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향정약 처방 이슈로 정신의학과 숙원사업도 안갯속

발행날짜: 2023-09-06 05:20:00
  • 한데 묶인 마약류·향정에 정신건강의학과 부정적 인식 악화
    "마약류라는 오명이 치료 문턱 높여…사회적 문제 확산 우려"

향정신성의약품 논란에 정치권까지 나서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향정신성의약품이 마약류와 한데 묶이면서 정신질환 치료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커지는 만큼, 이를 하루빨리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 향정신성의약품 검출, 의사 프로포폴 유출반출 등의 논란이 연이어 터지면서 정신건강의학과 숙원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정신건강의학과는 향정약이 마약류에 포함된 이후 이를 다시 분리하는 것을 꾸준히 요구해 왔는데, 최근 논란으로 이에 대한 여론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향정신성의약품 논란에 정치권까지 나서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까지 나선 향정 오남용 문제 "마약류 관리 강화"

특히 정치권까지 나서 향정에 대한 관리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은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가 향정을 투약받은 병원에서 관련 처방이 늘어난 특이 정황이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

이 병원의 향정 처방현황을 살펴보면 2020년 790명이었던 처방환자가 2022년 1593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처방건수는 2020년 1078건에서 2022년 3746건으로 약 3.5배 늘어 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더욱이 처방량은 2020년 1655개에서 2022년 6622개로 4배 늘어났다. 특히 이 병원은 올해의 상반기에만 1433명의 환자에게 3058건의 처방으로 9140개의 향정을 받도록 하는 등, 증가세가 비정상적으로 가파르다는 것.

현재의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은 향정을 모두 모니터링하는 것에 한계가 있으므로 관련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고, 문제 의료기관과 의료인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다.

■마약류·향정 분리 숙원사업인데 "환자 편견 심해져"

이 같은 논란들로 향정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되면서 정신건강의학과는 날벼락을 맞게 됐다. 향정에 대한 관리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를 마약류에서 분리하려는 숙원사업이 난항을 겪게 된 탓이다.

앞서 마약과 향정은 각각 마약법, 향정관리법, 대마관리법으로 구분됐는데 2000년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로 통합·제정됐다. 이 때문에 향정이 마약류의 일종으로 분류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향정신성의약품이 마약류로 분유되면서 생기는 부작용들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현장에선 향정이 마약류로 분류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원래부터 부정적이었던 정신건강의학과 인식을 더욱 악화해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기피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향정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생기는 대표적인 문제는 ADHD다. 이에 대한 약물치료는 상당한 효과가 있고 예우 또한 좋다"며 "말이 많기는 하지만 환자의 특정 행동 문제를 많이 조절해 주고 사회적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표적인 치료제가 메틸페니데이트인데, 최근 ADHD 환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를 마약류라고 생각하면 어떤 보호자들이 자녀에게 처방 받도록 하겠느냐"며 "그렇게 되면 환자는 행동 문제가 생기고 사회적 기능이 떨어져 더 예우가 나빠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과서도 처방하는 ADHD 치료제…의사회 대응 나서

정신질환과 관련된 향정이 다른 진료과목에서 무분별하게 처방되거나, 일부 오남용 사례가 전체의 인식을 악화시키는 상황에도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으로 논란이 된 의료기관 역시 정신건강의학과와는 무관하다.

이와 관련 한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최근 식약처가 향정 오남용 의심 의사 6000여 명을 추적 조사하겠다고 밝혔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를 다 합쳐도 4500명밖에 안 된다"며 "타과에서 ADHD 치료제를 많이 쓴다는 뜻인데 심지어 치과처럼 전혀 관계없는 과가 메틸페니데이트를 처방했다는 말도 돈다"고 지적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역시 이 같은 오남용 사례를 통제하는 한편,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근 연이어 발생한 묻지마 범죄 등 정신질환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이를 위해 향정이 마약류로 분류돼 치료를 기피하는 사례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는 등 관련 부작용을 조명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신용선 보험부회장은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가 마약류까지 복용한다고 하면 더욱 치료를 기피하기 마련"이라며 "서현역 사건만 봐도 옛날에 진단을 받았지만 흐지부지돼 몇 년간 치료를 받지 않은 케이스다. 제대로 치료받지 않으면 행동 조절이 안 돼 사회적 문제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정신질환 치료 기피는 치료제가 마약류라는 오명도 한 몫한다. 펜타닐, 엑스터시, 필로폰 같은 불법 마약은 관리와 처벌을 강화하고 향정은 분리해야 한다"며 "이렇게 치료를 놓치는 사람들을 구제해야 하고 여기엔 용어적인 부분도 분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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