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1)

박경철
발행날짜: 2004-05-06 16:08:44
  •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 신세계클리닉 원장)

<고정칼럼 집필자 소개>
인터넷에서 필명'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 외과전문의는 국내 최고의 사이버애널리스트로 MBN 주식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고 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선불교의 수행 방법론중에서 최고의 정수중 하나는 "활구참선"이라 부르는 "화두참구"행이다.

이것은 소위 "참선수행"의 한 방법으로서, 마하리쉬나 선학,단학등의 신비주의자들 사이에서 흔히 행해지는 무념무상의 명상수행과는 반대로 , "화두"라고 불리는 한가지 주제를 들고, 그 주제의 본질을 참구하여, 질긴 인연의 고리에 매달린 무겁고도 질긴 의문을 혁파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수행방식이다.

또 한국과 중국과 일본등의 유교문화권에, 간화선이라고 부르는 이런 독특하고 비대중적인 수행방식이 불교의 주류로 자리잡게 된 것은, 당나라 이후 유교적 문화의 매너리즘에 사로잡힌 불교가 교학과 교리, 즉 경전과 이론에만 몰두하고, 정작 종교가 가야 할 '중생구제의 소임'을 방기하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당시 불교는 전부가 이론가가 되었을 뿐 , 아무도 실천 운동가가 되지는 못한 것이다)

이때,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불교의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잡는 운동이 (그동안 분에 넘치게 누렸던 속세적 호사와, 구호와 경전에만 사로잡혀 실천을 경시해 온 것들..) 일어 났는데, 이렇게 귀족 승려의 옷을 벗어 던지고, 수행자로서의 무소유의 본분으로 돌아가자는 새로운 불교운동의 결과물을 바로 교종에 대립된 선종운동이라고 한다.

이 선종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는 이러하다.
부처의 말씀을 글로 옮겨적은 것은 경전이다.(그나마 바로 받아적은 것도 아니고 붓다 사후 상당기간이 흐르고 정리되었으니, 이점에서는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경전에 적힌 말이 붓다의 뜻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다.(다시말해 붓다께서 법을 설하실 때, 그 법이 말로 설명되는 과정에서 이미 훼손되고, 그것이 다시 경전으로 글로 씌어질 때 다시 왜곡되며, 그것을 읽는 자는 기준에 따라 다시 그 뜻은 원래의 참뜻을 읽어 버린다)

그래서 불법의 이치를 깨치기 위해 . 맹목적으로 경전만을 익히고 외는것은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라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붓다의 행적(行)은 이미지이며, 말씀(言)은 도구이며, 뜻(意)은 가르칠 수는 있으되 전해지지는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때문에 선불교에서는 이렇게 외친다.

"인간사 어리석은 자들은 , 경전을 외고, 절을 하고 주문만 외면 성불 할 것이라고 믿고 있나니., 어리석은 중생들이여,,, 껍데기 (이미지)를 보지 말고,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고 (붓다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도구들),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조사 즉, 스승의 가르침도 가르침에만 얽매이면 결국은 내가 없이 타인의 사유에 포박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 인식론의 일대사 는 불자이건 아니건, 철학 그 자체로서도 여러가지 배울 점이 있다.

어쨌거나, 필자 따위가 난데없이 이 성스럽고 광대무변한 주제를 꺼내든 이유는 분명히 무슨 다른말을 하고 싶은 흑심이 있어 억지로 무엇인가를 견강부회하고 있다는 꼼수를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솔직히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우리가 잡고있는 '화두'에 관한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현재 우리가 부여잡고 있는 화두 '정치세력화'는 첫 단추가 잘못 되었다.

이유는 수행은 (굳이 비유하자면) 자기반성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는 통열한 자기반성이 없다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말하면 "아이잡아먹은 문둥이" 처럼 자기 반성의 눈물은 없이 '탓'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는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수년전부터, 이미 의약분업이 조만간 이루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국회에서 법안이 한시적으로 한차례 연기된 적도 있으며 (사실 이때만해도 의사출신이 복지장관 할 때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유예기간까지 주어졌음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이일이 이렇게 결론나기전에... 당신은 혹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심지어 좀 뜨끔하시겠지만.. 현 의협의 수장이던 분은 그때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 그럼에도 그 분이 지금 초강경 반대 투쟁을 이끌고 계시는 것은 한편의 코미디가 아닌가?) 라는 기본적 자기 반성이 제일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이문제에 대한 반성이 투철하였다면 다음으로는 자기비판이 필요하다.

