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추하다

메디게이트뉴스
발행날짜: 2004-05-31 06:12:45
  •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 신세계클리닉 원장)

<고정칼럼 집필자 소개>
인터넷에서 필명'시골의사'로 통하는 박경철 외과전문의는 국내 최고의 사이버애널리스트로 MBN 주식토크쇼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식시장에 대한 남다른 철학과 날카로운 분석력을 인정받고 있다.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너를 구분하는 것은 곳 나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곧 나에대한 집착이 바로 너를 나와 구분하게 하는 것이며, 없는것은 있는것에 대한 집착에서 , 추운것은 곧 더운것에 대한 인식에서 생기는 것이며. 이렇게 나에 대해 타자를 구분하는 마음을 가리켜 분별심( 分別心) 이라 부르며, 분별심을 불르 일으키는 것을 가리켜 상(相)을 짓는다 라고 표현한다.

이 상에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어, 불가적 사유에서는 이 네가지 상이 곧 세상을 인식하는 근본 인식체계라는데까지 확대되면서, 이것은 결국 "마음이 곧 부처"라는 인식론적 사유의 극한으로 밀어올려진다.

그에 반해. 유가에서는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유가의 공(空)은 불가의 공(空)과 유사하지만, 유가의 상(象)은 불가의 상(相)과 다르다, 즉 유가에서는 자연은, 혹은 사람을 포함한 생물과 무생물 조차도, 그것을 구성하는 기(氣)라 불리는 원소의 화합물이며, 이 기라불리는 극미의 원소는 홀로 있으면 작용하지 아니하지만 (空), 뭉치면 모습을 이루며 (象). 정신마져도 고도로 정제된 기의 화합물이라고 하여, 주자학 이후 양명학에서 유물론적 사유를 펼쳐나가는데 사상적 단초를 제공한다.

이때 말하는 유가의 상은 독특한 개념이다.

주역을 보면 괘(卦)를 보고 상(象)을 본다고 하여, 음양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64괘를 해석함으로서. 그것이 상징하는 형상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상은 불가의 상과는 다르다, 불가의 상은 곧 분별심에 기인한 대립적 형상이지만, 유가의 형상은 주어진 형상 그자체가 대립이라고 말한다.

즉, 불가에서는 스스로 사물을 인식하는 것, 나를 나라고 생각하는 것 그자체가 대립적 사유의 출발이므로, 때문에 현상과 화해하고 , 고(苦)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곧 "나( 我相)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유가에서는 존재하는 상(象) 그자체는 곧 음과 양의 조화이며, 양은 음에서 나오고, 존재는 존재하지 않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음양은 곧 태극), 태극은 곧 무극(無極)이라고 말한다.

즉 불가는 현세란 기본적으로 대립에서 출발한 허망성상이므로 화해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유가는 현세는 곧 음과 양의 조화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대립하지 아니함으로서 도(道)를 찾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유가와 불가의 이치가 같지만 같지 아니한 것이며, 이 둘의 가르침이 다 옳지만 함께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해당한다. ( 필자는 불자가 아니며 유가는 더더욱이 아니므로, 의도적으로 불가나 유가를 찬양하거나 폄훼하려는것이 아니므로 혹시 해당 종파에 속하시는 분들께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이렇게 본론을 이야기 하기전에 사족같은 서설을 덧대는것은 필자의 고약한 글쓰기 습관이지만.하여간 이미 이쯤에서 필자가 화해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것을 짐작하셨으리라 믿는다.

요즘 본의던 아니던 우리 의사세계의 화두는 정치다. 지나칠 정도로 정치과잉에 사로잡혀 너나 없이 정치를 이야기하고, 모두가 정치에 냉소하며, 실체적 이해득실마져 전부 정치적으로 셈하려한다.

보건의료제도나, 체제나, 혹은 관료나 혹은 복지부 장관이 누가되고 안되고 간에 모든것은 증오심이며, 패배적이다 ( 물론 겉으로는 "함 죽자"라는 정서가 강해보이지만, 솔직이 그러면 "니가 나서라" 라는 말에 자신있게 그래 "내가 나서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이래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이 거의 매일 의사 사이트들을 도배하지만, " 그래서 어쩌자구?"라고 질문하면 " 그냥 마음에 안든다는 말이지.."라고 말 할 뿐이다)

돌이켜보면, 만약 우리에게 역사관이 있다면, (역사의 방향성이 옳고 그름은 아무도 알 수없다, 강물을 보고 남으로 흐르는지 북으로 흐르는지를 알면 그만 일 것을, 굳이 동으로 혹은 서로 흘러야 한다고 말 할 필요는 없다. 역사의 물줄기는 의사가 돌리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돌리는 것이다) 대립으로 해결 할 수 없음을 진작에 깨달았어야 한다.

재빠른 약사회를 비롯한 여타 보건의약단체는 말 할 것도 없고, 어느분의 말씀대로 의사협회보다 수천배 능력있고, 체계적이며 조직이 쎈 전경련마저도 쓰린속을 달래며, "탄핵정국으로 부터의 복귀를 축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데. 지난 총선에 몇몇 의사들에게 한나라당 후보 공천을 주겠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정치적인 의사협회 집행부는, 바로 그날 다가 올 지방선거에 정치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한다.

도대체 의협은 이익단체인가, 정당조직인가? 정말 대한의사협회인가? 대한의사 당인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으면 추하다. 정치인이 의료를 논하면 꼴뚜기가 되고, 의료인이 정치를 논하면 망둥이가 된다. 우리가 지난 몇년간 10%를 먼저 양보하고, 90 %를 지켰다면. 지금처럼 30%를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가 그 엄청난 양의 인적 물적 자원을, 어슬픈 정치투쟁보다 대중에게 의료전문가로 자리매김하는데 쏟았더라면,지금 우리의 입지는 어땠을까?

사스로 온세상이 덜썩 거릴 때, 호텔 연회장에서 개기름 흘리며 건배하기 보다, 그돈으로 대한민국 방방곡공에서 의협 로고가 찍힌 사스예방 사스크를 사서 돌렸더라면,,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퍼준 것의 반 이나마, 결식아동을 위한 밥값으로 내놓았더라면, 지금 우리의 입지는 어땠을까...

사실 필자는 의사라는 스탠스에서 거울을 보면 미래가 두렵다,

의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하루가 다르게 부담스럽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느끼는 제도적 압박이 하루가 다르며, 지금 내 아이들을 바라보면 10년 20년 후에 이 아이들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져간다.

그러나 지금 우리모두가 정작 두려운 것은 지금까지 잃어 버린 것보다 , 앞으로 잃어가야 할 것들인지 모른다.

정말 이제부터라도 지금만큼이라도 더 잃어 버리지 않고, 직업적 존엄성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정말 이대로 나만을 앞세운 투쟁으로, 그것이 나아지기는 고사하고, 지켜 질 수 있을까? 조용히 우리에게 반문해보자.

"정녕 나를 죽이고 조화를 이루면서, 나를 지키는 길은 없을까?..
바로 그것이 우리가 당면한 고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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