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추궁 몰두하는 정치권…정부 부처 신설도 역효과
전담병원 폐지로 응급실 과밀화 심화…"5차 대유행 수준"
이태원 참사 이후 2달이 지났지만, 재난대응체계에 이렇다 할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의료계에선 이번 참사가 정쟁으로 비화해 실질적 대책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2차 청문회는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의 거취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양새였다. 의료계는 이를 두고 대책 논의 없이 책임 추궁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잘못을 따지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문제를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라며 "중앙응급의료센터장과 중앙재난대책본부 상황실장도 청문회에 참석했다. 재난 대응 개선점을 물어야 할 사람들을 앉혀두고 누가 잘못했는지만 따지는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 내에 재난의료과가 신설된 것은 변화다. 하지만 새로운 역할을 하는 부처가 아니라 기존 응급의료과 업무를 나눠 가진 형태여서 체계 이원화로 생길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재난의료과가 생긴 것 자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지원책이나 예산을 고민하고 만들었는지는 의문"이라며 "응급의료과 업무를 상당 부분 가져갔는데 현장 입장에선 확장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가 갈라진 모양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처는 그냥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고 예산을 따오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관점에서 오히려 응급의료과 입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기존에 응급의료를 담당하던 부처의 역할이 축소되고 관련 업무가 공공 영역인 재난으로 넘어갔다는 진단이다. 이에 이번 신설이 응급의료 공공화를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 권역응급의료센터 교수는 "이런 식의 부처 개편이 응급의료를 공공의료에 포함시키려는 초석이 아닌지 우려된다"며 "공공의 성격을 가진 재난의료과가 응급의료과 업무를 가져가면서 응급의료를 공공의료로 가져가기 수월해진다. 이는 응급의료를 공공의료로 가져가려는 정부 계획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응급의료랑 공공의료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공의료기관은 보건소, 보건지소, 보건의료원인 반면 대부분 응급의료를 민간의료기관이 수행하고 있다"며 "응급실은 공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는 공공이 아니다. 정부의 일을 민간이 대신하는 상황에서 아예 공공화로 이득을 가져가겠다는 모양새여서 현장이 반대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응급실 과밀화 역시 대책 없이 악화하는 상황이다. 대유행세 당시와 비교했을 때 확진자 수는 줄었지만, 전담병원이 사라지면서 환자 전원이 더욱 어려워졌다.
실제 대한응급의학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다수의 응급실에 5~10명의 환자가 대기 중인데, 이런 수준의 과밀화는 확진자가 20만 명에 달했던 5차 대유행 당시와 유사하다.
이와 관련 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확진자는 줄었다고 하지만 양성률이 증가하고 검사를 받는 않는 유증상자도 많아 응급실이 입원실 된 지 오래"라며 "입원도 전원도 안 되는 5차 대유행 당시 상황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응급실 상황은 최악에 치닫고 있는데 재정적인 이유로 별다른 대책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남은 길은 각자도생 일 뿐"이라며 "코로나19나 이태원 참사 같은 위기가 생겼을 때 이를 토대로 발전하고 나아가려는 고민이 있어야 하는데, 기회로만 삼으려는 모습 뿐이어서 안타깝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