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법 제정 눈앞…의사특혜법 논란도 가열

장종원
발행날짜: 2009-12-30 06:49:53
  • 입증책임 제외-형사특례, 국회·의료계·시민단체 논쟁

의료사고 혹은 의료분쟁을 조정할 독립법안이 20여년만에 탄생을 눈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의료사고의 입증책임 전환문제 등 핵심쟁점이 법안에서 빠져, 제도의 실효성 여부 등의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번 법안을 바라보는 각계의 시각 역시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지난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28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뒤 단 하루만이다.

국회는 법안을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해, 늦어도 31일까지는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킨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법 제정 절차가 빠르게 진행된 데에는 복지부의 역할이 주요했다. 복지부는 내년도 관련예산을 반영한채 해외환자 유치사업을 위한 의료사고 관련법 제정이 절실하다며 여당의원들을 설득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의원조차 "복지부가 예산이 이미 반영됐다며 법안 통과를 강요했다"면서 "법안 논의과정에서 각 의원들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는 등 토론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토로하기도했다.

의료사고 입증책임 주체 조항 제외 '논란'

의료사고 관련법안이 20년만에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2007년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이라는 이름으로 의료사고관련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을 통과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상임위를 벗어나지 못한채 법안이 폐기되는 불운을 겪었다.

당시 법안과 이번에 통과된 법안을 비교해보면 의료사고 입증책임 조항의 유무가 핵심이다. 2007년 법안에는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을 의사에게 지우는 법안이었고 이번 법안은 의료사고 입증책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의료사고에 대한 입증책임 주체에 대한 논란은 지난 20년간 법 제정이 어려웠던 핵심 이유이기도 했다. 최근 법원에서는 의료사고의 입증책임을 의료인에게 지우는 판결이 늘고 있지만, 의료계는 법 조항에 명문화되는 데에는 결사 반대하고 있다.

결국 복지부와 국회는 이번 법안에서 의료사고 입증책임 주체를 명시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산하의 의료사고감정단을 통해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의료인의 주의의무 위반 등을 객관적으로 조사,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굳이 입증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의 논의는 실익이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의견이다.

또한 무과실 의료사고 국가배상제도와 의료사고 대불제도 등도 이번 법안에 새롭게 포함된 내용이다. 형사처벌 특례제도는 제도 시행 1년을 평가한 후 도입 여부를 판단한다는 부대조건이 담겼다.

국회 "의료사고 피해 구제 기대" vs "의사 특혜법 전락"

결국 입증책임 주체 조항이 빠진 이번 법안이 비록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국회에서조차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변웅전 위원장은 이번 법안에 대해 "의료사고 피해의 신속한 배상과 경제적 부담 완화,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 조성의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고 전체회의 통과를 높게 평가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역시 "20여년간 숱한 논란 속에 처리되지 못하다가 이번 상임위에서 법안이 의결됨으로써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일부 의원들은 이번 법안을 의사 특혜법으로 규정지었다.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의사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 내용이 법에 담기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의사에게 특혜를 주면서 오히려 현재보다 후퇴하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의 의료사고피해구제법 국민청원안을 소개했다.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형사특례 조항은 전세계적으로 입법사상 전례가 없는 조문"이라면서 "이러한 조항은 나쁜 전례가 될 수 있고 특정직업군을 편애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쉽다"고 지적했다.

특히 복지위 의원들은 법안이 통과돼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의료사고감정단 등의 위원 구성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위원 구성에 따라 의료사고 처리 방향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원 구성 문제는 법 통과 후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은 "위원을 누구로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명기하는 방법이 있다면 필요하다"면서 "의사 등 특정직업군에 치우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 전재희 장관은 "의료사고감정단 등의 위원들의 중립성이 중요하기에 의사뿐 아니라 법률가. 시민단체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면서 "위원을 공개해서 편향적인 분이 위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의료계, 긍정적 평가-시민단체 "국민염원 왜곡"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응도 엇갈린다. 의료계는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입장이고, 시민단체는 환자의 권리를 박탈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사협회 좌훈정 대변인은 "입증책임 전환 문제는 빠진 대신 형사처벌 특례, 무과실 국가보상, 대불제도 등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면서 "무과실 국가보상제도, 대불제도 등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조정을 거쳐야 소송이 가능한) 필요적 조정전치주의가 채택되지 않은데에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제도가 정착돼 조정을 통해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오면 소송보다는 조정을 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의료분쟁조정위원회 위원을 어떻게 운용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핵심쟁점인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 문제는 배제한 대신 형사처벌 특례 등을 인정한 이번 법안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이들은 관련 법안의 법제사법위원회 통과를 저지해 재논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경실련 김태현 사회정책국장은 "20여년간 핵심쟁점인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 문제는 제외하고, 조정원을 설치한다고 하면 얼마나 의료사고에 대한 실체적 규명이 이뤄질지 의문"이라면서 "결국 현재 소비자원 등에서 하고 있는 중재제도 수준밖에 안된다"고 혹평했다.

경실련은 긴급 성명을 통해 "국회와 정부가 의료사고 피해 구제를 위한 20년의 국민 염원을 왜곡하고 의사특혜법으로 전락시켰다"면서 "대법원마저 의료사고로 인한 환자측의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추세임에도 법안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무과실 국가보상제도 등에 대해서도 의료사고 과실입증보다는 무과실 보상으로 도피하려는 경향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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