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사고 막으려면? "의사-병원-제도 갖춰야"

박양명
발행날짜: 2016-12-10 05:00:44
  •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 응급실 의료사고 판례 20건 분석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온 30대의 A씨. 흉통과 호흡곤란이 있었지만 의식은 뚜렷했다. 의료진은 급성 출혈을 염두에 두고 주기적인 검사와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초기에 시행한 검사에서 출혈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씨는 중환자실에서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에 이르렀다. 법원은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고 1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의료진의 책임은 30%로 제한했다.

#. 갑상선암 수술 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던 50대 B씨는 목 부위 이물감 및 통증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진은 급성 인두염 의증, 하인두종괴나 설저종괴 의증으로 판단했다. 이후 B씨는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고 의료진은 산소 공급 및 윤상갑상막절개술, 기관절개술 등을 시도하며 응급처치했지만 B씨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4년 후 B씨는 사망했다.

법원은 의료진이 급성 후두개염이나 혈관부종으로 급성기도폐쇄가 생겨 호흡곤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봤다. 진단 및 처치상 과실을 인정한 것. 의료진의 책임은 60%로 제한했으며 5412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를 막으려면 의료인, 의료기관, 정부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원(이하 연구원)은 응급의료 관련 의료소송 30건의 판결문을 분석해 의료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사고의 재발방지 대책 등의 연구 결과를 최근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판례 분석-응급의료'이라는 책 형태로 발표했다.

연구원은 대법원 판결서 방문 열람 제도를 활용해 2010~2014년 선고된 손해배상(의) 판결문을 검색했다. 그 결과 총 3851건을 확인했고, 여기서 검색어 '응급'을 포함해 재검색해 1382건의 판결문을 확인했다.

확인된 사건번호 및 법원명을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 제도를 통해 1326건의 판결문을 입수했다. 응급의료 관련 사건 중 환자 승 또는 환자일부 승 사건을 재분류했더니 30건의 응급의료 판결문이 추려진 것. 여기서 20건을 다시 추려 질적 분석을 했다.

판결문 분석 결과 응급실에서 주로 일어나는 의료사고는 크게 진단 지연 또는 진단 미비, 부적절한 처치나 처치 지연, 경과 관찰 미흡, 전원의무 위반 등이었다.

연구원은 "응급의료는 응급성과 긴급성이 높은 의료행위"라며 "초기 대응 단계에서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악결과를 야기했을 때 해당 사건이 소송으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의료가 가진 여러 가지 특성들을 고려했을 때 환자안전의 향상을 위해 제도 측면에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연구원은 의료기관 차원, 법과 제도 차원에서 의료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제시했다. 개인의 역량 강화뿐만 아니라 기관의 협조, 법·제도의 개선과 지원이라는 삼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 게 결론이었다.

연구원에 따르면 우선 의료기관은 환자안전 관리를 위한 정책 및 교육 시행과 환자안전문화 조성, 환자안전 리더십 강화 등을 해야 한다. 환자 입퇴실 시 활력징후 측정, 퇴실 안내문 제공 등 응급진료 프로토콜도 자체 개발해야 한다. 응급의학과와 다른 진료과목의 응급협진체계에 대해서도 점검해야 한다.

법과 제도적으로는 수가 개선과 전문외상관리를 요구했다.

연구원은 "고비용이라서 시행이 어려운 검사 등의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며 "외과적 기도확보 술기, 전문 외상처치술 등에 대한 교육과 함께 전문외상인력 육성을 위해 국가 차원의 지원 및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 "응급환자 이송 관련 매뉴얼 및 체크리스트를 제작, 보급해 의료인이 활용해 안전한 전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캠페인 등 응급환자 이송에 대한 국민 인식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구원은 응급의료를 시작으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마취 관련 책을 순차적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연구원은 "의료분쟁 사례들을 살펴보다 보면 비슷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환자안전의 향상을 위해서는 의료인의 잘못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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