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한 의료행위 구별기준에 대한 소고

이경권
발행날짜: 2005-04-04 06:36:08
  • 이경권(변호사, 가톨릭의대 본과 2)

1. 들어가며
소위 ‘CT 판결’로 불리는 미확정 하급심 판결(서울행정법원 2004.12.21 선고 2004구합10175 업무정지처분 취소) 하나가 의료계의 해묵은 문제이자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문제 하나를 의료계에 던져 놓았다.

바로 양·한방의료를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의사가 침을 놓고 한의사가 주사를 놓는 것이 현행법상 가능한가?’라는 문장 하나로 대변될 수 있는 이 문제는 현행 의료법에서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를, 한의사는 한방의료와 한방보건지도를 담당하도록 규정하는 한편 비록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경우 무면허의료행위를 한 것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양방'(양방이라는 용어는 법률적으로 적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방이라는 용어와 짝을 이루어 많이 사용되고 있고,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편의상 상요하기로 한다)과 '한방'의 개념 및 그 구체적인 구별기준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자연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 의료장비의 획기적 발전, 한방의 과학화시도, 개원가의 생존전략차원에서 비롯된 영역파괴추세 등으로 인해 이 문제는 더욱 난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해당사자들인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대한한의사협회도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의료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에만 주목하여 반목·질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방을 근간으로 한 의료일원화 논의나 의료기사에 대한 지도권이나 한의학특별법 제정촉구와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수십 년 이상 독자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구축한 상황에서 갑자기 일원화를 주장하는 것이나, 법의 재·개정에만 매달리는 것은 서로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하에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양·한방의료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실정법의 검토
현행 법령에서는 양·한방의료행위를 구별은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정의규정 두고 있지는 않다. 먼저 의료법(같은 법 제2조 제2항 제1,3호)과 보건범죄에관한특별조치법(같은법 제 5조)에서 양방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를 구별하고는 있으나, 각 개념의 구체적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의약육성법에서는 “한의약이라 함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행위(이하 ”한방의료“라 한다)와 한약사(한약사)을 말한다.”라고 규정하여 좀 더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같은법 제2조 제1호)

즉 위 법은 의료행위의 근거가 된 학문이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이면 한방의료행위라고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의료행위의 학문적 근거가 전통적으로 계승된 한의학인지, 외국으로부터 전래된 외국학문인지를 양·한방 의료행위의 구별기준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판례의 태도
직접적으로 양방의료와 한방의료의 구별기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판례는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1) 대법원은 1989.12.26. 87도840, 의료법위반, 언론기본법위반 사건에서 “의사가 한방의서에서 혈액순환 등 소목의 성분분석과 분석된 성분의 인체나 병원에 대한 기능에 관하여는 연구결과를 얻은 바 없이, 이를 끓여 거기에다가 감맥대조탕과립을 섞어 이 사건 '코디아'를 예비 조제하여 두고 당뇨병 환자가 찾아오면 임상검사를 하고 나서 아울러 한방의 소위 팔상의학에 따라 환자체질을 진단하여 위 '코디아'를 투약하였다면 위 체질진단과 '코디아'의 조제 및 투약행위는 한방의료 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고……”라고 판결하였다.

서울고등법원도 1993.12.10. 93노3025,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위반사건에서 “위에서 본 광의의 의료행위를 서양에서 받아들인 양의학을 기초로 한 협의의 의료행위(양방의료행위)와 우리의 옛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행위로 나눌 수 있고 침시술행위는 시술방법이나 그 원리를 보면 전통적인 한방의료행위에 포함됨이 명백하다 할 것이므로……”라고 판결하였으며, 위 ‘CT 판결’의 재판부도 유사한 취지로 판결하였다.

즉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방의료행위는 결국 그 행위의 학문적 기초가 되는 전문지식이 서양에서 도입된 의학인지,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인지 여부에 의하여 구분된다 할 것이고, 그 학문적 기초에 따라 질병에 대한 진찰과 치료행위가 달라진다 할 것이다…….”이라고 판시하였다.

