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명 의료경제팀 기자
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놓고 의료계가 때아닌 '종별가산' 폐지에 대한 혼란을 겪었다. 종별가산 폐지 문제는 올해 하반기 예정된 3차 상대가치 개편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일찌감치 공개한 방향성이기도 하다. 이를 필수의료 대책에 갖다 놓는 바람에 의원과 병원의 수가 하락을 넘어 수가 역전에 관심이 쏠린 것이다.
정부가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문제와는 별개로 일련의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의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논란이 되자 의협은 산하단체에 사실은 병원이 위기지 의원은 수가에 변동이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종별가산율 개편관련 안내문을 배포했다. 안내문에는 "회원들의 우려와 문의가 있어"라는 이유가 들어있다.
의사 집단은 같은 '의사' 면허를 갖고 있지만 어느 집단보다도 이해관계가 첨예한 집단이기도 하다. 20개가 훌쩍 넘는 전문진료과목마다 생각이 다르고 봉직의인지 교수인지, 병원장인지, 개원의인지에 따라서도 의견이 갈라진다. 종별가산율 문제도 사실 개원의와 병원장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진료과목에서도 의견차가 생길 수 있다.
의협은 '14만 의사'를 대표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일부 회원들의 우려와 문의가 얼마나 많길래 '필수의료'라는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종별가산 폐지에 대한 설명을 담은 별도의 안내문까지 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의협이 앞장서서 좀 더 나은 의료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데 동의는 하지만 '누구를' 위한으로 좁혀서 생각해 봤을 때 의협의 존재의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과거부터 쌓여온 '의협은 개원의를 위한 단체'라는 오명을 여전히 벗지 못하고 있다. 병원장이나 병원 출신 임원이 많다는 게 공격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2021년 3월 당선 직후 "갈등과 분열의 목소리를 잘 조율하고 보듬어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라는 말과 함께 "우리 사회에 존중받고 사랑받는 의협이 되도록 부단히 고민하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년 임기의 반환점을 돈 현재 의협은 '개원의' 단체와 '14만 의사' 단체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두 가지 입장을 동시에 갖고 갈 수 없다.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전자는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그대로 이어가면 되는 것이고, 후자는 당장 3년안에 해결할 수 없는 부단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의협은 '14만 의사'를 수식어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대표하는 단체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 회장이 처음 이야기했던 화합이 잘 되고 있는지, 사회에서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는지 말이다.
의료계에는 현재 각종 현안이 산적해 있다. 한의사의 초음파 검사, 의사 증원, 의사면허 박탈법 등 14만 의사들이 한목소리를 내야 할 현안 말이다. 의협은 여기에서 '의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필수의료에서도 종별가산에 대한 안내 말고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의사들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료과별 디테일은 산하 단체에 맡기는 여유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잘못 심어지고 있는 의사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위한 이미지메이킹도 중요하다. 국민이 왜 수술실 CCTV 설치를 찬성하는지, 사회는 왜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왜 국민이 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의료사고에 휘말리는 '의사'들의 숙명을 알리고 실제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야 한다. 나아가 비윤리적, 범법, 탈법 의사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디테일한 세부 정책에 대한 논의는 산하 단체에 과감하게 넘겨야 한다. 의협 산하에는 수십개의 단체가 포진하고 있다. 이들에게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당장 수가협상을 비롯해 수탁검사, 종별가산 등의 문제는 개원의 대표 단체인 대한개원의협의회, 진료과의사회 등에 과감히 넘겨야 한다. 의협은 상위 단체로서 산하 단체를 자주 만나며 현안을 파악은 하고 있어야 한다. 갈등이 심한 사안은 중재자로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 개원의 대표 단체로서 거듭날 것인가, 14만 의사를 '진짜' 대표할 것인가. 선택은 의협 집행부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