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법인과 망국적 공공의료

박경철
발행날짜: 2005-06-07 10:51:51
  • '시골의사' 박경철 (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

퇴계 선생과의 사단칠정 논변으로 그 이름을 드높엿던 고봉 기대승 (高峯 奇大升)은 성정이 그리 원만치 않았다는 선조와의 문답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국가는 이(利)를 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의(義)를 이로운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利)라는 것은 의(義)의 조화이니 , 내가 편안하면서 동시에 다른사람들도 역시 편안한 것입니다. 애써 이(利)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롭지 않음이 없게되는 것이 이른바 의로서 이로운 것을 삼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 논사록. 上)

여기 등장하는 " 국가는 이익(利)을 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의리(義理)를 이로운 것으로 여긴다"는 문장은 "대학"의 끝에 두번이나 인용되어 있는 구절이기도 하다.

"맹헌자가 이렇게 말했다. - 말을 기르고 수레를 탈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大夫)은 닭이나 돼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상 제례때 얼음을 쓸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 ( 경,대부 이상의 집 )의 집에서는 소나 양을 기르지 않는다, 국토의 일부를 맡아 통치하는 영주의 집에서는 백성들을 착취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백성을 착취하는 신하를 둘 바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는 것이 낫다- 이것을 일러 '국가는 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의를 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로운 것이란 무엇일까?

닭을 기르고, 돼지를 길러 더 많은 재물을 얻고 이익을 내고자하는 것은 백성의 당연한 이치이다, 그들에게 닭을 기르고 돼지를 치는 것은 생계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공직을 맡은 사람들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익에 관심을 두게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대의(大義)를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한 국가나 집안을 대표하는 사람이 재정의 수입과 지출에 공력을 쏟는다면 , 이것은 반드시 이익만을 아는 소인을 등용한 데서 비롯된다, 저들 소인을 등용하여 국가나 집안의 운용을 맡기면 천재(天災)와 인재(人災)가 함께 닥칠 것이니, 그때 가서는 비록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할 수 없게된다, 이것을 일러 "국가는 이익을 이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의리를 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대학 10-23)

바로 이점에서 식민사관의 관점에서보면 조선조 선비들이 오로지 명분싸움으로 세월을 보낸것 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도층은 형실상의 공리보다, 도덕성에 치중해야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념이 깔여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금에도 이러한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무현 정부들어 득세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때마침 경기침체를 무기로삼아 오로지 "경제적 이익"만을 앞세운 정책들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이익이라는 명분앞에서는 자본의 색깔도 소속도,목적도 가리지 않고, 개발사업과 외국자본유치에 매달리면서. 그과정에서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든 온갖 특구와 자유지역이 만들어지고, 다시 이지역들에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탄생한 기형적인 제도가 바로 영리법인 허용과 경제특구의 내국인 진료허용이다.

즉 경제특구에 외국인 병원과 학교가 없기 때문에 외국자본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실상은 경제특구에 단지 병원과 학교장사를 할 외국기업만 들어오고 나머지는 내국인들이 땅값 상승의 과실만 따먹는 기형적인 구조를 만들어놓았으며, 그 과정에서 외국병원 유치의 결정적 걸림돌인 영리법인 허용과 내국인 진료허용이라는 빗장을 풀어버린 것이다.

다시말해, 영리법인 허용정책은 허허벌판 경제특구에 사람이 모이고 땅값이 오르게끔 고안된 유인책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이 제아무리 의료산업의 경쟁력강화를 부르짖는다고해도 그것은 결국 기성재벌과 신흥의료재벌들의 논리에 놀아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더우기 그 댓가로 주어진것은. 우리의사들의 오랜 희생으로 겨우 자리잡은 현재의 제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 고가의료와 공공의료로의 이원화), 향후 대한민국국민을 민간병원을 이용하는 "가진자"와 미국식 메디케어 제도와 같은 저급한 의료를 제공받는 "못가진자"로 구분하는 망국적 "공공의료개념"이다.

또 만약 공공의료의 개념이 순수하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진행되어야지 공공의료가 마치 영리법인 허용과 같은 딜의 소재로 등장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지금 이것은 그야말로 금잔에 백성의 피를 부어 마시는 기존 의사협회 집행부나, 혹은 기타 병원재벌들의 이해와 전면적인 공공의료를 앞세워 의료에대한 관료들의 통제와 영향력을 극대화 하려는 관료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더우기 현재 정부가 구상하는 공공의료의 개념과 영리법인 허용이 몰고올 어마어마한 파장에 대해 의사회원들의 충분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협회 집행부마져 회원대중을 상대로 마치 그것이 숨막히는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돌파구가 되어 줄 것인양 호도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이나라 의료의 주체인 의사대중은 이제도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해보지도 못하고 있으므로. 의사협회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그들이 쌍수로 환영하는 제도가 자칫하면 이나라 국민과 의사대중들에게 천추의 한을 남기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고백하고 회원전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중지를 모으기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정책당국자들의 입장에서도 공공의료 확대와, 영리법인화와 같은 문제들은 이(利)의 차원에서가 아닌 의(義)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하는 것이며, 한나라의 정책이 오로지 눈앞의 경제적 이익만을 대의로 정해진다면, 그 나라에는 필히 천명(天命)이 떠나리라는 고전의 가르침을 한번쯤 새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작금의 의료제도 변화에 대한 회원대중의 이해와 공론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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