으로 움직이지만, 반대로 부자가 되려는 이들은 금리인하의 막바지 국면에 채권으로 (상황이 악화되면 안전자산으로), 금리인상 국면에는 주식으로 (상황이 호전되면 위험자산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괴리가 근본적으로 부자와 부자가 아닌자의 간극을 지속적으로 넓히게 되고, 이런 측면에서 재테크에서도 "이륙이론"처럼 극도로 시니컬한 논리가 개입될 여지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재테크, 소위 "부자되기"의 관점에서 이것을 살펴보면 철학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시각에서 생각하면, 아직 우리는 지켜야 할 자산보다는 늘려야 할 부분이 많고,(기대 수익률에 대한 절망), 그렇다고 반대측의 입장에서서 접근한다면 이륙을 하려는 자동차 처럼 거꾸로 가기가 쉽상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눈으로 보는 것도, 그렇다고 빈자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도 난망이라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시장을 바라보아야 할까?
그것은 바로 부자가 행동 양식을 이해하되 부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부자처럼 사고하되 부자와는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대개의 경우 이러한 철학적 명제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실체적인 이익이 없다 , 그렇다면 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실체적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가? 혹은 부자의 양식을 이해하고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은 실재로 가능한 것일까?
먼저 그답부터 하자면 " 그것은 가능하다"
이제 이란에서 우리가 부자의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부자처럼 생각하는 방법론을 같이 찾아나서는 탐험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화두를 먼저 던진다.
" 그래 가능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두부토막을 썬것 같은 부적당한 용어보다는 일단 부자와 부자가 되려는자로 구분해 놓고 이야기를 진행 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와 제 3세계를 사로잡았던 종속이론의 대표적인 이론가 로스토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여러분은 땅바닥을 기고 있지만, 이왕 기는 거 열심히 기라. 기는 데 익숙해지면 점차 속도가 붙을 거고, 속도가 빨라지면, 저기 비행기 보이지? 비행기가 이륙하듯이 여러분도 땅바닥에서 둥실 떠올라 이륙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 여러분은 우리 선진국의 대열에 함께 서서, 그동안 참고 참으며 부풀린 빵을 나누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로스토의 ‘이륙이론’이라고 부른다.
물론 여기서 몇몇 솔직한 단어들을 경제학 용어들로 바꾸면, 생각처럼 자존심 상하는 얘기로 들리진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발전된(developed) 나라와 발전중인(developing) 나라, 그리고 혹시 있다면 아직 발전하지 않은 나라만이 있을 뿐이다.
또다른 종속이론의 대표적 이론가 앙드레 군더 프랑크는 세상에는 발전된/발전될 나라만이 있다는 생각을 반박하면서, 제3세계에 대한 선진국, 아니 제국주의 나라들의 투자는 발전을 가져온 게 아니라 반대로 ‘저발전의 발전’만을 가져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저발전(underdevelopment)이란 아직 발전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발전할 어떤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고, 발전과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저발전의 발전이란 발전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쉽게 말해 땅바닥을 아무리 빨리 긴들, 혹은 자동차를 타고 아무리 빨리 달린들 그게 비행기처럼 ‘뜰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정초부터 난데없이 한물간 라틴 아메리카의 종속이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이렇다.
사실 남미 경제학자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국가간의 교역이나, 무역, 혹은 자본의 이동에서만 Core / Periphery (중심부/주변부) 의 착취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한 국가내에서도 developed / developing (발전된 / 발전 될, 혹은 발전 중인) 의 두개의 계층이 존재한다.
이것은 부자와 빈자라는 대립적 주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부(富) 혹은 자본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부(富)란 자기발전적이고, 자기팽창적이며, 자기 방어적이며, 또한 부는 구심력을 발휘해서 주변의 재화를 빨아들이고, 불가사리처럼 팽창한다.
이것은 부자의 투자습관이나, 부자만의 특별한 투자논리가 존재함 때문이 아니라, 부라는 것의 자기방어적이면서 자기발전적인 속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말해 부자는 ( 여기서 절대적 기준은 묻지말자 ) 부자만의 투자논리나 기발한 투자 기법, 혹은 부자만이 보는 특별한 세상의 프리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富) 자체가 자신의 상대적 부의 가치가 커지면 커지도록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 발전적인 방향으로 주인(부자)을 이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부자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이미 구축된 부 (developed)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자가 가장 민감한 것은 정부의 정책, 금리다.
즉 자신의 자산이 정부의 정첵으로 훼손되거나 수혜를 입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고, 금리의 변동으로 인해 자산가치가 훼손되거나 혹은 증가 될 가능성을 먼저 가늠한다.
문제를 지극히 단순화해서 사례를 들면, 부자는 정부의 정책이 실물자산에 대한 규제로 나아가면 자산을 채권시장으로 이동하고, 금리인하의 정점국면에서 채권수익률이 더이상의 이익을 담보 할 수 없으면 다시 주식시장으로, 그리고 주식시장이 일정부분 호황을 보이는 국면에서는 (금리 인상국면), 다시 금리시장 으로 이동한다.
때문에 주식시장에 이 원칙을 적용한다면, 금리 인하의 막바지 국면에서는 (주가의 바닥국면) 뭉치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고, 주식시장이 활황기에 접어들면(금리가 감내할 만한 수준으로 다시 상승하면) 오히려 뭉치돈이 빠져나간다.
다시 말하면 부자란 최고의 수익률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수익률만 보장된다면 항상 자기방어적으로 움직이지만, 반대로 부자가 되려는 이들은 금리인하의 막바지 국면에 채권으로 (상황이 악화되면 안전자산으로), 금리인상 국면에는 주식으로 (상황이 호전되면 위험자산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괴리가 근본적으로 부자와 부자가 아닌자의 간극을 지속적으로 넓히게 되고, 이런 측면에서 재테크에서도 "이륙이론"처럼 극도로 시니컬한 논리가 개입될 여지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재테크, 소위 "부자되기"의 관점에서 이것을 살펴보면 철학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먼저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는 시각에서 생각하면, 아직 우리는 지켜야 할 자산보다는 늘려야 할 부분이 많고,(기대 수익률에 대한 절망), 그렇다고 반대측의 입장에서서 접근한다면 이륙을 하려는 자동차 처럼 거꾸로 가기가 쉽상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눈으로 보는 것도, 그렇다고 빈자의 논리로 바라보는 것도 난망이라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시장을 바라보아야 할까?
그것은 바로 부자가 행동 양식을 이해하되 부자처럼 행동하지 않고, 부자처럼 사고하되 부자와는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다만 대개의 경우 이러한 철학적 명제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것으로 끝나서는 실체적인 이익이 없다 , 그렇다면 부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실체적 방법이 과연 존재하는가? 혹은 부자의 양식을 이해하고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은 실재로 가능한 것일까?
먼저 그답부터 하자면 " 그것은 가능하다"
이제 이란에서 우리가 부자의 행동양식을 이해하고 부자처럼 생각하는 방법론을 같이 찾아나서는 탐험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화두를 먼저 던진다.
" 그래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