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과 의사의 역할

박경철
발행날짜: 2005-01-31 06:59:51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노자도덕경 제 41 장에는 "上士聞道, 勤而行之, 中士聞道, 若存若亡, 下士聞道, 大笑之, 不笑, 不足以爲道, 故建言有之, 明道若, 進道若退, 夷道若, 上德若谷, 太白若辱, 廣德若不足, 建德若偸, 質眞若, 大方無隅, 大器晩成, 大音希聲, 大象無形, 道隱無名, 夫唯道善貸且成."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말은 직역하면 대개 이렇습니다.

"뛰어난 사람은 도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하는데 중간 정도의 사람은 도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는 태도를 취하고 아주 정도가 낮은 사람은 도를 들으면 크게 웃고 만다. 그러니 그들에게 비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면 참다운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다시없이 큰 네모 난 것은 그 구석을 가지지 않는다. 참으로 위대한 인물은 보통 사람보다 그 성취가 늦고, 다시없이 큰 소리는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며, 더없이 큰 형체를 가진 것은 도리어 그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다..."

이글은 노자의 자연관을 담고 있습니다.

노자는 여기서 "최대의 네모난 것에는 모서리가 없고, 최대의 소리에는 소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제일 큰 소리(希)는 바로 가장 낮은 소리 들을 수 없는 소리이며 바로 무언(無言)의 말을 가리킵니다. 세상에는 큰 소리로 주장을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영원한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소리도 내지않고 자랑도 하지않고, 묵묵히 실행하고 있는 사람만이 가장 많은 사람의 귀를 움직이게 합니다.

"큰 소리는 소리가 없다"는 것처럼 "큰 모습은 형태가 없다"는 것처럼, 가장 커다란 형상은 우주이며 자연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규정된 형태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소리가 없는 소리가 가장 큰 소리이듯, 이 무형의 우주와 자연은 절대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노자는 도덕경 제 25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계 가운데 네가지 큰 것이 있는데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는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노자는 여기서 도(道)까지도 자연을 본받는다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지금으로부터 수천년전에 "하물며 인간의 작은 행위로 자연은 거스르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생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대저 사람의 도는 겸허하게 자연에 순종하고 자연에 일임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느새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자연을 부수고 무너뜨리고 변조하고 있습니다. 바다에는 방조제를 쌓아 갯벌을 파괴하고, 강에는 댐을 지어 물길을 막았으며, 산에는 터널을 뚫어 짐승들을 몰아냈습니다.

그대신 우리는 공장을 지을 땅과, 언제나 마실물과, 편히가는 지름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실 물, 공장을 지을 땅, 빨리가는 길을 얻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이 살기위해서 입니다. 비록 물길을 막아 물고기가 떠나가더라도 댐을 만드는 이유는 가뭄이 들어도 사람이 물걱정없이 살기위해서. 갯벌이 사라져도 방조제를 쌓아야 하는 것은 먹고사는데 필요한 곡식을 얻기위해서 이어야합니다.

즉 그것은 반드시 "살기위해"라는 명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단지 좀 더 편리하기 위해, 그저 약간의 불편을 피하기 위해, 혹은 좀 더 넓은 땅을 얻기위해 이런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이상, 인간을 위해 "공존의 범위안에서 불가피하게" 자연을 일부 희생하는 것은 필요악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독존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거스르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공존과 독존의 경계선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율'이라는 법명을 가진 한 비구니 스님이 90일을 넘게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생명은 타들어가는 한자루 촛불과 같아서 이제 마지막 남은 양초의 끝자락에서 심지가 아슬아슬한 생명의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일을 두고 세상사람들은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습니다.

스님에 대한 입에 담기 어려운 인신공격부터, "고작 도룡뇽 따위를 (산 하나를) 보존하기위해 수백억의 돈을 더 들여가며 공사를 지연해야하는가?" 라는 실용적인 비판과, 하나의 산이 담고있는 생명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 던지는 숭고함에 눈물짓는 분들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 하나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일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과 그 생명을 걱정하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의 염려입니다.

이제 스님의 단식은 자연인 한사람의 '생떼' 때문에 국가가 정책을 변경 할 수 없다는 원론의 문제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이제 이것은 지율 스님만의 한 사람만의 단식이 아니라, 지율스님의 단식을 "소리없는 큰 소리"로 듣기 시작한 이들의 공명과 울림들이 지율스님의 생각과 하나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단순히 "개인의 소신과 국가경영"의 충돌이라는 문제를 넘어 "(사람의) 생명을 걱정하는 이들과 그것을 외면하는 이들"의 문제로 바뀐 것 입니다.

저는 여기서 천성산을 개발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대해 활가왈부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 소양도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이 문제가 "생명"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며. 때문에 그것이 옳던 그르던 서서히 꺼져가는 소중한 생명을 모른체하는 것은 생명을 다루는 사람들의 도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인으로서 이 문제에 찬성을 하건 반대를 하건, 지율스님을 비난하건 지지하건 간에 그것은 자유이지만, 의사로서의 우리는 당연히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의 가치에 주목하고,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가 이럴때 "생명지킴이"로 나서지 않으면 누가 의사를 믿고 신뢰하겠습니까? , 저는 이 기회에 대한민국 의사들이 "환경과 생명" 이라는 대의를 앞세우고, 앞으로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것이 빨간색 머리띠를 두르고 여의도 둔치에 모여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훨씬 큰 울림이 되지 않겠습니까?

노자도 세상에서 가장 큰소리는 바로 소리가 없는 소리라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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