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연속 결렬 부담 느낀 '병원·치과' 협상 타결 "실리 우선했다"
평균 인상률 1.98%...의협 "공단 협상단, 허수아비냐" 고성
보험료 인상과 직결되는 '수가' 인상을 바라보는 건강보험 가입자의 입장은 단호했다.
애초에 건강보험 투입 재정(밴딩, banding)을 보수적으로 설정한데다 좀처럼 확대되지 않으면서 병원이 웃었고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건강보험공단은 병원과 의원, 약국·한방·치과‧조산원 등 6개 유형 공급자 수가협상단과 지난달 31일부터 막판 협상에 돌입해 1일 아침까지 릴레이 수가협상을 벌였다.
특히 초기 밴딩 설정이 어느때보다 늦어지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대한의사협회 김동석 수가협상단장은 공급자 단체 대표로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이하 재정소위)에 참여해 약 5분의 발언 기회를 얻어 수가인상의 당위성을 호소했다.
공급자 단체는 수가협상 마지막 날 밤 10시가 다 돼서야 1차 밴딩을 받아들었고, 예상보다도 한참 낮은 수치에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했다. 1차 밴딩은 7000억원대 수준에서 설정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지난해 수가협상에서 처음 제시된 밴딩 보다도 낮은 수치다.
추가재정 결정 권한을 쥔 재정소위는 1일 자정을 넘어서도 협상단이 위치한 건물에서 층을 달리해 상황과 판세를 보고 받으며 밴딩 폭을 조율했다. 이 과정에서 재정소위 위원간 격론이 벌어졌고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밴딩 설정을 위한 논의 끝에 찬반투표까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4시경 윤석준 위원장을 포함한 재정소위 참석자가 자리를 뜨면서 건보공단과 공급자 단체 협상단의 최종 협상이 10분 단위로 이어졌다. 릴레이 협상 끝에 새벽 6시30분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협상 타결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년도 평균 수가 인상률은 1.98%로 약 1조848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타결을 맺은 유형은 병원. 여섯 차례 회의 끝에 1.6%의 인상률을 받아 들었다. 앞서 2년 연속 협상 결렬을 한데 이어 또다시 '결렬'을 선택하는 데 대한 부담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대한병원협회 집행부가 바뀐 점도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모습이다.
병원과 함께 3년 연속 결렬 위기에 놓였던 치과 유형 협상단도 여섯 번의 협상 끝에 오전 8시가 넘어서야 전유형 중 두 번째로 도장을 찍었다. 인상률은 2.5%. 이후 대한약사회도 3.6%의 인상률에 협상을 체결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마경화 수가협상단장은 "올해 수가협상 양상이 예년과 아주 달랐다"라며 "2년 연속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많이 받았다. 이번에는 실익이라는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타결했다”고 말했다.
의원·한방 동반 결렬...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처음
의원과 한방 유형은 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처음으로 함께 결렬을 선언했다.
한방 유형을 대표하는 대한한의사협회는 유형별 수가협상 전환 이후 두 번째로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다양한 정부 정책 사업에서 한의과가 소외 받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건보공단은 3%의 인상률을 제시했지만 한의협 협상단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수가협상 이후 한의협 협상단 관계자 중 일부는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한의협 수가협상단장인 이진호 부회장은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협상이었다"라며 "큰 줄기에 원칙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답을 정해 놓고 필요한 요소를 끼워 맞추는 식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거론됐던 수치는 가당치도 않은 수치"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각종 건강보험 시범사업들, 만성질환관리,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에서 한의과는 다 빠져 있다"라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적용해달라고 그렇게 요청했는데 최소한의 전달조차 되지 않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보험 투입 재정 중 병원과 함께 가장 많은 재정을 가지고 가는 의원은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건보공단은 협상 초반 의원 수가협상단에 1.3%의 인상률을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협은 다른 유형이 모두 협상을 체결할 때도 마지막까지 협상에 임하면서 인상률을 2.1%까지 끌어올렸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해내지는 못했다. 의협 이필수 회장과 이정근 상근부회장도 밤새 협상단을 측면 지원하면서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협상 결과를 놓고 봤을 때 건보공단은 수가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추가 재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병원과 의원 중 병원의 편에서 협상에 임했다는 결과를 추측할 수 있다.
이 같은 분위기를 일찌감치 감지한 김동석 수가협상단장(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라며 "마지막까지 회원을 위하는 마음으로 건보공단에 (적정 인상률을) 요구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급기야 좌훈정 협상단원(대한일반과의사회장)은 여섯 번째 회의를 마치고 나와 "이런 식으로 수가협상을 할 필요가 없지 않나. 건보공단 협상단이 허수아비도 아니고 아침 8시까지 뭐하는 것인가"라며 소리쳤다. 좌 협상단원은 "회원을 위해서 협상팀은 남아있지만 불리한 상황에 너무 화가 난다"라며 협상장을 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