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직 의료경제팀 기자
실손보험을 둘러싼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손해율이 치솟으면서 보험업계는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를 탓하고, 의료계는 제 3자인 의료진을 걸고 넘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실손보험 적자 수준은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2018년 122.4%이었던 손해율은 지난해 말 131% 수준으로 올랐다. 가입자가 보험금 100원을 내면 보험금은 131원 받는다는 의미다.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하는 업체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손보사는 15곳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보험업계는 관련 문제의 원인으로 백내장수술·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과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를 꼽고 있다.
통원치료로 봐야하는 진료에 입원 확인서를 발부거나, 비급여 항목 수가를 높게 설정해 보험금을 높이는 방식부터, 백내장이 아님에도 허위 진단해 수술한 뒤 환자에게 숙박비·교통비 명목으로 관련 비용을 환급하는 행태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
반면 의료계는 실손보험 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상품설계에 있으며, 관련 문제는 상품의 허점을 알고 있는 보험업계 관계자인 '브로커'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과잉진료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어폐가 있으며 보험업계의 책임을 의료계 전가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1·2세대 실손보험 상품은 병·의원 진료 시 자기부담금이 적고 비급여 항목 청구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허점이 있다. 손보사들은 관련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급여 항목 보장성을 높이고 비급여 항목 청구기준을 강화한 4세대 상품을 내놓고 기존 가입자들의 전환을 독려하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이에 보험업계는 올해 초 금융권과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을 위한 정책협의체'를 발족하는 등 비급여 항목 규제 강화를 위해 칼을 빼 들었다.
실손보험 적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에 동의하며, 일탈에 가까운 진료행위를 통해 부당한 수익을 내는 의료기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보험업계가 의료계를 적으로 간주하고 규제책 마련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순서가 어긋났다고 본다.
또 현장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의료계가 빠진 채 도출된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을 위한 정책협의체'에 보건복지부가 빠진 것을 두고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입자와 의료기관 간에 편을 가르려는 일부 손보사의 행태에도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 손보사는 가입자에 "도수치료는 치료방법이나 치료횟수 등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의료행위"라며 관련 문제에 대한 책임소재가 의료기관에 있는 것처럼 안내해 의료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상황이 이런 만큼 경상남도의사회와 건강보험공단·금융감독원·생명손해보험협회 등이 체결한 업무협약(MOU)에 관심이 간다. 의료계가 보험·금융권과 합심해 불법 의료기관에 대한 감시망을 구축한 것.
각 단체는 MOU를 통해 협의체를 구성하고 경남의사회가 제보한 의료기관에 대한 공동조사 착수 및 수사의뢰를 진행한다. 또 경남의사회는 보험사기 및 불법 개설 의심 의료기관 제보와 혐의 입증에 필요한 의료자문을 제공한다.
실손보험 적자엔 각계 문제가 얽혀있는 만큼 양쪽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의료계가 일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인정하고 이를 스스로 규제하고 나섰다면, 보험업계 역시 상품 설계 허점과 브로커 문제를 인정하고 관련 문제를 의료계와 함께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