(2) 헌법재판소도 1996. 12. 26. 93헌바65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제5조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보건범죄단속에관한특별조치법 제5조 중 韓方醫療行爲부분은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개념이 불명확한 것으로 볼 수 없으므로 罪刑法定主義에서 요구하는 刑罰法規의 明確性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 (중략)…한방의료행위"는 우리의 옛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판시하였다. 이처럼 판례는 일관되게 위에서 살펴본 한의약육성법의 입법취지와 동일하게 의료행위의 근거가 된 학문적 기초가 한의학인지 서양의학인지에 따라 한방의료행위와 양방의료행위를 구별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보건복지부의 태도
보건복지부는 여러 유권해석을 통해 양·한방의 진료영역 및 한계에 관해 판단을 내리고 있다. 즉 1992. 5. 30.자 의정01254-1836에서는 본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 대해 “현행 의료법상 한의사는 한방의료업무를 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한의사가 방사선 진단 또는 임상병리검사 등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기사 등으로 하여금 동 행위를 하도록 지시할 수도 없음. 다만, 한의사는 의원, 병원 등 양방의료기관에 방사선진단 등을 의뢰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한방진료에 활용하는 것은 가능할 것임.”이라고 회신한 것을 비롯하여 의사가 ①어혈을 풀 목적으로 부항을 시술하는 행위(의정 65507-504 2000 5.9) ②침을 사용하는 행위(의제 1421-13429, 84.10.10) 한의사가 ①주사를 놓은 행위(의제 10254-12855 86.10.16. 이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를 무면허의료행위라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좀 오래된 것이기는 하나 1986. 11. 21.자 의제01254-25754와 1998. 3. 25.자 한방 65540-49에서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첨단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있으며, 한방의료도 레이져 침술을 이용하고 동 행위가 의료보험급여로 인정되는 등 점차 현대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개발되는 의료장비를 양·한방의료 중 어느 한 분야에서만 사용하라고 제한하기는 어렵다.

또한 질병의 진단에 있어 진단용 기구를 양·한방이 구별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기구를 사용하여 질병을 진단하는 의료인이 사용방법 등을 교육받아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기구사용에 일정한 자격이 필요한 경우에는 그 자격을 갖춘 자에 한하여 사용이 가능할 것이며 이 경우 그 진단기구가 양·한방 어느 쪽에서 제작되었는가 하는 것은 사용자를 한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을 것임”이라고 회신하여 진단기구의 경우 사용방법에 대한 교육여부를 판단기준으로 삼았다.

제대로 규정된 입법이나 구별기준을 제시한 명확한 법원의 판결이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사실상 이와 같은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이 판단기준이 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유권해석은 개별 사안에 대한 민원인의 질의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내려지는 것이어서 통일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판단의 근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부족한 점은 것으로 생각된다.

5. 검토
개별 의료행위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판례가 들고 있는 학문적 기초에 따른 분류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개별 의료행위의 근거가 된 학문적 기초가 우리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한의학(韓醫學)인지, 외국으로부터 전래된 서양의학인지에 따라 개별 의료행위를 판단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양의학과 한의학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반드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최근의 한의과대학에서는 의과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대표적인 과목들인 해부학, 조직학, 생리학, 생화학, 병리학 등의 과목을 대거 교육과정에 포함시켜 가르치고 있고, 의과대학에서도 개론적 수준에서 한의학을 가르치고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단순하게 한의과대학에서 가르치는 과목들은 모두 한의학이라고 한다면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구별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위 ‘CT판결’에서도 이러한 논리를 앞세워 한의사의 CT사용이 정당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이 점에 대해서 판례는 구체적인 설명은 없이 다만 ‘우리의 옛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위 한의약육성법도 동일하다. 사견으로는 당해 학문이 서양의학이나 한의학에 속한다는 사회일반의 평가, 당해 학문과 해당 의학의 다른 학문들과의 학문적 연관성, 당해 학문에 대해 당해 의학계내에서 어느 정도의 전문인력이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전문연구인력의 보유여부 및 보유 정도, 당해 학문의 학문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낼 학회의 존부 등과 같은 여러 가지 판단요소를 도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6. 마치며
현행 양·한방 이원화 체제 내에서 양방과 한방진료의 영역 및 그 한계를 설정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임에도 지금까지는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에만 맡겨두는 의료계의 직무유기가 있었다. 의료의 일원화나 법의 제·개정을 논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정해진 가이드라인을 국민과 정부에 제시함으로써 의료계 스스로의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러한 논의에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 문제에 대한 의료계에 종사자들의 깊은 연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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