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주년 창간기획④]제도화 추진 걸음마 단계…법안 구체화 없이 실익 판단 무리
의료계 내부 교통 정리 선행돼야…"성장성 기대감은 고평가"
변화는 과연 기회일까. 과학의 발전 및 도시화는 대체로 비가역적 속성을 띤다. 기술의 진보 역시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는 말처럼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경험'은 국내 의료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시적'이라는 전제조건으로 시작된 비대면 진료가 제도권 안에 안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의료계 안팎의 변화된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면. 무엇보다 처음으로 비대면 진료를 경험한 사용자(환자)들의 긍정 목소리가 커지면서 보수적이던 의료계도 변화된 입장으로 선회했다.
국회 입법을 통해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가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비대면 진료의 한시적 허용이후 2년 새 난립에 가까운 플랫폼 업체가 태동한 것도 산업계의 기대치를 보여주는 지표. 문제는 계산기를 두드려본 업계의 비대면 진료 수요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면서 실제 제도 안착 여부를 진단하기 이르다는 것이다.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둔 업체들은 무엇보다 IT 발달에 따른 비대면 기조 고착화 및 편의성 추구를 통한 시장 확대에 초점을 맞추지만, 현재 수익 모델이 부재한 상황 및 법제화에 따른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면 실익이 크지 않다는 비관론까지 혼재하고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비대면 진료 "변수에 변수"
정부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향후 어떤 방식으로 제도화가 될 것인지를 두고 의료계를 포함한 산업계 전반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행 의료법 제34조 원격의료 항목은 의료업에 종사하는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와 같은 의료인만 컴퓨터ㆍ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것을 허용한다.
즉 의사와 의사간의 원격진료만 허용하는 것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허용된 의사-환자간 원격진료는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경보 단계가 하향될 경우 현재 전화 진료의 형태는 현행법상 다시 불법이 되기 때문에 법제화 논의가 수반돼야 한다.
실제로 복지부는 지난달 대한의사협회, 한의사협회, 병원협회, 치과협회, 약사회, 간호사협회 등과 비대면 진료 협의체 구성 및 운영계획에 대해 논의한 가운데 국회도 입법 발의로 비대면 진료 정착에 팔을 걷었다.
현재 제도화는 막 걸음마를 뗀 상태로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 및 법안 구체화 과정에서 아직 수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는 뜻.
메디칼타임즈가 20~22일 의사 16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이같은 변수 요소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전화'라는 수단을 통한 비대면 진료를 인정하고 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5.5%는 전화로 하든, 화상을 하든, 전화와 화상을 병행하든 비대면 지료 방식을 의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답했다. 반대로 모든 방식을 환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었다.
비대면 지료 허용 의료기관 범위를 묻는 질문에 72.3%가 '1차 의료기관'까지만 허용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16%는 의료기관 종별 제한이 없어야 한다고 답했다.
이같은 응답은 곧 비대면 진료에 대한 이해당사자들의 일관된 정책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비대면 진료의 다양한 형태로의 법제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전화만 허용하거나 화상 카메라를 통한 PC 연결 방식만 허용하는 경우, 혹은 재진 환자만 허용하거나 일일 비대면 진료자 수를 한정, 의료기관 종별에 제한을 두는 수 많은 변수를 고려하면 섣불리 시장성을 가늠하긴 어렵다는 게 실무자들의 판단. 현재 국회에서 계류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 허용 법안은 재진 환자에서만 허용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4차산업 혁명위원회에서 활동중인 가톨릭대 의과대학 김헌성 교수는 "센싱,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술 지향적인 플랫폼이 얼마나 환자들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 이면에는 안전성 확보, 의료전달 체계 유지, 의료비 상승 등에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어 이해당사자들의 합의점이 도출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 시 특정 질환의 포함 및 배제의 법적 문제 소지도 제기되고 있다"며 "특정 과나 특정 학회만 비대면 진료에 수혜를 볼 수 있는 부분도 형평성 문제가 있어 의료계 내부에서의 방향성 정립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는 "대부분의 환자분들은 본인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 비대면 진료를 선택하는 거시 아니라 병원 방문이 필요없다는 편의성 측면에서 비대면 진료받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며 "비대면 진료의 횟수 제한에 대해선 의료진들마다 생각이 달라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비대면 지료의 제도화에서 의료인의 법적 책임, 적정 수가, 의약품 배송 등도 시장 형성에 지대한 형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환자 중심의 수요를 확인한 만큼 의료계의 참여 열기를 이끌 '수가' 문제는 가장 중요한 성공의 첨병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적정 수가'에 대한 온도차다.
