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모병원 직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김영기
발행날짜: 2007-08-02 12:37:50
  • 성모병원 원무과 김영기 수석

우리 아버지 일어나신다... 우리 아버지 일어나신다...
병마를 물리치고 우리 아버지 꼭 일어나신다.

지금은 지워졌지만 내가 너무나도 또렷이 기억하는 우리병원 화장실 낙서였다. 중병과 싸우는 아버지를 밤 새워 간호하다가 차마 아버지 앞에서는 흘리지 못한 눈물을 화장실에서 몰래 닦으며 올리는 기도의 간절함이 단 한 줄의 낙서에서 절절히 묻어난다.

병원이란 곳은 참 독특한 공간이다. 누군가는 “응애~”하는 우렁찬 목소리로 자신의 탄생을 세상에 알리며 생을 시작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병마와 싸우고 목숨을 지키려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이 세상과의 아쉬운 이별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특이한 곳에서 근무하는 터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많은 사연을 접한다. 특히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온 가족이 피 말리는 긴장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은 언제나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이 젖게 한다.

인간 생명의 존엄함은 무엇과도 비교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그 존재 자체로 숭고하다는 것을 많은 종교의 경전과 인류의 스승들은 수도 없이 강조해왔다. 그러므로 병원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에 대하여 최선을 다할 의무를 가져야 된다.

그러나 현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도덕적, 윤리적 가치기준 뿐 아니라 진료에 따라 발생되는 진료비의 부담에 대한 문제도 이에 못지않다.

환자라면 누구나 적은 진료비로 최고의 치료를 받고 싶고 또 그럴 권리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최근 우리병원에서 치료받고 나간 백혈병 환자들이 진료비가 부당하게 청구되었다며 집단으로 심사평가원에 민원을 접수하였고, 우리병원은 이미 치료를 위해 사용된 약제비와 재료대를 고스란히 환불해줘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그 금액은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우리병원은 자선진료를 토대로 성장한 병원으로서 이익창출보다는 생명존중을 위해 최선을 다해 왔는데, 부도덕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러한 의료환경에서 과연 최선의 진료가 가능할까? 그런 의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를 일반 국민들이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문제이지만 보건복지부의 발표와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사태의 표면적인 모습을 보면 마치 병원이 수십억 원의 돈을 착복한 것으로 오인되고 있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 의료정책의 실패를 환자와 병원에 떠맡겨온 정부의 문제이다. 즉 재정부족이라는 건강보험공단의 고질적인 문제는 감춰둔 채 국가기관에게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병원에 그 책임을 전가하며, 환자들이여 부도덕한 병원을 국민과 함께 단죄해야 된다고 선동하여 병원에게 방어적 진료를 강요하는 것이다.

병원은 실거래가 제도에 의해 약제비와 재료비를 실제 구입한 가격으로 청구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이익이 없다.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데 굳이 비도덕적 행위를 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지금도 환자의 생명유지와 직결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병원이 재정적 손실을 이유로 약재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야말로 지탄 받아야 될 의료기관이 아닐까?

한 아이가 풍선을 놓쳐서 그것을 잡겠다고 자동차가 쌩쌩 지나는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가고 있었다. 그 것을 본 행인이 지체 없이 뛰어가 그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더니 잠시 후 경찰이 다가와 무단횡단을 했다며 과태료를 부과한다. 어쩔 수 없이는 상황 이었다고 항변하지만 경찰은 법대로 집행한 것이니 무슨 목적에서 무단횡단을 한 것이든 벌금은 내야 한다고 한다. 만약 다음에 또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행인은 지난번처럼 즉각적으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기희생을 할 수 있을까?

성모병원은 국내 3차 의료기관 중 의료급여 환자 비율이 가장 높고, 의료기관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1인실은 가장 적으며, 심지어 무균실마저도 98년 IMF를 이유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일반 병실료로 전환하며 환자들을 진료비 경감을 도와 왔다.

이렇게 희생하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혈모세포이식센터를 세계적 기관으로 키웠으나 이제는 고사직전이다. 이렇게 정부 당국의 불합리한 행정 처리와 무관심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한 책임을 병원에만 전가시킨다면 국내 의료의 질 저하는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이미 예고된 의료시장 개방과 FTA의 후폭풍으로 인해 국내 의료계가 힘을 합쳐 의료 서비스의 향상과 장점 개발을 위해 노력해도 아쉬운 시점에서, 시대에 뒤쳐진 의료제도와 무책임한 행정으로 인해 국내 의료계가 이와 같이 계속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앞으로 우리 병원들에서는 국민의 원하는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려워진다.

우리 국민 어느 누구가 진료의 수준이 과거로 퇴보하는 것을 환영하겠는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내 가족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된 방법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가 정해놓은 제도의 틀 앞에서 생명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변함없이 ‘생명존중’ 이념을 실천하는 이 병원의 직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불합리한 제도에 흔들려 그로 인해 피해 받는 환우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조속한 의료제도 개선으로 화장실에서 몰래 흐느껴 우는 그 보호자의 눈물과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어야 한다. 그의 간절한 기도에 사회가 응답해야 할 때이다.

* 본 칼럼은 메디칼타임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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