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주년 창간기획②] 박 원장을 통해 들여다 본 비대면진료의 미래
진료실 깊게 스며든 비대면…의료현장·플랫폼 등 산업계 지각변동
진료 시작 5분 전, 아직도 컴퓨터가 켜지지 않고 있다. 한 시간 동안 컴퓨터와 씨름하느냐고 온몸이 땀으로 뒤덮인 박 원장은 이번 고장이 자신의 전자공학적 지식을 넘어섰다는 것을 납득해야만 했다.
오늘은 박 원장이 처음으로 비대면진료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은 날이다. 오늘 새벽까지 어떤 비대면진료 플랫폼이 좋을지 찾아보고 이제 설치하려고 했는데 헛고생을 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는 책상 아래 쪼그려 앉아 전원 버튼을 연달아 누르며 마지막 발악을 했다. 박 원장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에 어떤 초현실적인 힘이 자신과 비대면진료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오늘은 비대면진료가 제도화되고 5년째 되는 날이다. 5년은 비대면진료에 회의적이었던 의사들도 플랫폼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박 원장은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비대면진료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괜히 비대면진료가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컴퓨터 고장과 비대면진료와의 상관관계는 없지만,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 원장은 잠시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자신이 비대면진료를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를 떠올렸다. 어제 방문한 권순례 할머니는 박 원장의 의원에서 수년째 당뇨병 치료를 받는 환자다. 그녀는 박 원장이 아들 같다며 그를 살갑게 대해왔는데, 어머니와 사별한 박 원장 역시 그런 할머니에게 애착이 갔다.
하지만 할머니는 진료실을 나서면서 "선생님 요즘 무릎이 안 좋아서 비대면진료를 하는 다른 의원으로 옮겨야겠어요. 그동안 감사했어요"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가슴이 철렁해서 "아 할머니 저희도 내일부터 비대면진료 해요. 안 옮기셔도 돼요"라고 답했다.
비대면진료를 할지 말지는 둘째 치고 컴퓨터가 없으면 아예 진료를 못하는 게 문제다. 박 원장 공식서비스센터에 전화했지만, 대기 인원이 많아 이번 주중에는 방문이 어렵다는 답변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임시휴진 팻말을 내걸고 사설 컴퓨터수리점에서 사람을 불렀다. 원인은 메인보드 문제였는데, 수리점 측이 컴퓨터를 새로 사는 것이 나을 수리비를 부른 탓에 출장비 5만 원만 나갔다.
박 원장은 자신에게 닥친 연쇄적인 불행에 기가 막혔다. 다만 7년 가까이 사용해 노인학대 소리를 들어도 싼 컴퓨터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다. 박 원장은 새 컴퓨터를 사기로 마음먹고, 늦어도 이틀 후면 택배가 도착할 테니 그때 EMR업체 직원을 불러 컴퓨터를 세팅하자는 계획도 세웠다.
박 원장은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진료실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새 컴퓨터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실수로 배너광고를 누른 그는, 뒤로 가기를 누르려다가 비대면진료 플랫폼 광고가 뜨는 것을 보고 멈칫했다. 어제저녁 어떤 플랫폼이 좋을지 검색한 것을 귀신같이 알고 광고까지 하는 알고리즘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요즘 플랫폼에서 일반의약품이랑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한다던데 이런 식이면 사람들이 꽤 사겠네'라고 생각했다.
박 원장은 제도화 당시 갑론을박이 치열하던 비대면진료가 일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특히 플랫폼 광고는 아사 직전의 산업계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지원책이었다. 가뜩이나 플랫폼 자체로는 수익성을 내기 어려웠는데 제도화 과정에서 투자금 회수 압박이 커진 탓이다.
의약품 유통으로 활로를 뚫으려던 업체가 있었지만, 기존 유통사와 약사계의 격렬한 반대, 법적 규제에 가로막혔다. 스마트 헬스 디바이스 등 의료기기로 사업을 확장한 업체도 있지만, 초기비용 때문에 흑자는 아직이다.
건설사 등 대기업과의 제휴로 건축물에 비대면진료 시스템을 공급하는 업체도 있었지만, 그 기회가 많지 않아 일회성 수익에 그치기 일쑤였다. 이에 정부는 플랫폼을 통한 일반의약품 및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면서 업체들은 지금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박 원장은 내친김에 스마트폰에라도 플랫폼을 설치하기로 했다. 마침 광고에 나온 플랫폼이 꽤 호평을 받는 앱이어서 어떤 방식인지도 궁금했다.