현재 정부는 전화상담 및 처방에 진찰료에 30% 가산을 더해 주고 있다. 메디칼타임즈의 설문 결과 적정 수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1.3%가 진찰료 가산이 필요하다고 봤다.
응답자 32.7%는 진찰료의 1.5배 이상은 줘야 한다고 했고, 18.6%는 현재처럼 30% 가산에 답했다. 25%는 비대면 지료 수가를 대면진찰료과 똑같이 지급해도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10명 중 한 명꼴인 10.9%는 100% 환자본인부담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비급여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5% 있었다.
문제는 적정 수가에 대한 온도차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진료에 가산하는 논리 적정한지, 혹은 가산 정책이 유지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비대면 진료 제도화 안착을 위한 '미끼'로 수가 가산이나 인상이 적용될 순 있지만 이는 비대면 진료에 가산의 적정 논리 여부와는 별개다. 의약분업 이후 인상된 수가가 수 년내 인하된 사례 역시 비대면 진료의 시장 안착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소다.
김헌성 교수는 "경험을 예로 들면 월요일 오전에 진료하는 당뇨 환자 수가 보통 80명에 달한다"며 "가끔 전화를 통한 비대면 진료 요청이 오는데 한 사람당 한 5~6분이 더 소요되고 그렇다고 의료진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도 없기 때문에 적정 수가 적용 여부는 비대면 진료 활성화에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수익 모델 있나? 구체적 모델 대신 장미빛 전망만
현재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의 수익 모델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배달의 민족과 같은 음식 배달 플랫폼이나 숙박 업체 플랫폼, 온라인 유통 플랫폼들이 시장에 안착했던 것은 다수의 사용자 확보 및 중개를 통한 수수료 수익 편취라는 수익 모델에 기반했다. 문제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뚜렷한 수익 모델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의사-환자간 처방이 이뤄질 때 중계 수수료를 규정할 만한 법적 근거는 없다. 오히려 불법의 소지가 있다.
현행 기준에서 업체가 고려할 수 있는 건 플랫폼 자체를 판매하거나 월간 플랫폼 이용료를 수수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양한 EMR 업체들이 수익 모델이 비대면 플랫폼으로 전이된 형태로 20여개에 달하는 플랫폼 업체 수를 고려하면 개별 업체가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EMR 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건강보험 기반 의료 빅데이터 공개를 추진하고 있지만 병원에 분산된 의료 정보의 활용성, 공개와 재가공 범위에 대해선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대면 진료가 활성화 시 의료 데이터들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만일 익명 처리 후 처방 데이터의 가공, 판매 행위가 가능해 진다면 플랫폼 업체로서는 분명한 수익 모델을 기대할 수 있고 하나의 산업 섹터로 성장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런 행위가 금지되고 단순히 플랫폼 업자가 솔루션 사용료만 수취하게 끔 하면 현재와 EMR 업체 수준의 영세 사업 정도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사의 처방 정보를 재가공, 판매 행위의 위법 소지는 풀어야할 숙제다. 비대면 진료 법안에서 이런 부분을 명확히 해야만 수익 모델을 구체화하고 예상 기대 수익과 실제 수익성의 간극을 메꾸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는 뜻.
제도화에 대한 기대감과 수익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일상다반사였다는 점에서 비대면 진료도 보수적으로 봐야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실제로 의료선진국에서 허용된 재생의료를 국내에서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첨바법(첨단재생의료및첨단바이오의약품안전및지원에관한법률) 도입 이후 업계는 오히려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제도만 허용되면 블루오션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작 첨바법이 제시하는 추가 임상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임상 비용이 증가, 일부 임상을 포기하거나 지연하는 반대급부가 관찰됐기 때문이다.