먼저 지금 우리가 잡고 있는 화두는 적절한가?

정말 우리는 우리가 정치세력화라는 화두를 수행하기게 적당한 조직인가? 의사조직 8만이 설령 전원이 그리한다고 해도 정말 우리나라 대통령을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낙선 시킬 수 있는 힘이있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나는 그리고 당신은...이땅의 의사들은...의사 8만에 가족 4명= 32만에 병원 직원 20만에 그가족 4명=80만 합해서 110만표에 의사 일인당 진료실에서 100표 확보 운동으로 800만표.. 그래서 900만표를 동원 할 수있다는 돼지가족 계산법을 믿고 따를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백발을 양보해서 만약 그 같은 논리가 참이라치자.
그렇다면.. 전국 택시기사당 손님 100명 일동으로. 수백만표에,,,, 전국 화물차노조와 그 피붙이 일동 수십만표, 거기에다 전국 약사와 임직원및 떨거지 일동이 또 수백만이요...전교조 교사와 그 가문 일동이 또 수백만이고, 전국 군인및 그 일가족은 자그마치 수천만이며, 전국 짱깨연합에 전국 이발사, 미용사와 그 남친 여친일동까지 모두 더하면 대한민국 인구의 1000배는 족히 되는 계산법인데..

그렇다면 아무리 크게 잡아도 우리나라 대통령은 직능단체 대표 몇 십명만 꽉 잡으면 (그럭저럭, 각 단체장 하나당 장차관 국장, 비례대표 의원. 산하단체장, 하나씩 주기로하고...아니다,, 단체 하나당 서너자리씩 주어도 된다..) 힘들게 선거유세나, 방송토론도 할 필요 없이 압도적으로 대권을 잡는다.........?

만약 누군가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이 바로 자동차 연료절감기 20% 짜리 하나, 자동차 완전 연소기 연료절감 30%, 합성오일 20%, 첨가제 10% 등의 연료 저감기를 서너개만 달면, 자동차가 물로 달린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이 바로 현 지도부의 역사인식이다.........................

두번째 비판은 아직 우리사회에 눈꼽만치 남아있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이나, 부러움을 제외하고, 의사가 환자에게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자체가 얼마나 자아도취적 발상인지를 자각하는데서 시작된다. (과거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최소한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다시말해, 정치세력화라는 화두는 소위 집행부에서 자신 스스로 그들의 근기에 맞게, 민노당, 우리당, 한나라당을 찾아다니며, 의사협회라는 단체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몫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이지,, 기름지고 번들거리는 얼굴로 밀실이나, 호텔 연회장에 앉아, 260억의 예산을 물쓰듯 써대면서 회원 대중에게 요구할 화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집행부는 왜 이리 질기게도 이 실현불가능한 화두를 붙들고 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국가이던, 이익단체이건, 하도 못해 동기회, 향우회라 하더라도, 정통성이 결여된 리더는 관심을 외부로 돌리는 일에 충실 할 수 밖에 없다.

다시말해, 지난 투쟁의 시기에 대한민국의사들이 유사이래 처음으로 백척간두에서 진일보 할 수 있었던 (승패를 떠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를, 비겁한 발로 스스로 차버리면서 전체 회원대중의 뜨거운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뒤통수를 때린 주저앉힌 전력이 있는 리더가 자신의 비열하고 저급한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해 선택 할 수있는 유일한 수단은 분쟁, 혹은 투쟁 뿐 이라는 것이다.

즉, 현 집행부가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이것은 폭력배 출신 승려가, '공소시효'라는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찌 그 수행이 도를 깨치고, 이치를 득 하는 진정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이 정통성없는 집행부의 올인 전략에 따라 조종당하고, 투쟁기금을 내라면 투쟁기금을 내고, 눈비 내리는 굳은 날에 애꿋은 어린자식 손목까지 부여잡고, 여의도로 모이라면 모이고, 해산하라면 해산하는 동안... 사회는 우리를 조리돌림하고, 시민단체는 조롱하며, 언론은 배척하고 , 노조는 야지하는데..우리는 언제까지 스스로의 숨통을 조르는 자살행위를 계속해야만 하는것인가?

정말 그들은 아직도 정치세력화라는 ,.허구적 화두를 붙들고 의미없는 씨름을 계속할 것인가? 지금 이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화두는 "우리끼리 거꾸로" 가 아니라 "다 함께 국민속으로.. " 가 아닌가?

필자는 정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도부의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왜 세상이라는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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