플랫폼을 둘러보면 박 원장은 탈모·다이어트·사후피임약 진료·처방이 상당히 까다로운 것을 발견했다. 특히 본인확인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절차가 복잡했는데 이런 식이면 누가 플랫폼으로 처방을 받으려고 할지 싶었다.
이 같은 규제는 제도화 이전부터 탈모·다이어트·사후피임약 등에서 오남용 및 의료쇼핑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제가 강화되면서 참여 의료기관이 줄어드는 것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했는데 수가가 인상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대면진료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고 그 결과 대면진료 대비 1.5배 높은 수가가 책정됐다.
규제가 생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대면진료 횟수에도 제한이 생겼는데, 의료기관과 의사 1인당 횟수 제한이 동시에 적용됐다. 하루에 의사 1인당 10회. 의료기관당 30회로 제한됐는데 덕분에 비대면진료 전문의원, 배달전문약국, 상급병원 쏠림 현상 등의 논란도 잦아들었다.
'아차' 박 원장은 자신이 새 컴퓨터를 고르던 중이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시 쇼핑사이트에 들어갔지만, 컴퓨터를 고르는 일은 플랫폼을 고르는 것보다 훨씬 복잡했다. 개원의가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업체는 많아야 10~20개인데 반해 컴퓨터는 그 가짓수를 셀 수 없었다. 박 원장은 예전에 30~40개에 육박했던 플랫폼업체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결정장애인 본인에게 잘된 일이라 생각하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비대면진료 제도화에서 가장 격렬했던 쟁점인 초·재진 문제는 결국 재진으로 확정된 뒤 산업계에 격변이 일어났다. 과거 30~40여 개에 이르렀던 플랫폼업체들은 제도화 이후 파이가 줄어들면서 그 수가 반 토막 났다. 대형병원이나 보건의료단체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플랫폼업체들은 투자금 회수가 어려웠던 탓이다.
환자 DB확보, 편의성 강화, 각종 서비스·이벤트 등으로 무장한 10여 개의 상위권 플랫폼업체들은 살아남았다. 대표성을 가진 보건의료단체와 제휴를 맺으면서 경쟁력을 확보한 플랫폼업체가 등장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업계순위도 제도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대거 변동된 상황인데, 당시엔 없었던 신생업체가 론칭 후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가면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던 일도 있었다.
다만 건강보험에서 인정하는 재진 기준은 90일이 지나면 소진되는 탓에, 산업계에 대한 당근책으로 1회만 방문하면 영구적으로 재진으로 인정되도록 하는 안이 통과됐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자력으로 멈추기 어려운 박 원장의 성격 탓에 결국 컴퓨터 구매는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끝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박 원장은 비대면진료를 시작했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제도화 이후 비대면진료는 보조적인 진료수단이어서 그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권 할머니를 건강상태를 더 확실하게 체크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었다. 플랫폼으로 당뇨관리법 교육 및 식단 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문의 사항에 바로 답변할 수도 있다는 것과 병·의원 예약을 플랫폼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느껴졌다. 특히 박 원장은 기존에 혈액 등의 검사결과를 따로 전화로 안내해왔는데 그동안은 이를 청구할 수 없었지만, 플랫폼으로 하니 수가로 인정됐다.
비대면진료로 박 원장에게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기기는 했다. 이미 알고 있는 환자라고 해도 얼굴을 보지 않고 처방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다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이 통과하면서, 비대면진료 의료사고로 인한 책임 문제가 희석된 것은 다행이다 싶었다.
다음 날 출근한 박 원장은 어제 진료한 환자를 떠올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한 어린이 환자가 자신과 같은 의사가 되겠다는 내용의 손편지를 전해온 덕분이다. 박 원장은 손편지를 넣을 액자도 사 왔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인데 비대면진료로 학교를 다니면서도 처방받을 수 있으니 그게 고마웠겠다 싶었다.
'오늘도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 박 원장은 진료실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컴퓨터는 켜지지 않았다.
*위 기사는 비대면진료 제도화 5년 후를 주제로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한 내용입니다. 이는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 원격의료산업협의회,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대표, 아산케이의원 이의선 원장 등을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