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미표기, 진료과 누락, 외부 현수막 게시 등 의료법 42조 위반
수익 노린 악성 민원 의심돼…의사회 "사태 파악 후 대응 마련 분주"
부천시에서 의료기관 간판 관련 대규모 민원이 제기돼 그 처분을 두고 개원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정인을 통한 대규모 민원이었다는 점에서 간판 교체 수익을 노린 업자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부천시에서 300곳이 넘는 의료기관이 의료법 제42조 위반으로 신고당했다. 해당 지역 의료기관들이 간판 관련 의료광고 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보건소에 민원을 제기한 것.
주요 내용은 ▲간판 글자 크기 불일치 ▲의원 미표기 ▲명칭에 진료과 누락 ▲창문 썬팅지 등 옥외광고 관련법 위반 ▲간판 내 의료기관 층수 표기 ▲질환명·센터 표기 ▲의료기관 외부에 현수막 게시 ▲야간진료내용 표기 등이다.
■업자 소행 의심하는 개원가…"안 좋은 선례 우려"
개원가는 의료법 위반에 따른 처분은 인정하지만, 이번 민원이 간판 교체 수익을 목적으로 한 간판업자들의 소행일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의료기관 간판은 규정이 복잡해 업계종사자가 아니면 문제점을 찾아 신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에 신고된 의료기관이 전체 부천시 개원가의 30% 수준이고 민원이 단기간에 연속적으로 제기돼 의혹에 힘을 싣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의료계 한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나 지자체가 실사를 나온 것도 아니고, 특정인이 전 부천시를 훑어봤다는 뜻인데 팀 단위로 움직인 것이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라며 "업계종사자가 아니면 제기하기 어려운 민원이고 이들이 시정명령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언가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번 민원이 간판업자들의 수익으로 연결된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아를 노리고 유사한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며 "이번 사례가 안 좋은 선례로 남지 않도록 다른 지역 업자들을 통해 간판을 교체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간판 규정 개선 목소리 나와…"일원·명확화해야"
의료기관 간판 규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련 기준이 까다로워 비전문가인 개원의가 이를 일일이 준수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의료법 제42조에 따르면 의료기관은 그 종류에 따른 명칭 외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또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에 따라 의료기관 간판은 고유 명칭과 진료과를 나타내는 글자 크기가 같아야 한다.
의료기관의 종류 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거나 특정 진료과목 또는 질환명과 비슷한 명칭도 사용하지 못한다. 여기에 간판 표시방법 관련 지자체 조례가 중복으로 적용되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개원의는 "의료법 위반이라면 할 말 없지만, 위반인지 아닌지를 알기 어려운 기준은 문제라고 본다"며 "특히 지자체 조례는 간판업자도 정확한 규정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관행적으로 단속을 안 하니 그냥 시공하라고 얘기하는 실정이다. 적어도 관련 규정을 일원화하거나 명확히 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부천시보건소 역시 이 같은 불만에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를 감안해 일차적으로 행정 지도만 내리고 일정 기간 자율적으로 간판을 교체하도록 권고한다는 방침이다. 또 부천시 전체 의료기관에 관련 규정을 담은 안내문을 발송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시정되지 않은 의료기관은 또다시 민원이 제기될 시 행정처분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부천시보건소 관계자는 "이번 민원은 보건소 입장에서도 상당히 당황스러운 사안으로 의료기관에 협조를 구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의료법 간판 관련 규제가 과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보건소 역시 이런 부분은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런 입장을 협회에 전달했다. 이후에도 기회가 있다면 개정 의견을 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행동 나선 의사회…"추가 피해 막을 것"
의사단체들도 대응에 나섰다. 부천시의사회는 다른 의사단체들과 함께 복지부에 개정안을 전달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부천시의사회 전성호 이사는 "의료기관 간판 규정과 실제 현장 사이에 괴리가 있다. 오래된 법안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가 나오기 마련이다"라며 "특히 글자 크기, 층, 구조 등은 환자 편의를 위해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밖에 불필요한 규제를 삭제하는 방향도 건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간판 규정은 전문과·종별에 따라 입장차가 있는 사안인 만큼 산하·유관단체 의견수렴을 우선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미비점이 드러날 시 개선을 촉구하겠다는 설명이다. 또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관련된 규정을 명확화해 회원에게 제공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와 관련 의협 박수현 대변인은 "이번 민원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의사회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간판 규정 자체에 대한 각 단체 의견도 수렴 중이다"라며 "다만 관련 규정은 산하·유관단체는 물론 지자체와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료법과 관련된 다른 직역 단체와의 논의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