강스템은 첨바법 시행 이후 최근 임상 열기에 찬물을 맞았다. 이달 20일 강스템은 골관절염 퓨어스템-오에이 키트주의 1/2a 임상시험 계획 승인 신청을 자진 취하했다. 첨바법 시행 히우 임상 의약품에 대한 세포은행 구축과 관련한 자료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이 업체가 밝힌 임상 취하의 원인.
NK세포 배양 등 재생의료를 주요 수익 모델로 삼는 B 업체 관계자는 "첨바법은 말 그대로 그간 불법이었던 요소를 허용한다는 의미이지 이것이 곧 시장의 팽창이나 안정적 수익을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라며 "산업이 고도화될 수록 각종 규제가 따라붙는 선진국 사례를 볼 때 제도화만으로 시장을 장미빛으로 보는 건 순진하다"고 지적했다.
몇몇 바이오 업체들도 첨바법 시행 이후 법안이 요구하는 임상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 비용이 증가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으로 관측된다. 보통 바이오업체들은 임상 유보금이 많아야 수백억원에 불과해 첨바법 제도 아래 임상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임상 파이프라인의 다변화 전략을 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IT와 헬스케어 접목을 시도하는 업체들은 비대면 진료의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IT기업의 대표이사는 "향후 비대면 진료가 지속되는 상황을 인공지능까지 연결해서 생각하면 데이터를 중요시 하는 분위기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데이터가 중요한 업체들의 입장에선 지금도 대형병원이나 혹은 각 2차 병원 3차 병원끼리 데이터가 공유가 되지 않아 분산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같은 플랫폼이 비대면 진료를 주관하는 상황이 되면 데이터에 대한 수집, 활용에 대한 명확한 기술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이 3~4년이 지나면 한 병원에서도 대면 진료와 비대면 진료의 데이터가 따로따로 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수백만명이 비대면 진료를 활용했고 이용자가 폭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미 다시 대면진료로 돌아가기는 늦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대면 진료 시장은 12조원. 원격의료 서비스 규제 완화에 따른 경제적 파급도 크고 이미 의료계가 주장하는 대형병원 쏠림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증명했다"며 "제도화 안착의 관건은 EMR이나 DUR 등과 연동으로 이는 앞으로 플랫폼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법률적인 부분들이 중요한데 플랫폼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며 "컨센서스를 모아 플랫폼의 적정 개입의 범위와 중개의 범위 등 의료법과 약사법의 관련 규정을 모두 개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플랫폼 주도의 비대면 진료가 의료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유승현 고대안암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의료정책연구소 계간의료정책포럼을 통해 플랫폼 기반 비대면 진료에 대해 우려감을 나타낸 바 있다.
유 교수는 "최근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괄목상대한 만한 성장을 보면서 기존의 배달 플랫폼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독점의 문제들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며 "식당들이, 카카오택시 가맹택시들이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어느 순간 생존을 위해 플랫폼에 종속돼 버린 것처럼 의료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플랫폼에 네트워크 효과로 사업자와 이용자가 많아져서, 서비스 제공자가 몰리게 되면, 다른 플랫폼은 외면 받고 소멸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서 시장을 선점한 사업자가 가격을 낮춰 사람들을 유인해 플랫폼의 규모를 키워가고, 어느 수준 이상이 되어 독점이 가능해지면, 가격을 올리고 가격과 거래조건을 결정하고 막대한 데이터를 독점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한시적이라는 전제조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한 플랫폼 업체들은 이제 의사들의 정보를 게시하고 별점을 부여하고 의사를 선택하는 지위를 부여 받고 있다. 현재 비대면 진료는 실제의 진료가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를 상회하지 않지만 편의성 이유로, 산업계의 압박으로 플랫폼 기업이 주도하는 제도를 만들면 결과적으로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
유 교수는 "의료계 역시 비대면 진료의 허용과 관련된 안전성・유효성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점에 이르게 됐다"며 "기존의 비대면 진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데이터 분석과 잘 설계되고 유효성 있는 임상 검증이 이뤄져야 하고,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시대에 의료서비스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근본적인 고찰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